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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Jan 13. 2020

아침에 맡는 상쾌한 공기

백수에게 가장 괴로운 시간은 역시 아침이다.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 지하철을 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회사 앞까지 서둘러 걷던 모습을 뒤로한 채 여전히 침대에 누워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께서 출근하시나 보다. 어머니께서는 진작에 조카들을 돌보러 누나네 집으로 가셨다. 혼자 남은 집. 치열했던 지난 생활과는 달리 사회적 소속이 없는 시간은 무기력하다.


일을 그만둔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급여가 적고 근속 기간이 짧아서였는지 쉬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다만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무소속의 시간을 보람차게 보내려고 했다.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고, 글도 쓰면서. 하지만 근무가 사라진 시간은 계획대로 쓰이질 않았다. '피곤하니까 조금만 더 자자', '재밌으니까 조금만 더 보자', '외로우니까 조금만 더 놀자'와 같은 마음들은 나태해진 일상에 자주 등장했다. 유혹에 줄곧 넘어갔으며, 돌이킬수록 쓰디쓴 패배감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피하고 싶은 숱한 상황들에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의지의 시민이 아닌가. 친구들이 먼저 말을 걸어주기 전에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던 내가 어느새 약속을 먼저 제안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결코 물러섬 없이 찾아다니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러한 시도들이 좋은 결과로 늘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말을 걸어도 별다른 반응이 없거나, 낯선 사람들과 분위기에 주눅 들어 말없이 서성이다 돌아오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물론, 관계는 미묘하고 복잡하니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지난 주였다. 무기력함이 절정에 치달아 '내가 왜 살아가는 거지'라는 생각이 밀려올 때, 긍정적인 행동을 시도하기로 결심했다. '아침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이다. 오전 10시가 다 되어 하루를 시작하면 늦장을 부렸다고 자책하며 남은 시간들을 후회하며 보내기 때문이다. 알람 시계가 오전 7시에 여전히 맞춰져 있다. 부지런한 습관을 유지하고자 알람 시간을 미루거나 지우지 않았다. 알람을 끈 후에 다시 잠드는 날이 비록 많았지만.

       

아침 7시에 시작하는 하루를 앞두고 저녁 운동을 했다. 홍제천을 달리며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게 해 주세요'라는 소박한 소원을 빌기도 했다. 오후 11시 정도가 되어 잠이 들었다. 긴장을 해서인지 오전 7시가 되기도 전에 눈이 번쩍 뜨였다. "너 오늘 어디 가니?"라는 어머니의 물음에 "오늘부터 열심히 살아보려고요"라고 대답하는 서른세 살의 내 모습이 쑥스러웠다. 샤워를 마치고 먼저 한 활동은 산책하기였다.


상담 공부가 현재 나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면접을 보기 위해서도 그렇고 상담 수련을 시작해야 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하다는 마음 때문에 규칙적인 생활을 깨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활기차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데에는 출근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회사에서 해야 될 일들로 머리는 뒤죽박죽이 되고, 열차에서는 사람들에게 끼여 녹초가 된 상태로 출근했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날이 없었지만, 위안을 얻는 순간들도 있었다.


회사로 걸어가던 10분 남짓한 거리에서 심호흡을 하며 바라보았던 푸른 하늘. 열차의 움직임에 따라 온몸이 흔들리면서도 함께 흔들리는 사람들을 보며 얻었던 동지애. 지하철 역으로 가던 길에 마주치던 시장 사람들의 건강한 미소. 투덜대느라 인식하지 못했지만 나의 아침은 경쾌했고 정겨웠다. 그 아침을 재현해보고자 나는 오전 8시가 다 되어 동네를 걸었다.


가방을 메지 않고 걷는 길은 어색했다.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며 소외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걸음이 더해질수록 이내 상쾌해지는 걸 느꼈다. 지금 여기에 살아있다는 게 온몸으로 와 닿았으며, 하고 싶은 일들로 마음이 충만해졌다. 이력서를 끊임없이 써야 된다는 현실마저 감사하기까지 했다.


내일도 하루를 오전 7시가 시작할 예정이다. 샤워를 하고 아침 8시가 되기 전에 산책을 나가려고 한다. 이번에는 출근길을 따라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려고 한다. 반복되던 출근길에 간절하게 떠올렸던 바람들을 되새겨 보기 위함이다. 운동, 공부, 글까지. 관심 가는 일이라면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다.


오전 7시에 일어나는 게 익숙해지면 또 다른 습관을 들이고 싶다. 무엇부터 시작해볼까. 새로운 도전을 앞둔, 설레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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