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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Jul 04. 2019

네 번째, 출근 첫날

새로운 직장이자, 네 번째 첫 출근의 날이 밝았다. 3개월 동안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백수라는 직함을 벗고, 대학교의 조교라는 직업으로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임시로 하는 일이다', '조건에 안 맞으면 언제라고 그만둬야지'라는 기세 등등한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출근 전날이 되자 여느 때처럼 심장이 요동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일을 하게 될까 보다도,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가 더 궁금했다. 일이야 어떻게든 배우며 적응해나갈 수 있다. 특별한 전문성이나 기술을 요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사람을 잘못 만나면 배우거나 적응할 수 없다. 인생 최악의 상사를 떠올려보자. 나에게 그는 알아갈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존재였다. 그를 이해하기 위해 가족관계, 성장과정, 친구관계, 취미 등을 들어봐도 소용없었다. 받아들이고 버티거나, 그만두거나 하는 두 가지 방법만 있을 뿐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동료이고 상사일까. 복불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긁기 전에는 당첨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복권처럼, 출근 첫날은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갖게 한다. 과연 나의 가치관과 맞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직장에 다가갈수록 심장은 더욱 세차게 뛰었다.


"10분 뒤에 인수인계해 드릴게요"


곧 전임자가 될, 젊은 담당자가 나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추며 황급히 인사를 하고, 근처에 있던 탁자에 앉아 대기했다. 전임자는 직장에 대한 첫인상을 심어준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만두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직장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지닌 채 퇴사한다. 적어도 그동안 만나왔던 전임자들은 그랬다. 인수인계를 받는 첫날부터 '내일부터 오지 말까'라는 생각이 들게 했었다. 직장에 찌든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혹시 제 말이 빠르나요?"


A4용지 7장으로 된 인수인계서를 사이에 두고 그는 말했다. 사실 빠른 정도가 아니라 첫 장부터 무엇을 설명하는지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왜 이 업무를 해야 되는지 조차 아직 모르는데, 세부사항을 깊이 있게 설명하는 그를 보며 조바심이 났다. 일시정지 버튼이 있다면 꾸욱- 누르고 싶었다. 다만 그가 나에게 인수인계를 하기 위해 바쁜 업무 시간을 쪼개 노력했을 모습을 상상하며, 일단은 끝까지 설명을 듣고 꼼꼼하게 살펴본 이후에 궁금한 게 생기면 그때그때 물어보자고 결심했다.


그가 밀린 업무들을 잠시 해결할 동안 임시로 비어있는 자리를 안내받았다. 그곳에서 인수인계서 한글파일을 전달받아 필기한 내용을 추가하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빨간색으로 표시했다. 사내 메신저로 오후 1시 이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인수인계서에 있는 절차나 요건과 같은 단어들을 계속 쳐다보았다.


"지금 음식 주문할 건데 어떤 거 드시겠어요?" 


구내식당이 없다는 걸 그의 물음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식사 때마다 시켜먹거나 학생식당을 이용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고백하건대, 나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는 밥을 잘 먹지 못한다.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에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물어보는 내용에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하다가 대부분의 음식을 남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값이 싸고 양이 적은 음식을 고르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 나는 잔치국수를 먹겠다고 했다.


"뭐 하시다가 여기로 오셨어요?" 


이전 경력은 그 사람의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예외 없이, 식사를 하며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었으므로 그는 나에게 물었다. 몇 차례 내 경력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 전임자와의 대화는 소원해졌다. 다만 함께 식사를 하던 다른 동료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눈 덕에 모처럼 음식을 남김없이 먹을 수 있었다.


인수인계를 하는 날이었지만, 정식으로 근로계약을 맺은 날이기도 해서 나는 오후 6시까지 근무해야 됐다. 출근한다는 생각에 잠을 설쳐서인지 점심을 먹자 피로가 몰려왔다. 오후에도 그의 인수인계는 이어졌다. 주로 내가 묻고 그가 대답하는 형식이었다. 열띈 대화를 이어가던 도중, 그는 여담으로 자신의 전임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내가 일처리가 느린 편이라고 말한 시점 부터였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던 사람이라고 했다. 시간 외 수당도 주지 않고, 급여도 적은 마당에 야근까지 했다니. 머지않아 도래할 나의 미래인 것만 같아 불안했다. 틈틈이 공부할 요량으로 들어온 곳인데, 업무 시간에 전공책을 펼쳐 보기는커녕 까딱하면 야근까지 하게 생겼다.


내일부터 오지 말까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하지만, 함께 일하게 될 사람들은 좋아 보였다. 첫 만남이라 선입견에 불과한 판단일지라도, 같은 과에 소속된 2명의 동료들은 정이 많아 보였다. 사람들이 어떤 마음일까 궁금할 때면 나는 그 사람의 눈을 들여다본다. 눈에는 한 사람의 감정이 풍부하게 담겨있다. 오고 가며 마주친, 그들의 눈은 나에게 더 다녀도 괜찮을 거라는 신호를 보냈다.


여자 저차 하여,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1년 치 사업에 대한 인수인계를 받은 터라 혼란스러웠지만, 아직 1주일 동안 인수인계받을 여유가 있다는 생각에, 대충 아는 척을 하며 '내일 다시 물어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피곤했던 오후 일정을 어영부영 마무리했다.


아, 맞다. 이곳에서는 상사가 교수님들이고, 같은 사무실을 쓰지 않을뿐더러 전자 결재 시스템이다 보니 자주 마주칠 일이 없다고 한다. 그는 왜 이 이야기를 앞서 꺼내지 않았을까. 미리 들었다면 그 의미가 조금 반감되었을 것 같기도 하고, 적어도 사무실을 빠져나오던 나에게 미소를 안겨다 주는 소식임은 틀림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 역으로 들어가니 퇴근길 인파가 반겼다. 줄을 서서 간신히 탄 열차 안은 직장생활을 연상케 할 정도로 치열했다. 사람들과 부딪치는 건 기본이고, 열차가 심하게 흔들릴 때면 한쪽으로 쏠리며 우왕좌왕했다. 하지만, 역을 지날 때마다 미처 탑승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며 이마저도 감사하게 느껴졌다.


먼저 탑승한 게 특권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열을 비집고 들어오는 사람들로 인해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몸을 구겨 넣듯 사람들을 밀치며 탑승하곤 하는데. 피곤하다는 이유로 전후 사정은 잊고 지금-여기에 있는 나만 중요하게 여겼다.  


함께 열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다. 어머니이자 아버지이고, 아들이자 딸이다. 어떠한 인연 때문에 발이 맞닿을 정도로 붙어서 이동하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소중하고 귀한 존재이다. 가족에게뿐만 아니라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우리 각 자는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 하고 있으므로, 서로의 덕을 보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내일 퇴근길에는 조금 더 밝은 모습을 보여줘야지'라고 다짐하며, "잠시만 내릴게요."라는 작별의 인사를 남긴 채,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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