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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Mar 28. 2021

저의 장래희망은요

30대 중반이 되어가는 '나'이고 '나이'기에 옛 기억은 비어 가는 머리숱만큼 이미 빠질대로 빠졌다. 한 때에 집중하며 "그때 뭐 했었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고, 머리를 긁적이다 휑한 느낌에 되려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다.


이런 나에게 유독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사건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담임선생님은 종례 시간에 내일까지 장래희망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자신의 이름과 사진으로 꾸민 종이에 장래희망을 넣어 교실 뒤 게시판에 붙이겠다는 이유였다.


그날 저녁 나는 부모님께 장래희망을 적어가는 숙제를 받았다고 말씀드렸다. 부모님은 나에게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보셨다. 유치원에 다닐 때만 해도 경찰이나 군인, 소방관이라는 직업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유치원에서 나눠 준 비디오 속의 내가 양 손을 배꼽으로 가지런히 모은 채 여린 목소리로 숭고하고 헌신적인 직업을 이야기했다는 게 신기하다.


고민하던 나에게 문득 택시운전사라는 직업이 떠올랐다. "택시운전사로 적을래요"라는 말을 듣은 부모님께서는 정 되고 싶은 게 없으면 선생님이나 변호사를 적으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택시운전사로 적고 싶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택시를 별로 타 본 경험이 거의 없었기에 어떤 직업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희한하게도 택시운전사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정체된 도로에서 경적을 울리듯 서둘러 적을 것을 스스로에게 요구했다.


나에게도 생소한, 택시운전사라는 직업이 적힌 자기소개 카드가 반 게시판에 붙여졌다. 별 모양으로 코팅된 친구들의 꿈들은 사진 속 웃는 모습만큼이나 반짝였다. 그중에서 유독 친구들의 눈길을 끄는 건 나의 장래희망이었다. 부모님의 검열을 이겨낸 채 적어낸 장래희망이 친구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는 사실이 그저 기뻤다. 게시판 속 '나'와 옆에서 구경하는 '나'를 번갈아 보며 재밌어하던 친구들의 모습은 여전히 생생하다.


Image by 潜辉 韦 from Pixabay


돌이켜보면 나는 '짱구는 못 말려'라는 만화를 참 좋아했다. 특히, 짱구의 '엉뚱함'을 선망했다. 만화 속에서 짱구는 공부를 잘한다거나, 어른들의 말씀을 잘 따르며 칭찬받는 캐릭터는 아니다. 되려 사고뭉치에 가깝다. 하지만 재치 있고 엉뚱한 행동으로 친구들과 어른들의 관심을 받으며 유쾌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짱구는 못 말려' 속 다른 캐릭터들보다 행복해 보였다.  


짱구는 나이답지 않은 엉뚱함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어느 곳이든 짱구가 있다면 그가 그 공간의 중심이자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내가 보여주는 '엉뚱함'이 사람들의 '관심'으로 돌아오기를 바랐었는지도 모르겠다. 되고 싶은 게 없었던 내가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택시 운전사'를 장래희망으로 적었던 이유는 친구들에게 웃음을 주며 관심받고 싶은 마음 때문은 아니었을까.


직장은 그만두신 아빠가 택시 운전사라는 직업을 갖게 될 뻔한 적이 있었다. 창업을 하시며 실현되진 않았지만 집에서 택시운전이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던 시기가 있었다. 또한, 혼자 택시를 타게 되면 기사님들과 대화를 자주 나누게 되는 편인데 택시운전사라는 직업의 어려움이나 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듣곤 한다.


그럴 때면 진실하지 않은 마음으로 '택시운전사'라고 장래희망을 적어낸 내가 부끄럽게 느껴진다. 내가 경험한 택시운전사라는 직업은 대체로 치열하고, 고단했으니까. 만약 반에 부모님이나 가까운 어른의 직업이 내 장래희망과 같은 친구가 있었다면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이 기회를 빌어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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