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위동 고개를 중간쯤 지났을까. 정류장에 서 있던 모녀를 발견했다. 잠자코 책을 읽고 있었더라면 몰랐을 텐데, 마음에 드는 구절을 곱씹는다며 고개를 들었다가 보게 되었다.
흔들리는 버스에 서서 이동하기에는 아이가 어려 보였다. 내 옆에는 이인용 좌석이 마침 비어있었다. 그 좌석은 다만 버스가 다음 정류장에 도착하면 내가 앉으려고 했던 곳이었다. 맞은편 복도 쪽에 앉아있었던 나는 평소부터 창밖 풍경 보는 것을 좋아했으므로 당연한 결심이었다.
모녀가 타기에 앞서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창가 쪽에 앉아 버스에 오르는 모녀를 바라보았다. 버스카드를 찍고 다급한 눈으로 자리를 살피는 아이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함께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없었으므로 아이의 엄마는 내 옆에, 아이는 내가 원래 있던 자리에 앉았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앉은 모녀를 보며 자리를 괜히 옮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떨어져 앉는 게 싫었던지 아이는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에게 다가왔다. 엄마의 손을 잡고 똘똘한 눈으로 주변을 쳐다보던 아이.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다른 자리로 옮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이가 혹시라도 넘어질까 염려되어 곧장 뒷자리로 가서 앉았다.
아이의 엄마는 내가 아이를 위해 자리를 옮겼다는 걸 눈치채시고 아이에게 "고맙습니다 해야지"라고 말했다. 옹알거리며 고개 숙여 인사하는 아이를 보며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 인사를 받을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창가에 앉고 싶다는 마음에 자리를 옮기지 않았더라면 아무런 상황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모녀는 비어있던 이인용 좌석에 바로 앉았을 테고, 자리를 옮기는 나에게 조금의 미안함도 느끼지 않았을 거다. 아이가 흔들리는 버스에 서 있지 않았을 테고, 아이의 엄마는 그런 아이를 보며 '넘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투명하게 번지던 아이의 미소를 곱씹으며 생각을 달리 했다. 나는 이인용 좌석 복도 쪽에 그대로 앉아있던 것보다 창가 쪽 자리에 앉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나는 내 의지대로 행동했다. 모녀는 정류장에 서 있었을 뿐, 사실 내가 타고 있던 버스에 탈 거라는 어떠한 기약도 없었다. 단지 내 생각이 운이 좋게 들어맞았던 것뿐이다.
다만 실제로 버스에 탔기 때문에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으며, 나는 그 상황에 맞춰 자리를 다시 옮겼다. 아이는 엄마와 나란히 앉아 창 밖을 구경하며 쉴 새 없이 "마마"라고 말했다. 그 모습에 내심 뿌듯했다. 자리를 비켜드리는 게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앞서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마음이 말하는 대로 행동하고, 어떤 상황이 새롭게 다가오면 그에 맞춰 다시 행동하면 된다. 우려는 우려일 뿐 현실과는 다르다. 잘못된 행동으로 어려움에 처할지라도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나에게는 있다.
늘 있었다. 실패하지는 않을까, 사람들에게 비난받지는 않을까 두려워하여 단지 시도하지 않았을 뿐이다.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던 아이의 푸른 마음을 떠올리며, 내 행동에 자신감을 더욱 가져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