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직장에서 만난 동기가 결혼하는 날이다. 퇴사할 때까지만 해도 상사,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재입사 권유와 거절로 지난 4년간 불협화음이 끊이질 않았었다. 그 사이에 직장 내에서는 돌아오는 조건으로 직급을 요구한 사람, 이직한 곳이 힘들다며 다시 돌아오고 싶다고 말한 철부지 같은 사람으로 소문이 퍼졌다.
오해가 퍼져나가는 동안 해명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그만둔 마당에 재직하는 사람들을 한 명씩 찾아가 떠들 수도 없고. 나는 그렇게 촉망받던 직원에서 더 좋은 조건으로 재입사하고 싶어 안달이난 직원이 되어버렸다.
동기의 결혼식은 그를 축하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하지만, 나를 깎아내렸던 사람들에게 재직할 때보다 더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한두 시간의 짧은 만남을 위해 나는 새로 산 하얀색 셔츠를 다리고, 일주일 전에 이발도 하고, 구두에서 광이 나게 닦았다.
드디어, 결혼식 날이 밝았다.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평소에는 먹지 않던 아침을 챙겨 먹고, 드라이기를 여자 친구의 손을 잡듯 다루며 머리를 말렸다. 모든 준비가 순조로웠다. 바쁜 일정으로 어제저녁을 먹지 못하여 부기가 빠진 얼굴 또한 자신감을 올려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셔츠에 다려지지 않은 부분을 발견한 순간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누르고 눌러도 가라앉지 않는 단추와 단추 사이의 굴곡은 준비되지 않은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배불뚝이처럼 솟은 셔츠의 일부를 누르다가 출발하려던 시간이 지나버린 걸 발견하였다. 은행도 들러야 하고, 중간에 여자 친구와 만나서 같이 가기로 했는데. 쫓기듯 구두를 신고 은행으로 향했다.
상쾌한 아침 공기가 반겼다. 햇살도 눈이 부셔 다시금 일이 잘 풀릴 것 같다는, 근거 없는 기대가 생겼다. 선선한 가을 날씨 덕분에 셔츠에 대한 생각을 잠시 잊고 있었는데, 은행에 다다랐을 때 오른쪽 구두굽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오른발을 들고 굽을 살펴보니 부서지고 있었다. 산산조각 나 있는 굽의 모습은 안 좋은 상황을 맞이할 거라는 예언 같았다. 실소가 나왔다. 광을 내려고 모처럼 열심히 닦았는데. 집에는 여분의 구두도 없었다. 시간이 멈춘 듯, 나는 몇 초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분명 나에게 벌어진 일들에 의미부여를 하고 걱정했을 거다.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이며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상황들을 상상했을 거다. 그러나, 나는 몇 초간의 방황을 끝으로 마음을 다 잡았다. 시선을 다시 주변으로 옮기며 내가 현재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고민했다.
간단했다. 집으로 돌아가 구두와 유사한 신발을 신고, 가는 중에 여자 친구에게 조금 늦을 것 같다고 연락을 하고, 서둘러 은행에 들러 돈을 찾고, 근처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면 된다. 셔츠가 조금 뜬 거나, 구두가 망가진 것 말고 나에게는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첫 직장에 들어갈 때 샀던, 내 발에 신겨진 이 구두가 이제 떠날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간 인연들이다. 나는 동기의 결혼식을 축하하러 가는 길이고, 나를 깎아내렸던 사람들을 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결혼식을 계기로 다시 보게 되지만, 그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는 표정으로 보지는 않을까 하며 불안해할 이유가 없었다. 벌어지지 않은 상황을 가정할 필요는 없고, 그렇게 쳐다본다 해도 나는 나 스스로 떳떳하니까.
우려와는 달리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자 친구와 함께 동기의 결혼을 축하해주었다. 결혼식장에는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좋아하던 동료들이 되려 많이 보였다. 퇴사 이후 대부분 못 만난 사이였다. 서로의 존재를 잊고 각 자의 시간을 살아왔으므로 눈을 마주치는 게 대체로 어색했다. 그중에는 목례로 끝나는 사이도 있었고, 그동안의 안부를 묻는 사이도 있었다.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오랜만에 만났을 때, 친한 사람에게는 더욱 마음이 가고 덜 친한 사람과는 어색한 건 당연하다. 결혼식에 초대해 주었지만 못 가서 미안하게 생각하는 후배, 나와 닮고 싶다는 고운 말을 자주 해서 고마웠던 후배, 일은 잘하면서도 마음이 여려 걱정이 되었던 후배, 사내연애 후 깜짝 결혼을 발표하여 동료들을 놀라게 했던 속 깊은 후배, 추진력 있고 정직하여 평소 멋있다고 생각했던 후배처럼 여전히 마음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과 마주치고, 인사를 나누고, 웃으며 서로의 삶을 응원했다.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해명할 말을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행복한 모습을 보일 필요도 없었다. 그저 나로서 충분했다. 이 사실을 깨달았던 순간은 결혼식을 올린 친구 부부의 행진만큼이나 빛나고 소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