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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Jan 14. 2021

빗자루로 쓸쓸한 마음도 쓸어 담을 수 있나요?

눈이 내렸다. 냉기가 도는 복도에서 걸음을 멈출 만큼 문 밖 풍경은 아름다웠다. 땅으로 슬며시 내려앉으며 소복이 쌓여가는 과정은 날씨와는 대조적으로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장맛비처럼 쌀쌀맞게 내리지 않기에, 서서히 다가오는 눈을 보며 몇 분 안 되는 시간이었겠지만 '해야 될 일'도 잊은 채 여유로울 수 있었다.


 "저 잠시 차 좀 빼고 올게요."


사무실로 들어온 지 1시간쯤 지났을까. 동료가 차를 빼고 온다며 급하게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의 걸음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휘날리는 눈발이 보였다. 복도에서 보았던 때보다 눈은 매섭게 내리고 있었다. 복도로 나가 보니 제법 쌓여있었고, 한쪽에서 눈을 쓰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더 자세히 경험 수 있었다. 업무를 위해 이동하던 내가 먼저 마주한 것은 미끄러움이었다. 추운 날씨 탓에 얼어버린 땅은 넘어질 뻔할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쌓은 눈은 발목까지 닿았으며, 이따금씩 불어오는 세찬 바람이 목덜미를 서늘하게 했다. 


회사가 산 중턱에 위치하여 '눈 내리는 서울'이라는 좋은 경치를 자아내기도 했지만 감상할 수는 없었다. 롱 패딩을 입고, 모자를 뒤집어쓰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을 쓸던 한 선생님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가끔 뵈면 인사를 드리곤 했는데, 제설 현장에서 마주친 선생님의 모습은 왜인지 모르게 마음을 아프게 했다. 


집으로 돌아가던 버스에서 삐뚤어진 안경을 고쳐 쓰지 않고 잠시 허리를 펴던 선생님의 모습이 생각났다. 도와드리지 못했다는 마음과 눈이 어서 그치기를 바라는 마음이 함께 들었다. 문득 전 직장에서 만난, 환경미화를 담당하던 주임님이 떠올랐다. 


아침에 그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여 회사 곳곳을 정성스레 청소하던 주임님이었다. 이른 시간, 사무실에 도착하여 주임님이 청소하는 걸 보면 다시 더러워질 곳곳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그만큼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언제나 최선이었으며, 그런 주임님을 나는 남몰래 응원했었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전 직원이 함께 눈을 쓸었다. 그래 봐야 20명 남짓이지만, 저마다 넉가래나 빗자루를 들고 건물 주변을 쓸며 주고받는 대화는 일에서의 스트레스를 잠시 잊게 했다. 눈을 쓸 때에도 주임님은 열심히였다. 두 눈으로 쌓인 눈을 모두 녹일 것처럼 분주히 쓸어냈다. 


눈을 쓸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면 코코아나 커피를 한 잔씩 선물하셨다. 제 손 녹일 여유도 없이, 누구보다 열렬히 움직인 주임님이 쟁반에 담긴 코코아를 건네는 장면은 생각할 때마다 여전히 뭉클하다. 


퇴사를 하고 어언 2년이 되어가는데 따로 연락을 드린 적은 없었다. 좋은 일이 생기면 꼭 연락하라고 하셨는데. 좋은 일이 없어서 연락을 못한다고 스스로에게 핑계를 대며 미루어 오다가 용기 내어 메시지를 보냈다. 

     


기대보다 반갑게 맞아주셔서 감사했다. '여전히 나를 기억해주시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여전히 누군가를 먼저 생각하시는구나'싶기도 했다. 퇴사 전, 벤치에 나란히 앉아 주임님과 나누던 대화가 어렴풋이 생각났다. 수호 선생님은 좋은 사람이니까 큰 일을 해야 된다고 주임님은 말했다. 당시에 나는 큰 일이라는 표현에 꽂혀, 손사래를 치며 큰일 난다고 대답했다. 


그때에는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는 직업으로 큰 일을 해석했었는데 아닐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과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가 그가 생각났을 때 기꺼이 연락할 수 있는 일이 어쩌면 큰 일은 아닐까. 평소 사람들과 연락을 뜸하게 주고받고, 안부 연락은 먼저 하는 편이 아니었으니 2년 만에, 답장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감안하고 보낸 메시지가 나에게는 아무래도 큰 일임이 틀림없다. 


눈이 사라진 세상은 본래의 평온함을 되찾았다. 눈 내리는 날, 우리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뻗는 사람들을 어느 곳에서든 만날 수 있다. 미끌어지지 않도록, 넘어지지 않도록, 다치지 않도록 발 벗고 나서는 사람들은 전부 우리의 이웃이다. 그들의 값진 땀방울을 어떻게 직업과 같은 책임으로만 부를 수 있을까.  


감사하다는 표현 말고는 그저께를 생각하는 오늘, 이 시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전 직장에서 주임님의 빗자루가 닿지 않는 곳은 없었기에, 주임님이 그토록 쓸어 담은 건 어쩌면 쓰레기나 먼지가 아니라 사람들의 쓸쓸한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풍요로워진 마음 그득히 안고 '큰 일'을 하시는 주임님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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