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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May 19. 2019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믿음

우울이라는 감정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몇 달간 나의 일상은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생겨 곤란하게 되면 나 스스로를 탓했다. 그 상황들의 대처는 성공 또는 실패로 결정되었다. 과정의 중요성은 간과하고. 나는 부족했고, 누군가의 도움이나 운이 좋아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존재였다. 


우울과의 깊은 인연을 끊기 위해 변화라는 주제를 인생 전면에 내세웠다. 구체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진실된 나로서 변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나의 큰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목표와 계획을 정리하고 실천해 나갔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정했던 나는 계획에서 벗어난 작은 행동에도 스스로를 자책했다.


혹독하게 다그치며 변화를 종용하는 내 모습은 변화를 시도하기 전과 다르지 않았다. 우울했다. 계획대로만 되지 않는 게,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나는 공책에 적힌 대로만 행동할 것을 스스로에게 강요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학부 전공과는 다른 분야로 입학한 서른두 살의 내가, 시기적으로도 늦었지만 항상 서투르고 부족하다며 질책했다. 세부목표와 계획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변화를 위한 다짐이 무색할 만큼 괴로워하는 나를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무언가 좋은 방법이 있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달래며 고민했다. 이전 같았으면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목적 없이, 발길이 닿는 대로 무작정 길을 걸었겠지만 현실적인 대안을 찾고 싶었다. 길을 걸으면 상태가 나아지긴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해소일뿐, 해결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걸으며 생각이 전환되어 좋은 방법이 떠오를 수도 있지만 합리화하려는 생각 정도로 여겨졌다. 지금, 나에게는.


심호흡을 하며 내 상태를 되돌아보았다. 지금 여기에 있는 나를 느끼기 위해 집중했다. 반복되는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음을 진정시키자 내면의 고요함이 찾아왔다. 여기에서 나는 한 가지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첫 번째 직장에서는 영업 업무를 담당했었다. 고객에게 우리의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당시의 나는 열정을 가지고 많은 시민들에게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설득과 관련된 책도 여럿 읽고, 밤마다 거울을 보며 자연스럽게 웃는 표정을 연구했다. 하지만 구매할 마음이 전혀 없는 시민들에게는 상품이 판매될 가능성은 당연하게도 희박했다. 이건 내가 잘못 설명한 것도 아니고, 시민들의 잘못된 결정도 아니었다.

  

그러나 영업 업무에서 낮은 실적은 곧 자신의 잘못과 책임으로 연결된다. 상품이 판매되지 않은 데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그 이유들을 분석하다가 결론에 다다르면 나 스스로를 탓했다. 물론 '나 이외에 무엇이 문제였을까?' 고민해보고 이래저래 적용해보며 변화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성과가 뚜렷하게 보이다가도 한 번 삐끗하는 날이 생기면 나를 심하게 꾸짖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팀의 존폐가 달린 중요한 날이 찾아왔다. 그때 회사에는 영업을 담당하는 팀이 두 개가 있었는데, 특히 낮은 실적이 이어지고 있던 우리 팀을 부장님이 회의실로 호출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급여를 받는 이유를 입증하라는 듯한, 강한 말을 내뱉었다. 부장님이 회의실을 나가고 우리는 머리를 맞대며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까. 당장의 영업 전략을 바꿀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 날, 당일에 이전보다 높은 실적을 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의기소침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나는 "만약 오늘 제가 특별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만둘게요"라고 웃으며, 평소답지 않게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말했다. 내 이야기를 시작으로 함께 앉아있던 동료들은 높은 실적을 내기 위한 그 날의 각오를 이야기했다. 꽃샘추위로 인해 쌀쌀함이 느껴지는 여느 봄, 회의실 안에서 우리 모두는 열의를 불태웠다. 파이팅- 하며, 포개져 있던 손을 하늘 위로 올렸다. 임의로 만든 목표를 달성을 위해 우리는 몇 명씩 팀을 이루어 현장으로 출발했다.


