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근거림 Jan 11. 2021

기적이 일어난다면, 나는

지난 주였다. 사고로 휴식기를 가졌던 동료 선생님 A와 대화를 나누었다. 돌아온지도 어언 두 달이 되었지만, 그날에 대해 얘기를 나눌 기회는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4월 초, 함께 근무한 지 1달 남짓된 시기였다. 코로나가 전국적으로 유행했고, 뉴스를 통해 만났던 벚꽃은 이내 봄내음을 맡으리라는 희망을 품기에 충분했다.


첫 책을 출간한 지 얼마 안 되었었기에 쑥스러워하면서도 꾸준히 소식을 전하느라 바쁜 시기이기도 했다. 그날도 사인 요청이 들어왔다. A였다. 그는 가방에서 책을 살포시 꺼내어 내 책상에 올려두었다. "바쁘시니, 천천히 사인해주세요." 라는 말과 함께. A의 마음을 느낄 새도 없는, 정신없는 시간이 이어졌다. 전화는 계속 걸려 왔고, 상사가 요청한 일들까지 더해지며 점심시간이 되도록 뭘 먹을지, 심지어 배고프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이따금씩 A는 업무와 관련된 걸 나에게 물어보았고, 덜 중요해 보인다는 판단 아래 "이따가 알려드릴게요." 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하기도 했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나와 A, 그리고 다른 한 명의 선생님까지 세 명이서 함께 움직였다. 근무하는 건물의 복도를 지나 출입문에 다다랐다. A는 문 밖으로 먼저 나가 기다리고 있었고, 나와 다른 선생님은 문 앞에서 서로가 먼저 나갈 수 있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더 기다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문을 열고 나갈 때,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다 넘어지는 A를 보았다.


사무실은 2층이었고 출입문과 계단 사이에는 1M 정도 되는 공간이 있었다. 문을 밀어서 열 경우 그 공간의 절반 정도가 사라지며, 나는 몸으로 서서히 문을 밀며 밖으로 나갔다. A는 괜찮다며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지만, 그를 설득하여 함께 보건실에 갔다. 병원에 가 보아야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A의 왼쪽 팔이 어깨 위로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며 작지 않게 다쳤음을 알 수 있었다. A는 곧장 병원으로 향했고, 수술과 재활치료를 거쳐 6개월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지난주, A의 재활 과정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괴로웠다. 애써 잊었던 기억을 들추게 되었으니까. 멀찍이 다른 동료 선생님들도 듣고 있었으므로 나는 4월과 이날을 오가며 스스로를 꾸짖었던 과거와 자책하는 오늘 사이를 방황했다. A를 걱정하며 지냈던 시간들을 말하고, 내 잘못이 아니라는 A의 말을 들으며 눈물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하지만 흐르는 걸 허락하지는 않았다. A가 회복을 위해 노력했던 과정을 곱씹을수록 나 스스로의 용서를 의미하는 눈물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토요일이었다. 친구에게 전할 물건이 생겨 지하철을 이용했다. 오가는 사람이 많기로 유명한 노원역이지만, 코로나의 영향으로 한적하게만 느껴졌다.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타고 있던 상황이었다. 여느 때처럼 양 손을 주머니에 넣고 정면을 보고 있었는데, 일곱 계단쯤 앞에 서 있던 할머니가 넘어지는 걸 보았다. 할머니의 오른편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비명을 지르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할 정도로 갑작스러웠다.


이때, 나에게 어디서 그런 힘이 생긴 걸까. '도와 드려야 한다.'라고 의식할 새도 없이 계단을 뛰어내려 갔다. 할머니를 뒤에서 받쳐 일으키고 부축하여 에스컬레이터 밖으로 이동했다. 다행이랄까. 에스컬레이터가 끝나는 지점에서 넘어졌기에 괜찮다고 하였다. 할머니의 안색을 살피니 당황하신 듯했다.


새하얀 머리에 피곤한 듯한 눈빛, 세월이 내려앉은 주름과 손에 들린 여러 짐들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편히 다니시면 좋을 텐데, 꼭 지하철을 타며 옮겨야 할 짐이었을까. 왼손으로 할머니의 짐을 들고, 오른손으로 할머니의 팔을 잡고 역 출구 앞까지 함께 계단을 걸어내려 갔다. 버스카드를 찍고 나가는 할머니에게 짐을 건네며, 더 도와드릴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깝고 죄송했다.


친구와 만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할머니를 도와드린 상황이 떠올랐다. 그 과정을 천천히 되감아보니 4월 초에 있었던 일과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하나는 나를 자책하게 했고, 다른 하나는 나를 뿌듯하게 했다. 이러한 경험의 차이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날도 가장 먼저 내려가 A를 부축했으니까. 상황의 정도가 자책과 뿌듯 중 하나의 길로 나를 걸어가게 했고, 경로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나에게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꾼다. 만약, 나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10초 뒤의 미래를 내다본다거나, 10초 동안 시간을 멈추고 나만 움직일 수 있다거나, 10초 전의 상황으로 다시 되돌릴 수 있다거나 하는, 그런 기적이 일어났다면.

매거진의 이전글 새해 목표를 1년 유예하는 것으로 해요, 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