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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Jul 18. 2020

나는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기대와는 달리 삶이 고단해질 때가 그렇다. '도망'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가득 차면 여행지에서의 하루를 나는 상상한다. 월정리 해변의 노을 지는 하늘은, 안압지의 야경은, 메타세콰이어 길의 초록빛은 두 눈을 감은 내 앞에 펼쳐진다. 


감았던 두 눈을 뜨면 나의 평화는 무참히 깨지고 만다. 현실의 중압감에 압도되기 때문이다. 잔잔해진 감정은 격랑을 만난 것처럼 휩쓸린다. 도망을 유발한 최근의 사건은 유사한 과거의 기억들을 끄집어내며 더욱 격해진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는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파도는 마음으로 거세게 밀려온다.


그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었던 나는 나만의 방식을 찾았다. 회피이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미뤘다. 때로는 기한을 넘기기도 했으며,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여러 곤란한 상황들을 떠올려보며 가슴을 졸이다가도, 운 좋게 넘어가는 순간들에 안도하는 모습이 나에게는 익숙하다. 문제는 상황이 악화되어 내 앞에 나타날 때이다. 불편해질 수 있는 누군가와 나 사이를 저울질하며 해야 될 말을 삼킬 때,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단소가 준비물인 날이 있었다. 준비물을 잊지 않고 잘 챙겨 오는 편이었으므로 가방 안에는 단소가 들어있었다. 하지만 나는 음악 시간에 단소를 꺼내지 못했다. 집에 두고 왔다고 선생님에게 말했다. 잘 부르지 못하는 내 모습에 실망할 친구들과 선생님을 보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았다며 선생님에게 혼이 났다. 억울한 마음이 들어 사실 가방 속에 있다고 말할까 하다가 이내 삼켰다. 거짓말을 했다며 더 크게 혼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귀엽게 봐줄 수 있었던 초등학교 시절과는 달리, 나이가 들수록 회피로 인한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했다. 마감 기한을 넘긴 일로 협력업체에 해명해야 될 때고 있었고, '괜찮겠지?' 하며 넘어갔던 일에 화를 내는 고객으로부터 재차 사과해야 될 때도 있었다. 확실하게 매듭짓지 못한 일은 생활 곳곳에서 나를 괴롭혔다. 평일에도, 주말에도, 일을 할 때에도, 쉴 때에도, 심지어 꿈에서조차 치근덕거렸다. 알고는 있었다. 회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곳에서 바로 해결해야 탈이 적다는 것을. 반복했다. 어렸을 적에는 연약한 나를 지켜주던 효과적인 방법이었으니까. 


아빠는 안전에 관심이 많았다. 큰 형을 비롯하여 형제 중에 일찍 돌아가신 분들이 계셨기에 안전에 더 신경 쓴다는 걸 최근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던, 어린 나는 비록 알지 못했지만. 친구들과 차도에 나가 놀거나, 동네를 벗어날라치면 아빠에게 혼이 났다. 큰 소리로 화내는 아빠의 모습에 나는 그저 잘못했다고 말했다. 아빠의 생각보다 안전하게 놀았을 때에도, 안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할 때에도 하고 싶은 말을 삼켰다. 내가 하는 말이 결국 아빠의 화를 키울 것이며, 화를 내는 상황이 길어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화내는 모습이 떠오를수록 나의 말은 적어졌다. 괜한 긴장을 만들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삼켰던 말들은 목이 메일만큼 쌓였다. 첫 직장에 취업했을 때에도, 퇴사를 고민하던 때에도, 대학원에 진학할 때에도 나는 혼자 결정했다. 그러한 시기들마다 겪었던 어려웠던 상황들 또한 끙끙대며 혼자 해결했다. 나를 지키면서도 적절히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으니까. 


도망치고 싶을 때, '도망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일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도망을 유발하는 상황에 가까이 다가설수록 일은 수월하게 풀린다. 우리는 일상에서 영원히 도망칠 수 없다. 잠시 벗어날 수는 있겠지만,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상황에 결국 호되게 당하고 말 것이다. 물러서지 않고, 불편해질 수 있는 관계를 감내하며, 하고 싶은 말을 기꺼이 꺼냈을 때 나는 점차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어린 나와 만나는 데에서 시작되었다. 말하지 못 한건 어린 나의 잘못이 아니다. 일부러 말 안 한 게 아니었으며, 그때 나에게는 나를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었으니까. 어른이가 된 나는 어린이가 느꼈을 수치심과 불안감, 억울함에 대해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어른이가 된 나는 어린이였던 나에게 말한다.

 

"단소 소리 내는 게 어렵고, 친구들과 선생님께 알려지는 게 부끄러워 가방에서 꺼내지 않았구나. 괜찮아. 단소 좀 못 불면 어때.",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하지 못해 속상했겠구나. 사실 위험하게 놀려고 노력했던 건 아닐 텐데.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상황이 그러했던 거였는데."라고. 


어른이의 말을 들은 어린이는 용기 내어 속삭인다.

 

"선생님, 단소 소리 내는 게 어려운 데 다시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아빠,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조금 위험하게 놀았는데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런데 어디까지가 위험하게 노는 거예요?"라고.


나는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해결해야 될 일이 생기면 기꺼이 입을 뗄 것이며, 아직 다가오지 않은 일에는 미리 초조해하지 않으며, 언젠가 닥쳐와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나의 능력을 믿어보기로 결심했다.


내쉬는 숨이 달콤하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잔잔한 호수 같은 여유가 마음으로 다가온다. 일생의 크나큰 일을 앞두고 있지만,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다소 벅찰지라도 기어이 매듭지으며 힘차게 살아갈 테니까.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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