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근거림 Jul 21. 2019

나를 찾아가는 '몰입'

벌써 한 달이 되었네요. 조교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도요.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잘못된 정보를 안내하여 거듭 사과하기도 하고, 인수인계받은 내용에 없던 문의를 받아 절절매기도 하고, 끊이지 않고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일찍 출근하여 행정 업무를 처리하기도 했어요. 으레 그렇듯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 시간은 사람에 따라 다르며, 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편이에요.


불안하기 때문이에요. 실수할까 봐 걱정이 되어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정작 시도할 타이밍을 놓치곤 해요. 상담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저의 비합리적인 생각이 불안을 일으킨다는 사실을요. 돌이켜보면, 현실에서는 제가 불안하다고 느끼는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다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까 짐작하는 거지요. 이러한 제 상태를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 보면 안 좋은 생각들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하더라고요. 요즈음의 제가 다시 그렇거든요.


무기력한 시간을 보냈어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두 번째 직장에서 자주 느꼈던 불안감들이 엄습했어요. 학생에게 전화해서 보내준 서류를 확인하는 간단한 일에도 재차 고민했어요. 전화하는 게 맞는 걸까, 그냥 이대로 적어놓을까, 다른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스스로에게 물으며 행동을 더디게 했어요.


"어떻게 하면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아날 수 있을까요?"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물었어요. 큰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 그저 위로의 말이라도 듣고 싶었거든요.


"선생님께서 평소에 해 보고 싶었던 게 있나요? 취미 같은 거요"


동료는 말했어요. 저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솔직하게 대답해도 되냐고 물은 후에 대답했어요.


"음- 기간을 정해두지 않고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싶어요.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정착하기도 하면서요"


제 대답을 들은 동료는 "그것은 현재 하기 어려우니 지금 할 수 있는 것 중에서요-" 라며 말을 이어갔어요.


동료는 우울증을 겪은 경험이 있다고 했어요. 자녀가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 가정과 양육에 충실했던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다고 해요. 그때, 공허함을 크게 경험하며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고 했어요. 내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었나 하는 의문이 일상을 가득 채웠다고도 했어요. 


그 우울증을 인터넷 DJ 활동을 하며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해요.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노래를 신청하면 보유하고 있던 6,000곡 중에서 찾아 틀어 주었다고 해요. 요즘 유행하는 인터넷 음악 방송 같은 느낌은 아니었어요. 단지 음악만 들려주었거든요. 동료는 그 관계에서 위로를 받았다고 해요. 어떠한 말도 주고받지 않는 DJ와 관객이었지만, 서로에게 필요한 걸 나누어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료는 관객에게 위로를 건네고, 관객으로부터 지지를 받았을 거예요. '당신은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하는 전적인 지지를요. 


그 이후로도 포기하고 싶은 수많은 상황들을 겪었을 거예요. 인생은 바다 위에 돛단배 같으니까요. 우울증을 겪은 날부터 10년이 지난 오늘, 그가 저의 동료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 시도했던 용기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첫 시작은 음악을 청취하던 관객들의 말 없는 관심과 애정 덕분이기도 해요. 


"몰입할 수 있는 한 가지 활동을 찾아보세요"       


그의 말을 끝으로 자리로 돌아갔어요. 저는 "몰입할 수 있는 한 가지 활동을 꼭 찾아볼게요"라고 대답했어요.  어떤 활동이 저를 몰입하게 만들까요. 오래 고민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저는 몰입하는 활동을 하고 있거든요. 바로, 글쓰기예요. 


글을 쓸 때면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나 마음껏 소리칠 수 있어요. 그 제약은 대부분 스스로 세운 것이지만, 이마저도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어요. 저는 글이고, 또 글은 저예요.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어느 곳에서보다 진솔하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한 때는 글과 현실의 차이 때문에 괴로웠어요. 글에서의 저는 자유롭지만, 현실에서의 저는 결핍되어 있었거든요. 글에서는 쭉- 뻗어나가지만, 현실에서는 주저하고 막히는 게 익숙했으니까요. 저 스스로가 제약한 탓이지요. 이제는 달라졌어요. 글의 힘으로 점차 나아가고 있어요. 닮아가고 있어요. 전보다 더, 글 속의 제 모습이 점차 현실에서 드러나고 있거든요.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덜 해 지며, 글에서 자주 느끼던 편안함을 현실에서도 이따금씩 느끼고 있어요. 자유로워지고 있어요. 지금 마음에서 느껴지는 '할 수 있다'라는 충만한 기운을 따라 나아갈 거예요. 그게 어디든 제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이라면 기꺼이요. 


출처: Pixabay로부터 입수된 Free-Photos님의 이미지 입니다.

  

지금의 제 삶이 저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면, 제한적인 그 운명이라는 한계를 뛰어넘고 싶어요. 기대와는 다른 일들이 생길 때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되뇌며 억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인생은 동전의 양면 같다는 걸 이해하고,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주저함 없이 살아보고 싶어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든 결국 시간은 흘러요. 더 머물고 싶었던 시간도, 서둘러 지나가버렸으면 하던 시간도 후회가 깃든 추억으로 남아요. 저에게 있어 후회는 마지막 문턱을 눈 앞에 두고 그저 바라보는 데 있어요.


실패할까 봐 두렵다는 이유로, 망신을 당할까 봐 겁이 난다는 이유로, '나'를 잃을 것 같아 걱정된다는 이유로 변화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지 못했어요. 하지만, 내일의 내가 더 후회할 오늘을 살아갈 바엔, 덜 후회할 오늘을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은 덜 후회할 수 있는 방법은 알고 있어요.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저에게 일러주었어요. 다만, 제가 마음을 억누르며 따르지 않았을 뿐이에요.


앞으로 살아가는 시간들은 매 분, 매 초가 신기록이에요. 진실되게 행동함으로써 종전의 기록들을 돌파해 나가고 싶어요. 거절하는 게 어려웠던 제가 기어코 거절의 의사를 내비쳐 보고, 제안하는 게 어려웠던 제가 기어코 먼저 의견을 제시해 보고,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는 게 어려웠던 제가 기어코 속마음을 털어놓음으로써 스스로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니, 되었어요. 이미 하고 있으니까요. 이 글을 쓰는 순간부터 저는 덜 후회하는 사람이에요.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가요. 우리. '나'라는 목적지는 돌아가기엔 길지 않고, 곧은길로 가기에도 결코 짧지 않아요. 몰입할 수 있는 한 가지 활동을 통해 '나'를 느끼고, 그 느낌들을 쫓아 나아가 봐요. 어느새 마음과 동행하고 있는 스스로를 알아차리게 되지 않을까요. 


진실된 '나'는 어떤 모습일까요.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궁금하시다면, 몰입하게 만드는 활동을 찾아 함께 떠나보도록 해요. 그곳에서 잠들어있던 우리의 본 모습을 깨워보아요. 더 '나'스러운 삶을 위해서요.    

이전 12화 '나'스럽게 되기 위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