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근거림 Oct 22. 2019

낯선 길에서 마음과 만나다

여행이 떠나고 싶을 때, 여행이 필요할 때 나는 가끔씩 길을 잃는다. 집에서부터 정처 없이 걷기도 하고, 약속 장소에 1시간 일찍 나가 주변을 배회하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그 지역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걸 좋아한다. 내가 살아가는 환경에서는 삶의 순간들을 유심히 관찰할 기회를 잃는다. 쫓기듯, 땀이 깊게 베인 시간들을 떠나보낸다.


터벅터벅. 여행지를 걷다가 마주치는 사람들은 표정, 행동, 말투 모두가 자연스럽다. 비록 그 사람들에게 나는 베짱이와 다름없는 존재임이 틀림없다. 치열한 일상의 흐름을 깨는 호화로운 이방인으로 비칠 테니까.


그럼에도, 낯선 길을 찾아 걷는 이유는 내 안에 꿈틀거리는 나와 만나기 위해서이다. 인적이 드문, 자연과 가까운 곳으로 점차 발길을 옮기며 고요한 분위기가 주는 환희에 귀를 기울인다.


요즈음 나는 두통에 시달렸다. 팔, 다리가 자주 저리고 손에 유독 땀이 나기 시작했다. 온갖 약을 달고 살았고, 허겁지겁 시간을 덜어내며 살아가고 있을 때, 여행의 유혹을 느꼈다.


토요일을 맞아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1시간의 여유를 두고 나는 그 장소에 나갔다. 만나는 위치를 확인하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어둔 채 주변으로 여행을 떠났다.


발길을 옮길수록 소리는 사라졌고, 푸른 잎들은 햇살을 머금으며 손을 흔들었다. 일상에 녹아든 사람들의 모습에, 평온한 그 거리에 몰입했을 때, 나는 마음과 만났다.


일체유심조라는 표현이 있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는 뜻이라고 한다. 아무런 생각도, 목적도 없이 낯선 길을 걸으며 일상에서 느꼈던 여러 아픔을 잊고 마음이 하는 말을 나는 들을 수 있었다. 


휴식이 필요하다고 마음은 말했다. 오늘처럼 걷고, 호흡하고, 감상하고, 사색하는 시간이 절실하다고 했다. 어쩌면 두통과 손발 저림을 겪는 이유가 마음이 하는 말을 무시한 채 이겨내려고만 했던, 이기적인 내 모습에 대한 마음의 외침은 아니었을까.


약속시간이 다가온다. 마음과는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때때로 마음과 만나는 일은 내 일상의 그 어떤 활동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비로소 마음을 달래며, 나는 화해할 수 있었다.


우리 앞에 놓인 인생을 더욱 힘껏 마셔보자. 전력으로 질주한 뒤에 벅찬 가슴으로 마쉬는 시원한 공기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생각은 생각일 뿐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