이동할 때에도 평소와는 느낌이 달랐다. 어디서 기인된 것일까. 오직 목표만 생각했다. 목표 달성에 저해되는 생각이나 감정들은 애초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이전의 실패 경험들은 사라지고, 오직 성공에 이르는 방법만 생각했다. 이미 달성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현장에 도착한 우리는 끊임없이 상품을 홍보했다. 그중에는 구매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거절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평소라면 거절하는 사람들의 사소한 반응에도 신경을 많이 썼을 '나'이지만, 이 날은 달랐다. 어떤 묵직한 마음이 내 몸 어딘가에서 중심을 잡고 지켜주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행동 한 가지를 하고 있었다.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나 스스로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의 말이었다.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에서 펜싱 에페 종목 국가대표였던 박상영 선수가 결승전에서 '할 수 있다' 라며 되뇌던 장면이 방송에 나왔었다. 2라운드를 마친 박상영 선수는 9대 13으로 밀리고 있었다. 3분씩 3라운드 동안 진행되는 펜싱 개인전 경기에서는 먼저 15점을 내거나, 9분 동안 누가 더 많은 득점을 올렸는지가 승패를 결정하기 때문에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역전하는 게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올림픽 결승에서 4점이나 벌어진 점수차를 극복한다는 건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3라운드를 앞둔 휴식시간 때 카메라에 잡힌 박상영 선수는 패색이 짙은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집중한 표정으로 '할 수 있다'라고 되뇌며 스스로에게 믿음을 주었다. 상대 선수와의 3라운드 경기가 이어졌고, 10대 14까지 간 승부에서 내리 5점을 딴 박상영 선수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변화로 이어진다. 긴장과 불안에서 벗어나 잠재능력을 발휘했던 박상영 선수처럼. 나를 믿음으로써 스스로 제한해왔던 일상의 여러 상황에서 해방을 맞이할 수 있다. 나아가려는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그것이 과거의 경험이라면, 상상에 가까운 기대라면, 누군가의 바람이라면 마음 한편에 밀어버리자. 서서히 지워버리자.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늦지 않았다. 변화할 수 있다. 나 스스로를 믿음으로써.

 

퇴사를 각오(?) 하고 현장에 나갔던 날, 나와 동료들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영업 업무는 성향과 맞지 않아서 성취감을 곧잘 느끼지 못했었는데, 새벽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설쳤던 기억이 난다. 그 날 이후로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말을 나뿐만 아니라 힘들어하는 동료들에게도 자주 해 주었는데, 퇴사를 하는 동시에 까맣게 잊고 지냈다.


오늘, 나는 다시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말로서 스스로에게 믿음을 주었다. 아무리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고 세부 계획이 있다 하더라도 이전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이전보다 더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결국 스스로에게 높은 기대라는 굴레를 다시 씌우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두근거리던 마음이 불안에서 기쁨으로 바뀌어가는 이 순간. 방황하는 나의 모습조차 아무런 조건도 내세우지 않으며 받아들이기로 했다.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이니까. 언제나 늘 잘할 수만은 없으니까. 비현실적인 높은 기대를 낮추기로 했다. 대신에 나를 더 존중하며 소중하게 여기기로 했다.  


박상영 선수가 따낸 금메달은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읊조림 때문만이 아니다. 대회 전에는 큰 부상 때문에 긴 시간 재활에 전념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숱한 과정들을 겪었을 것이다. 한 나라의 대표로서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굵은 땀방울의 증거이다. 다만, 포기할 수도 있었던 결정적인 순간에 승부를 뒤집은 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었다. 노력이라는 밑바탕에 믿음이 더해지면서 그는 역전이라는, 금메달이라는 짜릿한 쾌거를 이룰 수 있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한 가지씩 천천히, 엇나가더라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며 노력하자. 온화한 미소를 짓고, 따스한 마음을 품으며, 스스로에게 믿음을 주자. 절체절명의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기꺼이 감내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내가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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