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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Aug 14. 2020

소홀했던 '본캐'에 로그인하면

  최근 <놀면 뭐하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부캐'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부캐'라고 하면 '본캐'를 보조하기 위해 키우는 캐릭터를 의미하는데, 게임에서 주로 화자 되던 용어가 사람을 대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여러 '부캐'들을 오가는 유재석 씨는 인생 N회차를 맞이한 것처럼 각 캐릭터를 자신의 성향, 능력과 결합하여 재미와 감동을 시청자들에게 동시에 선사한다.  


  '부캐'는 '본캐'에 비해 능력치도, 경험도 부족하다. 예능 분야에서 손꼽히는 유재석 씨가 하프라는 다소 낯선 악기에 도전하고,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던 가수들과 싹쓰리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활동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서툴기 그지없다. 물론 시도하는 분야마다 '영재' 소리를 들으며 금세 소화하지만, 첫 시작은 대부분 어색하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을 돌이켜보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방송이라지만 오십에 가까운 나이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을 거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취미조차 갖기 어려워지는 게 현실이니까. 가족, 직업, 돈, 시간 등 여가를 갖기 위해서는 여러 제약들을 순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사실 이보다도 더 어렵게 다가오는 것은 서투른 우리의 모습을 받아들여야 되기 때문이다.


  어릴수록 서투른 모습은 수용된다. 처음이니까. 경험이 적을 테니 '그럴 수 있지'라며 우리는 이해한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의 기준은 높아지고, 시선은 냉정해진다. 물론 다양한 사람과 상황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살아가는 시간은 그러하다. 


   서른세 살이 된 나에게 사람들이 갖는 일반적인 기대가 있다. 직장에서는 어느 정도 연차가 쌓여 자리를 잡고, 결혼을 했거나 준비하고, 독립하여 자신의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어느 거 하나 이룬 게 없다. 상담 공부를 시작하며 경력은 단절되었고, 고정적인 소득이 없기에 결혼을 언급할 수 없으며, 방음이 잘 되지 않는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어차피 대학원을 졸업해야 되기 때문에 1년 동안은 열심히 공부하고, 상담 수련을 쌓으며 지내자고 다짐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이내 샘솟는다. 서른네 살이 되는 내년의 나는 바라던 내가 되어있을까.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결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고, 독립할 집을 찾아다니고 있을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 상담에는 정답이 없기에 공부를 평생 해야 하고, 대학원을 졸업한다고 해서 바로 취업이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나는 또한 여러 장의 이력서를 써 내려가며 스스로를 발품 팔아야 되는 상황을 맞이할 것이다. 결혼은 어디 쉬운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확인할 때면 독립에 대한 환상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하지만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 씨가 보여준 '부캐'들을 떠올려보면 이내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다. 드럼을 치던 '유고 스타', 트로트를 부르던 '유산슬', 요리를 하던 '유 라섹', 하프를 연주하던 '유르 페우스'는 어떠한 결과를 바라기보다는 그저 눈앞에 주어진 상황들을 하나씩 해결해갔다. 사전 협의(?) 되지 않은 활동에 당황하면서도 차근차근 시도하고, 부딪치고, 실수하고, 견디고, 이겨냈다. 


  나에게도 '부캐'가 있다. 아들, 대학원생, 상담사가 당장에 떠오른다. 이 중에서 다년간 숙련된 아들이라는 '부캐'도 어색하기 그지없다. '난이도의 하향 조정이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부모님을 대하는 건 나이가 들수록 어려워진다. 더군다나 비교적 경험이 적은 '부캐'인 상담사는 예능 한 편을 찍어도 될 정도로 실수투성이이다. 


  '부캐'라고 해서 역할에 따른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각 역할에 적합한 정체성을 알게 모르게 부여받기 때문에 절대로 '본캐'를 대신할 수 없다. '본캐'는 나 그 자체이다. 어떠한 역할도 나의 '본캐'가 될 수 없다. 설명할 수도 없다. '부캐'를 수행할 때는 그에 맞는 적절한 가면을 쓰도록 되어 있으니까. '부캐'는 그저 나의 일부일 뿐이다.


 서른세 살의 '나'라는 '본캐'는 요즘 무기력했다. 해야 될 일들을 목전에 두고서도 기꺼이 수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글을 쓰며 깨달았다. 수많은 '부캐'들을 소화하느라 지쳤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들로서, 대학원생으로서, 상담사로서 잘 해내려고 하다 보니 마음에 탈이 난 게 틀림없다. 


  '본캐'는 쉬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 말에 '부캐' 들은 산더미처럼 쌓인 일들을 지적했다. 나는 끝내 일거리를 들여다보고, 어떻게 할지 고심하며 오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지만, 모든 걸 내려놓기로 했다. 아무리 '부캐'가 중요하다고 한들 어디 '본캐'보다 중요할까. 유재석 씨가 '부캐'들을 통해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수 있었던 비결은 결국 그가 '유재석'이기에, 나는 '부캐'들을 멋지게 키워내기 위해 '본캐'로 돌아가서 잠시 쉬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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