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얘기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뮤지컬 <모차르트>의 넘버 황금별이 시작되기 전에 나오는 대사이다.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모차르트는 세상을 향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과도한 걱정, 고용주 콜로레도 대주교의 질책, 타인의 기대로 인한 부담과 압박으로 제한된 삶을 살아간다. 세상에 내보내기 두려워하는 아버지와 내면의 소리를 따라 살아가기를 주저하던 모차르트 앞에 나타난 남작부인은 왕자를 지독하게 사랑했던 왕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저마다 다르며 사연 또한 고유하다. 지금의 나라면 다르게 살았을 거라며 심한 독설을 쏟아내도 과거는 달라지지 않는다. 마음에 상처만 남을 뿐이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여전히 베일에 쌓여 있는 수수께끼의 그 길이 꿈을 이루어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못 걸어간 이유 또한 분명하다. 주변의 만류와 질책, 부담과 압박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어린 모차르트의 반짝이는 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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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가진 꿈이 있었다. 자유롭게 여행을 하는 일이었다. 모차르트처럼 재능을 발휘하는 길은 아니었지만,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걷고 싶었다. 김수호라고 부르면 따라오는 이력, 관계, 환경에서의 자유를 꿈꾸었으니까.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선명해지기까지 여러 우여곡절들이 있었다. 불만스러운 상황이 생겨도 익숙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큰 나였기에, 내가 머물고 거쳐갔던 모든 공간은 그저 적응의 대상이었다. 군대에서 겪었던 선임들의 괴롭힘에도, 머지않아 자살할 것 같다는 다른 생활관 사람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끝내 적응하고야 말았았으니까.
처음이었다. 떠나고 싶다는 마음을 굳게 먹었던 건. 그렇게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두었다. 내가 원하는 길을 찾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서. 그 기대는 일상에 적응하지 못했던 내가 만들어낸 환상이었음을 비록 뒤늦게 깨닫게 되었지만. 당시의 나는 가고 싶은 길을 걸어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2년이라는 기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드러내지 못했던 솔직한 '나'가 쌓이고 쌓이다 넘쳐흐르기 시작하며 나는 퇴사했다. '나'를 여실히 표현하지 못했던 이유는 '나' 스스로의 솔직한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만을 나쁜 감정으로 여겼다. 직장은 급여를 주는 곳이기에 일을 하는 건 당연하며, 과한 요구가 들어와도 응당 해야 되는 것이 직원으로서의 도리라고 믿었다. 상사가 기분 나쁘게 말하거나 상처를 주어도 감내하는 것이 후배로서의 역할이라고 믿었다. 후배들이 직장이나 상사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거나 그로 인해 힘들어하면 해결해주지는 못하더라도 함께 흔들리지 말아야 된다고 믿었다. 아니었다. 나는 이 모든 게 불만이었다. 마음으로는 직장과 상사에게 부당하다며 수십 번 대들었고, 후배들과 함께 험담을 했다. 이는 가야 된다고 믿었던 길이지, 가고 싶은 길은 아니었다. 나 스스로에 대한 기대에 의해 진실한 모습을 외면하였으니, 그 순간들이 더해지며 나에게 벗어나라고 다급히 소리쳤지만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퇴사 4개월 만에 다른 직장에 취업하고, 전 직장으로의 재입사 소동을 겪고, 상사에게 정서적인 괴롬힘을 받고, 하루를 근근이 이어가며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환상을 더욱 키워갔다. 만약 그때 그 길로 걸어갔다면, 그날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나의 오늘이 다르지 않을까 하고. 그림자가 되어 남아있는 음울한 순간들은 오늘의 나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앞의 현실이 아닌 어제의 기억을 회상하는 오늘의 나와 끊임없이 다투며 살아갔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고 상담 대학원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직할 곳이 마땅치 않았던 나는 2년 간의 유예를 선택했다. 하지만, 도망치듯 내렸던 나의 선택과는 달리 상담 분야는 나에게 많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상담 이론들을 하나씩 공부해가며 마음속에 있던 동굴을 발견하게 되었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난 입구에서 인적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동굴이 얼마나 깊은지, 안에 무엇이 있는지 감을 잡을 수조차 없었다. 다양한 상담의 기법들을 스스로에게 적용해가며 조금씩 동굴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상처 받았거나, 억울했거나, 슬펐거나, 괴로웠던 흔적들도 있었지만, 살지 못한 삶에 대한 후회가 대부분이었다. 책 「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에서는 살지 못한 삶으로 늘여놓는 불만을 아래와 같이 묘사하였다.
"그랬더라면······. 그럴 수 있었는데······. 그랬어야 했는데······." 다른 선택에 대한 미련. 늦은 밤까지 잠 못 들게 하는 갈망. 난데없이 솟구치는, 예기치 못한 슬픔. 분명 이뤄야 할 일을 왠지 놓쳤거나 실패한 것 같은 기분.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지금의 삶은, 처음에 계획했던 것과 너무나 다른 이 삶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차가운 동굴의 내밀한 곳으로 다가가 살피고, 만지고, 흐느끼고, 어르며 깨닫게 되었다. 여행을 떠나고 싶은 이유에 대해. 여행을 통해 얻고 싶었던 것에 대해.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건 주저하며 꺼내지 못한 소리들이었다. 그 소리들은 마음이 빚어낸 것이었으나, 나는 그 소리들을 부정하였기에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고 땅굴을 팠다. 내가 받아들이지 않은 마음을 누가 알아줄리는 없었다. 원하는 '나'는 있으나 진실한 '나'가 없는 채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갔다. 그 이유를 나는 사람들의 구속이라고 생각했었다. 안전을 강조하던 아빠, 무관심하던 엄마, 성실하지 않으면 눈여겨보지 않는 학교, 착하지 않으면 가까워지기 어려운 친구들. 나는 그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좋아할 만한 모습이 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오늘까지 이어진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의식한다. 그를 떠올리며 그가 좋아할 만한 모습을 생각한다. 그 모습이 되기 위해 애쓰며 사랑받고자 한다. 하지만, 이내 진실한 마음이 반기를 든다. 살지 못한 삶을 두루 살펴본 마음은 소리친다. 네가 그토록 원하는 삶, 가고 싶어 하는 길은 네 안의 소리를 거부하지 않는 순간의 연속이라고. 맞다. 나에게 여행은 나 스스로가 쌓아올린 성벽을 허무는 일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말하거나 기대했을 뿐, 선택마저 강제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동안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하면서도 떠날 수 없는 현실을 탓했는데, 되돌아보니 이미 먼 길을 떠나왔다. 여행이었다. 나를 찾기 위해, 가고 싶은 길을 걷고자 헤맨 시간 그 자체가 나를 향한 여정이었다.
이제 진실한 마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살지 못한 삶에 대한 후회로 오늘을 그림자의 일부로 만들기보다는 내면에 귀 기울이며 기꺼이 살아가고자 한다. 그러하면 내일의 나는 오늘을 회상하며 책망과 질타보다는 위로와 격려를 건네지 않을까. 길 위에 서서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는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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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1. 로버트 존슨, 제리 룰 (2020). 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 가나출판사. 신선해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