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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Mar 07. 2021

충고보다 조언, 조언보다 관심

친한 형이 근무하는 회사 앞으로 나오라고 연락한 적이 있다. 줄게 있다고 말한 형과 서울역 안 카페로 이동했다. 쇼핑백을 테이블 위에 놓은 형은 한 시간 가량 말을 이어갔다. 주제는 진로였다. 아무런 생각 없이 형을 만나러 갔던 나는 생애 처음으로 장래에 대한 조언을 듣게 되었다.


내 나이대의 사람들과 비교하고, 때로는 감정이 앞서던, 흥분한 형의 말은 대체로 나의 귀를 비껴갔다. 내게 남은 것은 진로 고민의 시작이 아닌 '화'라는 감정이었으며, 그 감정은 나의 마음으로 다가와 방향을 잃었다. 한 시간 내내 화가 났다. 그러나 대꾸할 수는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학교 4학년이었던 나는 진로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때에만 해도 전공 분야로 취업하는데 특별한 스펙이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자연스레 취업이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형은 내 또래의 사람들이 취업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인지를 설명했다. '취업'이라는 문턱을 넘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과 달리, 졸업이 다가오기만을 가만히 기다리는 내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형의 조언이 계속될수록 취업 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는 불안보다는 나 자체가 잘못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늦어도 대학교 4학년이 되면 취업 준비를 하는 것이 사회적 통념이었으므로 나는 아니라는 간단한 부정조차 할 수 없었다. 그날, 한두 모금 마신 음료를 두고 쇼핑백을 끌어안은 채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Image by Free-Photos from Pixabay


살다 보면 조언이 필요할 때가 있다. 우리는 습관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과거와 비슷한 선택을 하고 후회하는 경험을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꾸준히 관계하는 누군가는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생각한다. 말해주어야 할까, 말까 하고. 


조언의 주제는 친구가 고민이라고 얘기했던 선택의 반복일 수도 있고, 상식적으로 보았을 때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자신의 성격이나 가치관을 기준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을 수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조언을 결심한다. 그러나,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과연 그 말이 정말 상대방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이다. 


상대방의 필요가 아닌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에서 비롯된 말을 우리는 종종 조언이라고 부른다. 그 조언에는 한 사람의 가치관을 뒤흔드는 내용이 수두룩하다. 조언이라고 덧칠된 형의 말로 나는 진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를 비난하고 부정했다. 나의 삶을 꺾어내기 위해서라면 성공적이었을 거다. 물론, 그럭저럭 살아가던 나를 기어코 절벽으로 떠미는 의도로 조언한 것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조언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이 고민이라고 여기는 지점에서 시작할 수 있다. 내가 보았을 때 너는 이게 고민이라는 태도는 무례한 언어로써 상대방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크다. 그건 조언이 아니라 충고이기 때문이다. 조언의 형태는 다양하겠지만, 그 조언이 필요한지조차 조심스레 묻고 확인하는 것이 진심으로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이자 방식은 아닐까.


만약, 내가 형의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먼저, 음료를 마시며 서로의 안부를 나누었을 거다. 미소를 머금은 상태가 되었을 때 시간이 참 빠르다며, 벌써 4학년이 되었다는 얘기를 했을 거다. 여기서 바로 진로애 대해 꺼내면 부담을 느낄 수 있으니 요즘의 4학년은 어떻게 생활하는지 물어볼 거다. 


과의 특성을 잘 모르기에 취업을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묻되, 현재 잘하고 있는 활동을 함께 다루어줄 거다. 예를 들어 토익 점수가 필요한데 안 하고 있다고 하면 그 외에 잘하고 있는 학점 관리나 생활 등을 격려하며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나눌 거다. 하지만 이 모든 대화는 상대방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때 이루어질 수 있다. 따라서 현재 나눌 수 있는 주제로써 적절한 시기인 가도 안부를 나눌 때 먼저 고려해볼 거다. 


물론, 진로에 대해 고민할 시기가 한참 늦었던 나에게 따끔한 조언은 필요했다. 형이 나에게 진로에 대해 조언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졸업할 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지냈을 테니까. 다만, 반발심 때문이었을까. 생각만 했지 형이 제시한 대로 노력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괜찮은 직장에 취업하게 되었고 여전히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다.


돌이켜보면 걱정스러운 마음에 조언했을 형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만, 방식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날 이후로 나는 형과 멀어졌다. 만약, 형에게 나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조언에 앞서 내 이야기를 먼저 듣고 그 이후에 어떻게 말할지, 그 말이 오늘 정말 필요한지를 고민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진심 어린 마음으로 나에게 관심을 기울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평생을 곁에 두고 지내고 싶은 좋은 형을 알게 된, 첫 번째 경험이 되지는 않았을까.  


방향을 잃은 화는 차가운 입김을 타고 쏜살같이 

대못이라는 비난이 되어 가슴으로 파고든다


Image by Pexel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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