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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Nov 16. 2015

[10] 힘겨웠던 가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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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간다. 코 앞에 겨울이 다가왔다. 외로움과 고독을 감당하지  못해 해야 할 일을 미루어 둔 채 어두운 밤을 걷기도 여러 번. 따뜻한 국물에 의지하여 못하는 술 한잔 하고 싶어지는 계절. 한 걸음만, 더도 말고 단 한 걸음만 가면 겨울이다. 그렇게 진했던 가을은 나의 시절과 함께 사라진다.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단물 빠진 기억들은 어느새 좋았던 추억들로만  남아 퇴사 전 모습 그대로 동료들이 한 껏 반겨줄 것만 같았다. 나라면, 어떤 공백도 없이 이전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단히 힘들었지만 그래도 사회 초년생의 풋풋했던 그때였으니까.


이직을 준비하면서도 나는 상상했다. 떠올릴 때면 달콤했다. 현실은 만만치 않았으니까. 잘 알지 못하는 곳에 단지 취업을 위해 억지로 밀어 넣어야 하는 나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럴 때마다 전 직장의 기억은 찾아왔다. '다시 함께 일했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올 수도 있다.'라는 헛된 바람과 함께.


이제는 알 것 같다. 더 이상 상념을 떨쳐버리기 위해 매일 밤마다 걷지 않아도 된다. 한결 자유로워졌다. 덕분에 과거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그만둔다는 결정을  하기까지의 8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나는 요즘보다 더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었다. 그런데 희미해졌나 보다. 베개를 눅눅히 적셨던 자국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처럼.


아직 무엇을 하고 싶은 지 찾지 못했다. 어쩌면 평생 찾아 헤맬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아가기를 두려워해선 안된다. 만약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나는 평생 그 시절을 떠올리며 후회했으리라. 또 받아들이지 못했으리라. 한사코 부정했으리라. 젊었을 적 나의 겁 많았던 마음을.


"이번에 그만둔 누구는 어디에 들어갔대"

부러웠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심결에 들어서 더욱 그랬을까. 나 또한 그만 둔 후 사람들에게 들릴 소식이 이왕이면 해피엔딩이기를 바랐다. 더 좋은 조건만큼 행복한 결말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방황을 거듭하던 OOO, 결국 대기업 취업에 성공하다'가 나를 떳떳하고 당당하게 만들어 줄 줄 알았다.


아니었다. 성공에는 어떤 기준도 없었다. 오히려 집착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었다. 삶에는 각자의 길이 있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자신만의 . 외부의 환경을 의식한 채 나는, 나에게마저 등을 돌리고 있었다.


부정하고 싶었다. 내가 했던 말, 행동, 지었던 표정 까지도.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 내가 했던 말들은 모두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괜찮다', '충분하다'는 표현을 동료에게는 그리 쉽게 하면서 왜 나에게는 그런 따뜻한 위로의 한 마디 건네지 않았던 걸까.


'나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정체되어 있는 건 아닐까?'라는 물음에 아무도 답하지 않는다. 사실 답하지 않는 게 맞다. 인생은 결국 혼자 살아가야 하는 거니까. 나는 줄곧 누군가가 대답해주길 기다렸다.


헛된 기대들이 느슨해졌다. 그 사이로 현실이 쏟아져 내린다. 아직은 감당하기 어렵다. 하지만 받아들이고자 한다. 이것 또한 내 몫이니까. '얼마나 많은 시간 속에서 나를 놓치고 살았을까?' 이 또한 누구도 대답해 주지 않는다. 나는 조용히 대답해본다.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야'


다행이다. 나는 지금 별로 행복하진 않다. 그래도 미소 지을 수 있다. 좋다. 알게 되었으니까. 또  알아 가고 있으니까. 지금은 인생에서 나와 가장 친한 시절이다.  적어도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진 않으니까. 솔직하니까.


'미안해. 더 이상 외면하지 않을게. 그리고 함께 나아가자.'


겨울 잠을 준비하는 이들과 대조적으로 풍성했던 단풍나무들이 멋 없게 야위었다. 피골이 상접한 꼴이 우습다. 저렇게 늙어가는 건 아닐지, 두려움이 인상을 살짝 찡그리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내년이 되면, 모진 시간들을 인내한 우리 앞에 다시 찾아오리라고. 진한 가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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