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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Sep 02. 2020

글의 완성은 진심 어린 관심

서른세 살의 삶에서 가장 잘한 일은 아무래도 글을 쓰기로 결심한 데에 있지 않을까. 그 이전, 그러니까 스물여덟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한 여름에 입은 패딩 점퍼 같다. 반팔티를 입어도 땀이 새어 나오는데, 덥다는 걸 느낄 새도 없이 일상을 감내하기 위해 골몰했던, 과거의 나는 스스로에게 정직하지 못했다.


글을 쓰며 만나게 되었던 땀의 의미, 그 땀 안에 어린 상처들을 이해하며 나는 점차 얇은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땀띠라는 따끔한 상처를 발견하기도 했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땀을 흘려왔는지 알아가는 시간은 내심 벅찼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스로의 감정에 충실할 텐데. 온몸에 퍼지는 땀을 땀이라고 이름 짓지 못했던 나는, 살아내기 위해 뻘겋게 달아오르는 열기에도 짐짓 웃어야 했다.


서툴렀던 과거에 대한 용서, 화해의 과정을 거치는 데에는 글이 있었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 인생의 새 지평이 열렸고, 삶이 풍부해졌다고 나는 확신한다. 내가 어떠한 상태였는지, 상태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치유는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기만 해서는 진정한 치유의 길에 오르기 어렵다.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보이고 긍정적인 반응이 되돌아올 때, 땀띠에 연고를 정성스레 발라주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나는 치유받을 수 있었다.  


글에 담긴 생각을 사람들과 나눔으로써 글은 생명력을 갖는다. 나에 대한 이해가 타인의 시선으로 말미암아 확장되고, 뚜렷해지고, 명확해진다. 이러한 사실을 출판을 준비하며 삭제했던 글의 댓글들을 살펴보며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나의 브런치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이제는 탈퇴한 사람도 있고, 꾸준히 들러 댓글을 남겨주는 사람도 있고, 감동적인 댓글을 하나 달고 홀연히 사라진 사람도 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댓글을 남겨줄까?' 생각하다가도 드물게 달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댓글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는 재입사하지 않기로 했다'에서 댓글을 달아주신 이주연 님


글을 쓰기 시작한 이래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을 한 명 꼽으라면 단연 이주연 님이다. 글에 담긴 나의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재입사나 퇴사를 고민하던 시절에 만났던 그녀의 댓글은 나의 의지로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앞으로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나를 향해, 꿈을 향해'에서 댓글을 달아주신 하은빛 님


눈에 띄는 댓글을 또한 발견했다. 1주 1회 글쓰기 모임을 할 때 만났던 하은빛 님이다. 댓글을 읽으면 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남겨주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저 믿고 응원한다는 간결한 말에 자신감이 샘솟는 이유는 아마 하은빛 님의 진심을 느낄 수 있어서가 아닐까.  


'오늘 하늘에 미세먼지가 가득할지라도'에 댓글을 달아주신 가시꽃 님


두 번째 직장에서의 퇴사가 결정되고 올린 글에 가시꽃 님이 댓글을 달아주셨다. 가시꽃 님이 누구인지는 아마도(?) 모르지만, 댓글을 읽으면 절로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뻗으며 환호를 내지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래, 잘 그만두었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홍제천을 걸으며 댓글을 보았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이외에도 마음에 와 닿는 여러 댓글들이 있다. 이 글에서는 소중한 댓글들을 모두 담지는 못했지만, 느껴질 거라 생각한다. 내가 살아낼 수 있었던 이유, 땀으로 젖은 몸을 말리며 상처를 발견하고, 이해하고, 화해하고, 용서하고, 치유하는 데에는 내 글을 읽어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이들이 지켜봐 준 덕분에, 기어코 남긴 한마디 말 덕분에 나는 진실된 모습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벅차오르는 마음에 눈물을 슬며시 닦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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