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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Jan 08. 2020

나에게 보내는 편지

혹시, 편지 주고받는 걸 좋아하시나요? 못다 한 말들을 깊이 있게 적을 수 있는 편지를 저는 좋아해요. 조용한 방 안에서 스탠드 불에 의지한 채 한 글자씩 마음을 담아 써 내려가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편지는 진솔한 감정과 접촉하게 만드는 신비로움을 가지고 있어요. 다 쓴 편지를 읽어보면 받아 볼 사람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느껴져요. 그래서일 거예요. 부치지 못한 편지들이 책장에 꽂혀 바래져 가는 이유는요.


맞아요. 편지는 받는 사람만을 위한 게 아니에요. 관계를 돈독하게 하거나 개선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편지를 쓰는 사람의 감정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지요. 혹시, 타임캡슐을 알고 계신가요? 한 장소에 일정기간 동안 특정 물건을 보관하다가 되찾는 활동이요. 타임캡슐에 들어가는 물건 중에는 스스로에게 쓴 편지가 많아요. 오늘날의 우리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살아가고 있을 스스로에게 편지를 보낸다니. 낯설게 느껴지네요.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일의 모습이 뚜렷하지 않은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해요. 저도 그렇거든요. 구직 활동을 다방면으로 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아요. 언제 새로운 직장에 입시하게 될지 기약이 없거든요. 어렵게 취업에 성공했다고 해도 그게 끝은 아니에요.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조건이나 환경이 맞지 않아 그만둘 경우 또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몇 년 뒤의 자신에게 편지를 쓴다는 게 요즈음의 현실에서는 지극히 낭만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그런데요. 브런치 서랍장에 보관하고 있던, 1년 정도 전에 작성한 제 글을 우연히 발견했어요. 제목은 <오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였어요. 내용을 읽어보니 다 완성된 글은 아니었어요. 구체적이지도 않았으며 힘들어하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성 글이었지요. 내용이 별로 길지도 않았는데 차마 못 읽겠더라고요. 그 시기에 느꼈던 감정들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에요.


불안으로 점철되고 도망치고 싶다는 욕구로 가득 찬 일상에서 저는 안정감을 갖지 못했어요. 매일 떠날 궁리만 했지요. 좋아하는 카페, 햇볕이 내리쬐는 한적한 거리, 파도소리가 퍼지는 해변가에 있는 제 모습을 괴로울 때마다 상상했어요. 돌아오는 건 괴리감뿐이었지만요. 어떻게든 현실에 적응해 보고자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었어요. 하지만 나아지는 건 없었어요. 현실은 그대로였기 때문이에요.


사람을 만나거나,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는 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함이지 원하는 일을 찾는 과정은 아니었다.


변화하고 싶다면 행동으로 옮겨야 해요. 뚜렷한 동기를 바탕으로요. 삶에 있어 좋은 대안을 찾았다고 해도 행동하지 않으면 변화는 찾아오지 않아요. 이 사실을 깨닫기 이전의 저는 불안으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잠재우기 위해 스스로에게 편지를 적었어요. 그 편지가 오늘 저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까닭은 진솔하기 때문이에요. 또한, 그 당시의 저는 이미 해답을 알고 있었더라고요. 다만, 시도하지 않았을 뿐이지요. 


스스로에게 쓴 편지를 일정 기간 뒤에 다시 읽는 활동은 커다란 깨달음을 안겨 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안하고 싶어요. 여러분께서도 이 기회를 빌어 스스로에게 편지를 써 보는 건 어떨까요. 자기만의 공간에서 숨김없이 마음의 언어로 고백하는 거예요. 편지를 쓰면 그 순간에도 위로가 되지만 언젠가 다시 읽어볼, 최선을 다해 살아온 우리에게 값진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면, 교정 없이 과거에 제가 썼던 편지를 공개할게요. 여러분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어요 :D    


  



나에게 편지를 써주고 싶었다. 자질구레한 내 일상을 말할 곳은 없으니까. 하지만 거듭 편지를 쓰다가 펜을 놓았다. 자신한테 편지를 쓴다는 게 한편으로 우스워서, 평소 편지를 못 받은 것에 대한 자기 위로 같았기 때문이다.


