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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Mar 06. 2020

안쓰럽고 불쌍해도 '나'이니까

산책을 했다. 밤이 깊도록 잠에 들지 못했으니까. 마스크를 끼자 안경에 김이 서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안경을 벗으니 세상에는 오직 나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은 채, 나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 점점 들어갔다.


가수 최백호가 부른 <부산에 가면>이라는 노래를 최근에 알게 되었다. 가사는 해석하기 나름이다. 같은 가사를 듣고도 사람마다 다른 장면을 떠올린다. 저마다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함축적인 가사는 사람들의 사연과 만나 구체적인 의미를 갖는다. 조금은 특별한 의미라고나 할까.


<부산에 가면>을 들으며 나는 바다를 생각했다. 밤이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나는 혼자 해변을 걷고 있었다. 바람이 쌀쌀하게 불어 제법 춥다고 느끼던 나는 결코 숙소로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 걸음은 나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멈추거나 뒤돌아서면 현실의 굴레로 다시 떨어질 것 같았으니까. 


목적도, 의미도 없다. 벗어나기 위해 나는 살아간다. 자유로워지고 싶다.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나'라고 쌓아오던 토대를 무너뜨리고 그 위에 새로운 '나'를 세울 수 있다. 힘을 주고 밀치면 제일 높은 곳에서부터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차마 손에 힘을 주지 못한다. 누군가에게는 허술하게 쌓인 조약돌일지라도, 그 조약돌을 하나씩 쌓기 위해 노력했던 나를 알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게임을 하고,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온종일 이불속에 자주 숨어있던 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서였다. 나와는 다른 존재에 관심을 기울이고 빠지다 보면 현실에서의 고민은 쉽게 잊혔다.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고 비판하며 존재감을 찾았다. 세상과 차단되어 가면서도, 알고 있었지만 반복했다. 나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으니까. 어렸던 내가 불안하고 겁이 많아서 만든 습관이라는 것을 이제는 깨달았다. 


친구들을 좋아하면서도 "좋아해"라는 말을 하지 않고 연락을 먼저 주기까지 기다리던 나. 가보고 싶은 장소가 생겨도 '꼭 가야만 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주저하다 포기하던 나. 좋은 일이 생겨도 부모님이 기대할까 봐 일부러 말하지 않았던 나. 안 좋은 일을 겪어도 주변 사람들이 걱정할까 봐 속으로만 앓던 나. 


'나'였다. '나'이다. 지워버리고 싶은, 후회되는 기억들일지라도 '나'이다. 비록 방향은 잘못되었을지라도 '나'를 위해서 했던 행동들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을까. 힘줄이 터질 것처럼 주먹을 꽈악 쥐었다가도, 이내 풀어 조약돌들을 쓰다듬을 수밖에 없는 이유. 그 이유는 안쓰럽기 때문이다. 


안쓰럽다, 내가. 불쌍하기도 하고. 바보 같다. 편하게 살지 못하니까. 얼마나 더 가슴 졸이며 지내야 할까. 몇 살이 되어야, 어떤 고비를 넘겨야 세상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을까. 늘여놓아도 정답이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신한다.


포기하지 않을 거다. 용서하며 이내 살아갈 것이다. '나'였으니까. '나'이니까. 부산 밤바다를 다녀온 지 10년도 넘었지만, 나는 걸음을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으니까. 오늘처럼, 멈추어 서서 나를 되돌아볼 때를 제외하고는. 


기운을 내볼까 한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걸음 끝에서 만날 내 모습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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