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두근거림 Dec 14. 2019

진실된 얼굴을 만나는 시간

우리는 여러 얼굴을 가지고 살아가요. 상황에 따라 다른 역할을 부여받기 때문이에요. 직장에서의, 대학원에서의, 가정에서의 모습은 서로 달라요. 직장에서의 저는 차분한 편이에요. 수용적이고, 신중하며,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려고 노력하지요. 대학원에서의 저는 수줍은 편이에요. 발표 위주의 강의가 진행되다 보니, 저의 의견을 언제 말하게 될지 몰라 강의 내내 가슴을 졸이거든요. 가족에서의 저는 개구쟁이가 따로 없어요. 어렸을 때의 버릇을 아직 버리지 못해 부모님께 장난을 자주 치는 편이에요. 물론, 부모님 사이의 다툼이 생길 경우 특유의 장난스러움으로 해결해 드리기도 하지요.


이러한 모습들이 고정된 것은 아니에요. 상황은 언제나 미묘하게 다르니까요. 차분함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일이 생겨서 직장에서 불안함을 느끼기도 하지요. 갑작스레 발표를 했는데 유창하게 생각을 전달하기도 하고, 장난을 치면 안 되는 분위기를 인지하고 자제하기도 해요. 삶에는 콘크리트처럼 정해진 방식은 존재하지 않아요. 상황에 따라 물 흐르듯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생활 또한 순탄할 수 있지요.


문제는 유연하게 살기가 어렵고, 까다로운 데 있어요. 고정된 방식은 없어도, 역할마다의 반경은 정해져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며 사는 직장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단체에 소속된다는 것은 한 개인의 존재감을 희미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그 즉시 불쾌감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뿐더러, 그러한 문화를 지닌 단체 또한 적을 거예요.


가족에서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부모로서의, 자녀로서의, 조부모로서의 역할을 떠올려보면 압정으로 눌러놓은 듯한 착각마저 들어요. 부모는 자녀를 양육하고 가족의 생계를 이끌어갈 책임을 지녀요. 자녀는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학업에 열중하지요. 요즘의 조부모는 손자, 손녀의 양육을 돕거나 가족에게 짐을 주지 않기 위해 따로 지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모든 가정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제가 본 주변의 가족들은 유사해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제 모습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을까요. 어느 공간에서, 어느 시간에 자신의 진실된 얼굴과 마주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한 역할에만 몰두해서 살아갈 수 없어요. 저 자신만 보더라도 직장인이자 한 가족의 자녀이고,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학생이에요. 세 곳에서의 제 얼굴은 다를 수밖에 없어요. 주어진 상황이 다르고, 각 상황에 맞는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오늘은 제 얼굴로 살아가지 못했어요. 우울했지만 밝은 목소리 톤으로 응대해야 했던 직장에서의 모습은 제가 아니었어요. 괴로웠지만 걱정하실 부모님 생각에 장난을 쳐야 했던 가족에서의 모습은 제가 아니었어요. 피곤했지만 소외될 것 같은 두려움에 기운 넘치는 척했던 대학원에서의 모습은 제가 아니었어요.  


자신의 모습과 역할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관계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사람마다, 상황마다 경계의 탄력은 다를 거예요. 경계를 선이라고 생각해볼게요. 직장에서의 선은 팽팽한 편이에요. 좋아하는 동료들을 만나면 느슨해지기도 하지만, 일을 할 때에는 단어 하나를 사용해도 유의해야 되기 때문에, 힘껏 잡아당긴 낚싯줄 같은 날카로운 선을 유지해요. 대학원에서는 직장에서와 유사하지만, 가족에서의 선은 느슨한 편이에요. 저의 생각이나 의견을 내세우기보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따르며, 니트에서 삐져나온 기다란 실과 같은 헐거운 선을 유지해요.


관계의 선을 인식하면서부터는 스스로가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어요. 선이 팽팽한 것 같으면 조금 풀어주고, 지나치게 풀어진 것 같으면 양 옆으로 힘을 주어 당길 수 있지요. 마주한 사람과 상황에 따라, 자신의 상태에 따라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맞춰갈 수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않는 마음이 있어요. 각 역할이 개인을 허용하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에요. 지치고 괴로워도 직장을 제쳐두고 원할 때 휴가를 낼 수는 없어요. 퇴근 후, 곧장 쉬고 싶어도 상황에 따라서는 가족의 동의가 필요하지요. 


저는 그럴 때마다 억지로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노래 한 곡 정도의 짧은 시간이더라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지요. 최근에는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혼자 산책을 하거나, 전화가 빗발치는 오후의 사무실을 벗어나 햇볕을 받으며 노래를 들어요.  시간에는요. 어떠한 역할도 맡지 않은 순수한 저와 만날 수 있어요. 억지로 밝은 톤의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되고, 슬프지 않은 척 장난치지 않아도 되고, 없는 기운을 끌어다 낼 필요도 없어요. 그 순간의 스스로가, 맨 얼굴로 세상에 드러나지요.  


여러 역할들을 소화하느라 힘겨운 하루를 보내셨나요? 그렇다면 잠시라도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보세요. 그곳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애써 외면해왔던 진실된 얼굴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혹시, 그럴 여유가 없으신가요? 그러하다면 아래의 노래를 들어보세요.  

여러분의 오늘 하루를 존중해요. 고생 많으셨어요 :) 

https://www.youtube.com/watch?v=kSvHU6uAXfc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이 건네는 위로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