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베트남을 다녀왔다. 당시 나는 사회복지사였고, 기관에서는 매년 우수직원을 선발하여 협회에서 지원하는 해외여행에 보내주었다. 여행 시기에는 세 가지 안이 있었고 개인이 선택할 수 있었다. 참가자가 확정되고 그룹이 형성되어 사전모임을 갖게 되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낯익은 사람을 만났다. 전 직장이었던 법인에서 근무할 때, 산하기관에서 일하던 동료 A였다. 그의 직업은 생활체육교사이다. 근무하는 곳도 달랐고, 어울릴 기회도 없었고, 업무 분야도 다르므로 얼굴과 이름을 서로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인연은 인연이었다.
12명의 참가자가 모이던 인천 공항에서 나는 한 명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름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 A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1명이 한 자리에 모인 상황에서 약속시간보다 늦는 A로 인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혹시 안 오는 건 아니겠지?'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단체 카톡방에 "어디쯤 오세요?" 라며 적는 사이, 눈 앞에 허겁지겁 달려오는 A의 모습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셀프체크인 코너에서 티켓을 발급받던 도중, A가 가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마치 우리가 해외여행을 앞두고 한 번쯤 상상해 보았던, 분명히 가방 안에 여권을 넣어두었는데 보이지 않을 때 하는 행동이었다. 수하물을 붙이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일행은 일제히 A만 바라보고 있었다. 불길한 상상이 현실이 되는 건 아닐지 걱정하는 표정들이었다. 50M 남짓 떨어진 거리에서 A의 얼굴에 굵직한 땀이 맺히는 게 보일 정도였으니, 괜한 우려는 아니었다. 다행히 가방 구석에서 여권은 발견되었고, 다가온 A와 그 날의 첫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3박 4일 동안 베트남 곳곳을 다니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떠들썩했던 주제는 단연 직장이었다. 당시의 나는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대학원을 알아보며 그만둘 기회만 엿보는 중이었다. A는 자신의 업무에 대해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능력을 발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발전된 능력을 업무에 적용시키기 위해 매일 같이 노력하는 것 같았다. 대화를 통해 드러났던 특유의 열정과 에너지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났다. 여행 중 세부적인 의견을 조율해야 되는 상황이 생기면 먼저 나서서 사태를 수습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 편하게 말을 걸기도 하고, 다른 관광지로 이동할 때는 검색을 하거나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A가 보여주었던 행동들은 내가 되고 싶은 모습에 가까웠다. 상대방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으면서 생각이나 감정에 따라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들이 새삼 부러웠다.
숙소는 2인실로 예약되어 있었다. 주먹, 가위로 방을 함께 사용할 사람을 결정했는데 우연히도 A와 짝이 되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요즘 말로 인싸에 가까운 A와 한 방을 쓴다는 게 기쁘면서도 부담이 되었다. 'A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랑 같은 방을 쓰는 걸 더 좋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의 힐링을 위해 떠난 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온전하게 휴식을 취하기는커녕 또 다른 누군가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 시기에 직장에서는 주로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관계에는 거리와 경계가 필요하다. 적당한 거리와 경계는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돕는다. 그때 나는 동료들, 고객들, 상사들과 거리는 가까워지고 경계는 희미해져 있었다. 사람들과 관계를 쌓아가며 얻게 되는 친밀감이 독처럼 느껴졌다. 내가 기대하는 바는 커지고 상대방에 대한 실망은 배로 늘었다. 업무시간이나 업무량을 고려하지 않고 나에게 부탁했고, 거절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었다. 점차 말속에 숨은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느낀 그대로의 생각이나 감정을 이야기하면 되었는데.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고, 돌아오는 반응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는 적정선의 말을 골랐다. 고르고 고른 말들은 대부분 대화를 겉돌게 했다. 사람들은 내 말에서 생각을 유추할 수는 있었겠지만, 무미건조한 목소리와 목석처럼 굳은 표정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했을 거다.
업무를 적게 받기 위해 노력하는 동료가 한 명 있었다. 업무분장 시기가 되면 팀 내에서 공식적인 대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서로의 업무를 바꾸자는 제안을 하곤 했다. 상사가 있는, 발언의 효력이 생기는 자리가 아닌데도 굳이 옆으로 다가와 조곤 한 목소리로 업무를 바꾸자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끼리 미리 계획을 세우고 회의 시간에 밀어붙이면 된다는 식이었다. 열변을 토하며 설득하던 그의 기대와는 달리, 나는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는 그의 업무와 바꿀 필요가 없었고 생각했다. 몇 차례 업무를 바꾸고 나서, 비로소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그럴싸한 이유를 대며 나를 흔들었다. 다른 업무랑 시간이 겹친다거나, 여름휴가와 업무 진행 시기가 겹칠 것 같다거나, 내 성향과 더 어울릴 것 같다는 게 주된 원인이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무를 바꾸면 그에게 이득이 되는 건 무엇일까?'와 같은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생겼다. 의심을 전제로 한 대화는 자연스레 늘어났다.
