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랑의 불시착>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남과 북을 오가며 전개되는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기존의 드라마들이 보여주던 전개는 아니었으니까. 회가 거듭될수록 주인공들이 어떤 운명을 맞을지 궁금했다. 과연, 분단의 역사를 극복하고 그들은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마지막 회를 챙겨보지 않았다. 결말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면 내 마음속에도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등장인물들의 표정, 대사, 행동들은 나에게 연기로 다가오지 않는다. 드라마를 보는 순간만큼은 현빈은 리정혁이고, 손예진은 윤세리이니까.
나는 극 중 인물들과 고르게 관계를 맺으며 기뻐하고, 아쉬워했으며, 슬퍼했다. 정이 들었다. 그러나 마지막 회를 봄으로써 그들과의 관계는 끝이 난다. 더 이상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으니까. 마지막 회를 남겨두고 안 본 드라마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결말을 찾아보지 않은 작품들도 상당하다.
열린 결말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상의 여지를 남겨 둠으로써 시청자들은 자신의 생각으로 이야기를 이어가거나 끝맺을 수 있다. 이별이나 결혼, 승진처럼 드라마에서 이야기하는 결말은 사실 과정이다. 현실에서는 이별을 하고도, 결혼을 하고도, 승진을 하고도 삶은 계속되니까.
만약, 삶의 결말이 정해져 있다면 어떠할까. 이미 알고 있는 미래를 향해 살아간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거부하고 싶다. 물론 죽음이라는 결말은 모두에게 동일하다. 태어난 생명은 죽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우리의 생애는 정해져 있지 않다. 노력 여하에 따라 할 수 있고,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결말을 미리 상상하며 살아가고 싶지 않다. 나의 내일은 정해지지 않았으니까. 다가오는 순간들에 지금의 내가 낼 수 있는 온 힘을 다해 그저 부딪치고 싶다. 결과는 그 이후의 이야기이다. 중요한 것은 뒤돌아보았을 때 후회가 적어야 한다.
누구나 과거를 후회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과거에만 얽혀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가 발 디디고 서 있는 곳은 오늘이다. 지금 여기에서 숨 쉬며 살아가고 있다. 회상하는 과거를 적게 후회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티끌 같은 미련도 남지 않게 솔직하면서도 용감하게 세상과 맞서야 한다.
마지막 회에 다다르기에는 우리의 인생은 여전히 길다. 16부작 드라마로 따진다면 나는 고작 6회 정도의 분량밖에 살지 않았다. 6회는 드라마 속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이다. 초반에 심어두었던 떡밥들이 점차 고조되며 이야기의 긴장감은 더해진다. 나는 과거의 내 모습을 이해하며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고 있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지만 기어코 살아가는 이유는 나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나는 오늘을 살아간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내일의 내 모습을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끼워 맞추기에는, 남아있는 오늘이 길다. 오늘, 우리는 어떠한 이야기도 만들어낼 수 있다. 할 수 있다. 될 수 있다. 온몸으로 부딪치며 우리는 얼마든지 이루어갈 수 있다. 인생은 결코 정해지지 않았으니까. 삶의 시나리오는 각 자의 손으로 직접 써 내려가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