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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Dec 29. 2019

용서를 구하는 일

살아가다 보면 하루에도 용서를 구할 일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려니 하고 덜 신경 쓰면 좋을 텐데. 내 섣부른 행동으로 상처 받은 사람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나만 생각했던 것 같다. 요 근래의 나는. 우리 모두는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안고 각 자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내가 겪는 고통이 가장 크다고, 그렇기에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다고 합리화했다. 바쁠 때 드러나는 모습이 그 사람의 본성이라고 하던데. 나는 왜 이렇게 이기적이고 못된 걸까.


오늘 하루에도 용서를 구할 일들이 있었다. 


용서를 구한다. 인터넷 결제창이 이상하다던 아버지의 말씀에 머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도와드리지 않은 것에 대해. 아버지께서는 여러 번 시도했지만 결제가 완료되지 않아, 고민 끝에 찡그린 표정을 짓던 나에게 부탁하셨을 텐데. 그 고민의 시간을 염두하지 않은 채 그저 내 생각만 한 것은 아닐까.


용서를 구한다. 앞으로 멨다 하더라도 짐이 잔뜩 든 백팩으로 불편을 겪었을 열차 안 사람들에게. 어떠한 사람이라도 짐이 잔뜩 든 백팩을 앞으로 멘 사람과 함께 열차를 타면 신경 쓰일 텐데. 짐을 줄이거나 선반에 올려두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미안한 마음만 품었던 것은 아닐까. 


용서를 구한다. 내 앞에서 자주 두리번거리던 사람을 수상한 사람으로 오해한 것을. 그 사람은 오늘따라 신경이 예민했을 수도 있고, 과거에 사람들이 둘러싸인 곳에서 아픔을 겪었을 수도 있다.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는 사람에게 내가 겪었던 안 좋은 경험이 있을 수도 있다. 수상하다는 느낌만으로 평범한 사람을 이상하게 여긴 것은 아닐까.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용서를 구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는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기억들이 있다. 유치원 시절 친구들과 놀이터로 가는 것에 들떠, 거실에서 유리병을 깨고도 정리하지 않아 어머니께서 다칠뻔했던 일. 아람단 활동에 열중하던 누나가 처음으로 학교에서 숙영 하던 날,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내가 집에 가자고 부모님을 졸라서 누나가 자랑스러운 밤을 쓸쓸히 보냈던 일. 이 외에도 많은 기억들은 이따금씩 떠올라 나를 괴롭힌다. 


비슷한 상황에 놓일 때면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후회스러운 기억들을 우리는 가지고 살아간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하며,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더 현명한 방법을 상상한다. 하지만 과거에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나'였고, 최선이었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 새로운 행동으로 후회 없는 관계를 맺어가는 나를 회상해도 바뀌는 건 없다. 마음의 괴리만 커질 뿐이다. 관계에서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고, 사과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기꺼이 미안하다고 표현하자. 만약 사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의 내면에 남아있는, 자라지 않는 기억 속 누군가에게 미안했었다고 용서를 구하자. 용기 내어 고백하고 오늘의 '나'로 충실히 살아가자.


그 누군가 또한 그때의 기억으로 여전히 괴로워하는 우리의 모습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수없이 반성하고, 괴로워했으니까. 후회스러운 경험을 교훈 삼아 원인이 되는 행동을 반복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건 화해와 용서로 나아가는 또 하나의 길이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을, 숱하게 눈물을 흘리고 주먹을 움켜쥐게 만들었던 그 사람들을 기억 속에서 서서히 놓아주었던 것처럼.


용서를 구한다. 섣부른 나의 판단으로 상처를 받았을 많은 사람들에게. 내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며, 진심을 담아 참회하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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