편지는 보내는 사람이 받는 사람에게 전하는 귓속말이다.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은, 서로를 위한 마음의 언어이다. 그러다 보니 발신자와 수신자가 같은 편지를 쓴다는 것이 생각할수록 쑥스러웠다.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었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엄연히 다르다. 내일의 나는 어제가 될, 오늘의 나에게 지나치게 얽매여 지낼 필요가 없다. 단절된 느낌으로 받아들이긴 어렵더라도, 내일을 맞이한 오늘의 나는 마음먹기에 따라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살아갈 수 있다.



죽녹원처럼 대나무가 울 거진 곳에 섰을 때 느낄 수 있는 고요함을 상상해보자. 스산하게 밀려드는 바람에, 인적이 드문 적막함을 떠올리며, 마음의 얽힌 매듭을 풀자. 온라인에 남기는 익명의 글처럼 숨김없이 고백해보는 거다.


오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노력하고 있구나. 나는 알아. 과거의 네가 도전에 대한 두려움으로 얼마나 웅크려 지내왔는지. 그러한 과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재차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어. 현실로 발을 내딛으려고 시도하고 있지.


상상하는 걸 좋아했잖아. 불쾌한 일이 있어도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보다는 네 방에서 눈물을 흘리기에 급급했지. 위안은 되었지만, 해결은 되지 않았었어. 상황은 그대로였고, 다만 괜찮아진 것 같은 마음만 들었었지.


깨달았어. 매 순간, 너는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물러서지 않았어. 나아가기 위해 기어코 한쪽 다리를 들었지. 기억이 나. 숱한 상황들이 있었지. 대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었고, 졸업하고 나서 하고 싶은 일이 없어 방황하기도 하고, 어렵게 들어간 첫 직장에서는 동료나 상사에게 상처를 주거나 실망시킬까 봐 표현을 절제하기도 했지.


이겨냈었지. 그 모든 순간을, 나는. 얼마나 애가 탔었었는지. 예상하지 못한 일이, 그 일은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탓을 했었지. 나 스스로에게. 자책하고, 꾸짖으며 이런 것 하나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하냐고 비아냥거렸지.


나는 알아. 그때의 경험들이 나를 성장하게 했음을. 비록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마음을 수도 없이 느꼈지만, 여전히 느끼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 또한 추억으로 회상하며 나아가기 위한 거름이 되어 줄 거라는 걸.


오늘 새벽,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지. 출근 준비할 시간은 다가오고, 나는 아직 오늘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었는데. 오늘은 또 무슨 일들이 내 앞에 놓이게 될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발생하여 나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건 아닐지. 겁이 났었거든.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 나는. 그동안 시도하는 걸 두려워해서 결정을 미루고 회피하다가 더 큰 낭패를 보았었잖아. 네 과거를 돌이켜보면, 해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한 후회로 가득하잖아. 맞아. 지금조차 시도하는 걸 두려워하고 포기한다면 앞으로는 더욱 도전하기 어려울 거야. 나이가 들 수록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위해 더 많은 것들을 감당해내야 하거든.


모든 순간이 나에게는 도전이야. 같은 상황은 결코 일어나지 않거든.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지. 흰 바탕에 채워나가는 글쓰기와 같지. 정답이 없고, 언제 끝이 날지 모르거든. 어떤 단어를 선택할지, 어디에 쉼표나 마침표를 찍을지, 어떤 의미를 담아 글을 이어갈지 내가 선택하기에 달렸어.


만약, 나에게 단 한 문단이 주어지고 가장 하고 싶은 말을 적으라면 이렇게 할 거야.  


나는 네가 잘하고 있다고 믿어. 조금은 훌륭하다고도 생각해 보았어. 그럴 일은 없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모두 너에게 손가락질을 해도, 적어도 나 만큼은 네 편이 되어줄 거야. 나여서 고마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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