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서의 마지막 학기가 되었다. 이 말은 논문과의 본격적인 사투가 시작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 학기부터 논문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고, 상담자에 대한 연구를 하기로 결심했다. 내 연구에는 상담자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는 까다로운 과정이 포함되므로 참여자 모집이 연구 진행의 부담스러운 요소로 다가왔다.
연구를 위해 8명의 참여자를 모집하기로 결정하고 카카오톡 프로필을 살피며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까 고민했다. 목록에는 친하다고 생각하는 선생님도 있었고, 소원하다고 느껴지는 선생님도 있었다. 누구부터,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할까를 끊임없이 생각하던 나는 고민을 시작한 지 2주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알아서 참여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떤 상황이든, 무슨 일이든 사람들이 먼저 연락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늘 있었다. 친구들끼리 약속을 정하는 상황에서도 "나도 갈래"라고 말하기보다 "너도 갈래?" 라며 물어봐주기를 기대했다. 표현하지 않았기에 내 의사를 결코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나는 그들이 먼저 알아주기를 바랐다. 만약, 대화를 나누고 싶은 일이 생겼다면 먼저 그에 대해 말을 걸 수도 있지만, 그러고 싶었지만 아닌 것처럼 나는 가만히 어울렸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상대방이 나에게 호의가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나는 선뜻 호의를 건네지 않았다. 나의 호의가 수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상상은 마음이 빠진, 속 빈 강정으로 어울리는 상황보다 불편해질 관계를 보여주었다. 걸어보지 않은 길이나 디뎌보지 않은 땅을 생각하면 긴장감이 감돌듯 나에게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것만큼 어렵게 느껴졌다.
연락하는 걸 망설이며 거듭 생각했다. '내가 괜히 바쁜 사람들에게 부담스러운 부탁을 하는 건 아닐까?', '평소에는 연락도 안 하다가 필요할 때가 되니 연락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라고. 하지만, 논문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기에 거절을 무릅쓰고 부탁해야만 했다. 최근까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선생님부터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우려와는 달리 호의적인 반응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학원에 함께 입학한 동기 선생님들이 모여있는 대화방에서도 참여하겠다는 메시지가 하루, 이틀을 지나 도착했으며, 비록 참여 요건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응원하고 싶다는 내용도 받게 되었다. 함께 홍보해주겠다는 선생님도 있었으며,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참여를 하면서도 미안한 기색을 보이는 선생님도 있었다.
최근, 상담에서 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수호 씨가 이번에 어려운 상황을 겪으며 주변에 소중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네요. 수호 씨가 어려울 때 좋은 사람들이 곁에서 위로가 되어준다는 것은, 수호 씨가 이미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것 같아요. 물론, 더 좋은 사람이 되라는 뜻은 아니고요."
이름도 바꾸고 내용도 각색했지만 그에게 한 말은 어쩌면 최근 내 경험과 맞닿는 부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움을 요청받는 선생님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호의를 경험한 게 아닐까. 수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나의 진실한 마음이 그들의 마음에 깊이 닿은 적이 있었던 게 아닐까.
어려운 상황일수록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위기의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 주변에 소중한 사람들이 그토록 많았다는 사실을 또한 깨닫게 된다.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따스한 손길들이 쓰러져가는 우리의 마음을 받쳐준다. 다시 설 수 있도록, 그 자리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