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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Jan 30. 2021

쉼으로 걸어가는 길, 나의 걸음

시장과 가까운 좁은 길을 걷다 보면, 앞선 할머니의 발걸음에 속도를 맞춰야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동안 나의 걸음이 무척 빨랐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반의 반 폭을 나아간다는 느낌으로 걷다 보면 호흡이 차분해진다. 빠른 걸음을 유지하기 위해 들이쉬고 내쉬던 숨은 엄마의 품에 안겨 잠든 아이처럼 고르게 변한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뒷짐 지고 걷는 할머니, 쇼핑 카트를 끄는 할아버지, 볕,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서둘러 걸을 때는  보였지만, 곁이 보이기 시작한다.


느려진 걸음으로 일상을 비추어보았다. 애쓰는 시간뿐이었다. 해야 되는 일들 모든 하루가 쏠려있었으니까. 쉼은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허락되는 선물이 아니다. 빈틈없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특권은 더더욱 아니다.


누구든지, 스스로를 위해 쉬어갈 수 있다. 어떤 일을 앞두고 있다 해도, 그 일이 자신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해도. 쉼은 포기를 뜻하지 않는다. 달려온 자신을 살피는 과정이다. 제 호흡, 걸음으로 지나온 스스로를 만나고 새로운 걸음을 내딛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다.


쉬지 않고는 헤매게 되기 마련이다. 누군가의 시선에, 속도에, 행동에 자신을 잃게 된다. 머물러야 한다. 천천히, 마음이 전하는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마음이야말로 현재의 자신에게 긴히 조언해줄 수 있는 유일한 벗이니까.


그는 말했다. 너에게 쉼은 지친 너를 달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요령이었다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던 시간은 일에 집중하기 위해, 끝마치기 위해, 잘 해내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결코 너를 위한 시간 아니었다고.



걸었다. 할머니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지만, 걸음은 계속되었다. 점점 느리게, 흘러가는 구름처럼 하염없이. 걷고 있는 이 시간, 마음과 만나는 이 순간보다 중요한 건 뭘까. 과연, 그런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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