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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Nov 26. 2015

[12] 퇴사하던 날

퇴사하던 날. 입사 후 가장 솔직한 모습으로 퇴근했다.

'이따금  올려다 본 새까만 하늘엔 작은 별들이 반짝인다'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물으면, 담담히 받아줄 것 같던 어머니의 눈빛 사라진  밤하늘을 바라본다. 터벅, 터벅 옮기는 발걸음에 스치는 껌딱지 마저 안쓰럽게 느껴지는 날이면, 누구도 위로가 되지 않는 고독을 맞아야 한다.

만개했던 입꼬리가 자연의 섭리인 양 서서히 지는 것처럼, 희망이 가득했던 천장엔 어느새 어둠이 드리워졌다. 갈피를 정하지 못한 생각들은 점점 강하게 날뛰기 시작하고, '삐그덕, 삐그덕'이나 '쿵, 쿵'하는 소리만 고요히 퍼진다.


'유명한 축구선수가 되어볼까?' 하며 오지 않는 잠을 청하기 위해 상상을 빌려본다. 한국에서 태어나 축구를 좋아하던 한 소년은 노력에 비해 뛰어난 재능으로 해외 클럽 관계자의 인정을 받아 조기 유학의 길에 오른다. 소년에게는 성장과정에 겪을 수 있는 진로에 대한 고민은 없다. 오로지 축구를 위해 태어났으니까.

또한 소년의 훈련과정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 소년이 얼마나 대단한지 20살에 국가대표가 된다. 일생일대의 한일전을 앞두고.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속에 계속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들춰보려다 두려운 마음에 덮고, 이내 다시 꺼내어 퇴사하던 그 날의 기억을 되살려본다.      


사람들 얼굴엔 저마다의 감정이 담겨 있다. 우리가 누군가의 표정을 보고 함부로 무어라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그 사람만의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힘들어 보인다거나 기뻐 보인다 등의 표현은 내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지 그 사람의 목소리를 직접 듣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입맛에 맞게,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추측하고 판단하게 된다. 상대방이  머릿속으로 기쁜 일을 되뇌고 있어도 '왜 저렇게 안 좋은 표정을 짓고 있지? 안 좋은 일이 있으신가?'라며 멋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수 많은 이들이 지나치는 지하철 안. 아침  출근길에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독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적어도 7월 31일엔 그랬다. 내가 가장 슬프고, 괴롭고 싶었는데 막무가내로 짓는 상념 가득한 얼굴들로 인해 조금도 티가 나질 않는다. 저 많은 무리들을 꺾기엔 내 감정이 부족한가 보다. 다른 이들에게는 나 또한 그저 그런 얼굴로 기억되겠지?   


열차가 출발한다. 고민했다. 과거에 자주 갔던 길과 최근에 많이 간 길 중에 어디를 선택할지. 첫 번째 길은 2번의 환승을 거치지만 익숙한 길이라 편하고 좋았다. 반면 두 번째 길은 환승이 단 한  번 뿐이지만 낯선 길이라 싫었다. 줄곧 이랬다. 생각이 많아질 즈음부턴 새로운 것들을 두려워했다. 현실에서는 도전해야 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결정할 때가 다가오면 피했다. 피하고, 피하다가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을 땐 외면했다. 돌이켜보면 습관이냐 변화냐 하는 갈림길이었던 것 같다. 외부환경은 끊임없이 변했지만 나 자신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이 날엔 낯선 두 번째 길을 선택했다. 새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이어폰으로는 노래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노래 취향도 길과 비슷하다. 나는 익숙한 노래를 좋아한다. 노래는 반복될수록 제철 과일처럼 익어간다. 절정에 달아  무르익었을 때 주는 편안함은 나를 자유롭게 한다. 만약 중간에 다른 노래를 들을 경우 감정의 흐름이 깨져버려 좋아하지 않는다. '혹시 겁이 많아진 까닭에 단순히 나를 무념무상의, 진공상태에 빠트리기 위함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역에 도착하여 회사까지 걸어가는 길. 면접 보던 날, 첫 출근하던 날, 첫 월급 받았던 날, 동기들과 술 마시고 돌아오던 날, 상사한테 혼난 날 그리고 퇴사를 고민하던 많은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울컥하는 마음에 하늘을 올려다보고, 바닥을 내려다봐도 그 어느 곳에서도 나를 찾을 수 없다.


아- 순간에 영원히 머물고 싶다. 걸음이 멈추면, 빛나던 시간은 막을 내린다.  


다른 퇴사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 껏 괴로웠을 텐데 퇴사하는 날엔 애써 웃는 모습이었던 그들. 쨍쨍한 날 곁을 감싸는 그림자처럼 평생 함께 할 것만 같았는데 먼저 떠난 그들이 그리웠다. 하지만 빈 책상에 맴돌던 온기는 채 1주일을 견디지 못하고 식어갔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잊혔다. 나 또한 그러하겠지.


부서져가는 기억과 지나치는 시간들의 공백을 느끼며, 송별회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그간 나는 얼마나 많은 일들을 인내해왔던 걸까. 취한 틈을 타 그동안의 나를 위로하듯 두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울고 또 울었다. 퇴사하던 날, 입사 후 가장 솔직한 모습으로 퇴근했다.


세상은 넓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없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 나 또한 귀하지도, 천하지도 않다. 그런데 끝없이 작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데.


일출 같았던 나는 어느덧 일몰에 더 가까워졌다. 미묘한 차이지만 '뜨고 있다'와 '지고 있다'는 엄연히 다르다. 오늘도 나는 조금씩 지고 있다. 이 넓은 세상에 나만 힘든 것도 아닐 텐데. 궁금했다. 지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을 버티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건대, 누구나 이런저런 고민 한 가지씩은 품고 살아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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