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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Sep 27. 2019

마음이 하는 말을 꺼내는 일

나에게는 엉뚱한 특징이 하나 있다. 전체를 생각하려는 마음이 그것이다. 내 선택이 주변 사람들에게 끼칠 영향을 깊게 고민해보고 행동으로 옮긴다. 자연스레 행동은 느려지고, 부자연스러워진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는 여러 상황을 가정하며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내가 어떤 말을 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끊임없이 생각한다. 다툼의 승자는 듣는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행동인 경우가 많았다. 


어떤 행동을 해야 옳은 것일까. 어떤 행동을 해야 아무도 상처 받지 않고 만족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은 사람들과 마주하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다녔다. 


생각과 행동의 간격이 좁은 친구들은 대부분 나를 답답해한다. 왜 그렇게 말이 느리냐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듣기도 했고, 부담스러워하는 친구들의 표정을 이따금씩 보았다. 어떤 의도에서 말했을지,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게 최선일지에 대한 확신은 잘 서지 않았다. 경험이 쌓여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원 수업을 들을 때였다. 발표과제를 위해 조를 짜야하는 상황이었다. 같은 과 동기는 나를 포함하여 7명이었다. 그중 3명은 여름방학 때 주 1회씩 공부를 함께 한 동기들이었다. 조 인원을 3~4명으로 편성했으면 좋겠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있었다. 같이 공부를 하면서 가까워진 상태였으므로 나는 이들 3명과 한 조가 되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같은 조를 하자는 말을 나는 꺼내지 못했다. 7명의 동기들이 있는 상황에서 그중 3명에게만 "우리 같은 조 해요"라고 말하는 건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와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스터디를 한 동기들과 조를 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다른 동기들이 덜 친하다는 뜻으로 해석하지는 않을까. 스터디를 함께 한 3명 중 일부와 자신이 같은 조가 되고 싶었는데, 내가 먼저 말을 꺼내서 다른 동기들이 의견을 전달할 기회를 못 갖게 되는 건 아닐까. 혹은 스터디 멤버들 중 일부가 다른 동기들과 같은 조가 되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 와 같은, 벌어지지 않은 상황에 대한 생각들은 1분 남짓한 시간 동안 퍼 터지는 다툼을 벌였고, 승자는 침묵하는 행동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선호하는 것이 있다. 그 누구도 측량할 수 없는 고유한 마음이 있다. 그러나 주변의 시선이나 상황을 의식해서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때때로 내적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행동이 주변의 평화를 깨트린다고 할지라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해내는 것이 옳다. 어떤 행동을 하려고 결심했다가 '이러 결과가 있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며 참았다면 떠오를 때마다 마음속을 헤집으며 괴롭힐 것이다.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결심한 대로 행동했다면 어땠을까?' 하며 후회하게 만든다.


마음의 음성이 또렷했을수록 비슷한 상황이나 시간의 공백이 있을 때마다 메아리친다. 같은 조가 되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했던 그날의 일은 마음을 내내 두드렸다. 결국 동기들에게 같은 조가 되고 싶었지만 선뜻 표현하지 못했고, 다음 기회에는 꼭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는 것으로서 마음과 타협할 수 있었다. 


행동을 해야 되는 그 상황에서 마음과 일치되게 전달하는 것이 좋다.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돌려서 표현하거나 선의의 거짓말을 할 지라도 내 마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괜찮다. 하지만 마음의 소리가 크게 울림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걱정하여 묻어둘 경우에 우리는 심적인 고통을 겪게 된다.   


때로는 주변 사람, 상황을 고려하지 말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해보자. 만약 그게 어렵다면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보자. 직장에서 다 같이 중국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갈 때 혼자서 칼국수를 먹으러 가기는 어렵더라도, 모두가 짜장면이라는 통일된 메뉴를 주문할 때 잡채밥을 외치는 용기를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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