만약, 이때 마음속에 있던 감정을 꺼내 보았으면 어땠을까. 동료와 관계가 어긋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비로소 알게 된, 불쾌하다는 감정을 느꼈던 즉시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느껴보며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더욱 멀어졌다거나. 적어도 지금처럼 애매한 관계로 끝나지는 않았을 거다. '사이가 멀어지지는 않을까?', '나에게 실망할 수도 있어'라는 가정과 상상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그와 대화를 나누던 그 어떤 때보다.
우려와는 다르게 A와는 밤새도록 이야기를 할 정도로 서로가 잘 맞는다는 걸 느꼈다. 여행 내내 일상에 대한 속 깊은 대화를 하고, 사진도 함께 찍으며 마음을 깊게 나누었다. 여행이 끝나고 12명의 사람들은 각 자의 집으로 떠났다. 우리는 서로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여행에서 느꼈던 감정을 다 같이 공유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걸 직감했다.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 여행지에서 잊고 지냈던 다양한 상황들과 마주하게 된다. 여유 있고, 친절하고, 너그러웠던 행동들은 사라지고 저마다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아쉬웠다. 그러나 여행에서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던 인천 공항에서 서글픈 감정을 내비치기는 싫었다. 감정을 숨기고 태연한 척을 했다. 잔잔한 미소를 얼굴에 띠기 위해 노력했다.
달콤했던 일상에서의 도피가 끝났다. 다시 직장에서의 관계로 돌아왔다. 감내하기 어려웠던 나는 머지않아 퇴사를 하고 대학원에 입학하였다. 그리고 오늘, 나는 새로운 직장을 찾고 있다. 관계로 덜 괴로울 수 있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법한 곳만 눈여겨보고 있다. 내 또래의 사람들이 업무에 전념하며 성취하고 있을 때, 시간의 공백을 인식하며 나와 마주하는 건 괴로운 일이다. 어떻게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도서관에 앉아 전공 서적들과 씨름하고 있을 때, A에게 연락이 왔다. 기관 동료들과 축구를 하는데 참여할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여행 이후 처음 연락한 것은 아니었다. 한두 차례 연락을 받고, A의 동료들과 축구를 한 적이 있었다. 답장을 하기에 앞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정을 확인해보니, 축구 시간과 겹치는 계획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다행히 일부만 겹칠 뿐이어서 늦게라도 참석하겠다고 했다. 무리해서 안 와도 된다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축구도 축구이지만, A씨가 보고 싶어서 가는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요 근래의 나는 감정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매 순간 느끼는 감정은 나의 권리와도 같다. 자세나 말투, 표정으로써 표현되기도 하지만 정확하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찡그린 표정이나 경직된 자세에도 사람의 습관이 섞여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을 느끼고 머물러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표현함으로써 진실된 나와 가까이하게 된다. 마주하게 된다. 상대방 또한 내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알게 된다. 관계에서 단단하게 맺어지거나 강하게 틀어지거나 하는 건 내 임의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솔직한 '나'와 '너'가 만나야 한다. 서로의 마음으로 여행을 하듯 맞닥뜨리는 상황들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나눔으로써 결정할 수 있다. 우리의 '사이'라는 여행을 더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여기에서 멈출 것인지.
되돌아온 A의 답장에는 "무리하지는 마세요. 저도 보고 싶어서 연락한 거예요."라고 적혀 있었다. 이로써 나는 확인하게 되었다. A에게도 3박 4일의, 함께 우정을 쌓았던 나와의 시간이 의미 있었음을. 우리 '사이'의 여행을 끝내지 않고 지속하고자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미미한 변화가 나에게는 삶을 뒤흔드는 변화가 될 수 있다. 타인에게 감정을 제때 표현한다는 건, 나에게는 32년 동안 파온 어둡고 깊은 동굴에 한 줄기 햇살이 비추는 것과 같았다. 나를 들여다보기 두려워 동굴 앞을 서성이던 지난 세월이 떠오른다. 선연히 내리는 빛을 따라 동굴 속에 남겨진 나의 마음들을 천천히, 진귀한 보물을 바라보듯 소중하게 따라가 보고 싶다.
서투른 손길에 생채기가 날 지라도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오늘을 살아간다. 쓰라린 아픔에 얼굴을 찡그릴지라도, 나는 다시 도전하고 싶다. 다칠 수 있으니까 조심해야 된다는 생각보다는, 다칠 수도 있지만 기꺼이 감정을 드러내 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연고를 바르고 밴드도 붙이며 상처 나는 걸, 또는 상처 받는 걸 감수해 보고 싶다. 솔직한 감정으로 인해 상대방이 보일 반응보다 중요한 건, 이 순간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