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상력이 풍부한 편이다. 일상의 평범한 장면들이 나에게는 특별한 순간으로 다가오곤 한다. 돈가스를 맛있게 먹는 친구의 표정 너머로 그가 내 앞에서 해맑게 웃던 옛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맡은 일 때문에 괴로워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노래 <도망가자>의 가사처럼 어디로든, 어떻게든 함께 떠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상상 속의 이미지가 구체화되는 과정은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것과 유사하다. 일정한 질서 없이 널브러져 있는 조각들을 맞추기 위해 들었다 놨다 고심하며 채워나가듯, 상상 또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거나 부족한 설명에 대해 질문하다 보면 실제로 경험한 것처럼 생생하게 변해가는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다.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건 대화뿐만이 아니다.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오늘은 어떤 상상을 할지 생각한다. 요즘에는 주로 가문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어 외지에서 혼자 성장한 주인공이 나라에 복수를 꿈꾸다 사랑에 빠져 포기하는(?) 조선시대 이야기를 상상한다. 또한, 좋아하는 드라마의 마지막 편을 보지 않고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기도 한다. 마지막 편을 잘 안 챙겨보는 이유는 이야기가 영원히 끝이 나는 것에 대한 상실감인데, 드라마 속 세계와의 이별을 피하기 위해 나는 그들이 사는 세상에 들어가 함께 생활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나의 상상력을 유독 자극하는 활동이 있다. 바로 inst 음악을 듣는 순간이다. inst는 앨범 안에 수록되는 연주곡이다. 주로 타이틀곡의 inst가 앨범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으며, 타이틀곡과 달리 가사는 없지만 그 곡의 멜로디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가사가 있는 음원을 한참 듣다가 귀에 익숙해질 즈음이면 나는 inst를 듣는다. 가사를 다 외우는 편은 아니기에, inst를 듣다 보면 자연스레 가사와 나의 이야기가 겹쳐지며 개사가 이루어지는 지점이 생긴다. 상상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inst에 빠져있다 보면 일상의 다양한 장면들이 오버랩된다. 그중에는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더 오래 머물고 싶은 장면도 있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이내 털어버리고 싶은 장면도 있다. 최근에는 장래를 고민하는 장면이 자주 떠오른다. 대학원 졸업을 앞둔 나의 장래는 그다지 밝지 않다. 불확실한 전망으로 상담 전공을 살릴 수 없을 가능성이 크고, 사회복지 경력은 단절되었기에 사회에서의 나는 애매한 중고가 되어버렸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에는 나이가 발목을 붙잡고, 사회복지사라는 원래의 직업으로 돌아가기에는 모호한 것이 내가 직면한 상황이다.
'이제 뭐 먹고살지?'라는, 풀리지 않는 암담한 미래를 상상하면 높은 곳에서 곤두박질치는 내 모습이 연상된다. 마치 적군에게 쫓겨 험준한 절벽까지 도망친 내가, 포로가 되어 천천히 고통받을 바에야 죽는 게 낫겠다며 깊은 강물로 뛰어내리는 어느 드라마 속 장면과도 겹쳐진다. 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억지로 풀기 위해 세게 당기다 보면 더 꼬이듯, 지금 당장 진로 고민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절벽 아래로 끝없이 추락하는 나와 만나고는 한다.
그러던 중, 2018년에 보았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 생각났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가상현실 게임 세계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주인공 파시발은 동료들과 함께 죽은 원작자 할리데이가 게임 속에 남겨둔 세 개의 숨은 미션을 하나씩 해결해간다. 하나의 미션을 깨면 열쇠 한 개를 얻을 수 있고, 세 개의 열쇠를 모두 얻어 자신의 '이스터에그'를 찾으면 게임의 모든 운영권과 거액의 유산을 넘겨주겠다고 할리데이는 유언을 남긴다. 2045년, 식량 파동과 인터넷 대역폭 사태로 엉망이 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할리데이의 '이스터에그'를 찾기 위해 가상 게임에 열광한다.
* 아래부터는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결말이 일부 포함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Image by Rudy and Peter Skitterians from Pixabay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며 할리데이가 남겨 놓은 미션을 모두 완수한 파시발은 할리데이가 어린 시절에 살던 방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곳에서는 할리데이의 생전 모습을 구현한 아바타와 할리데이의 어린 시절 모습을 구현한 아바타가 함께 나타난다. 어린 할리데이는 시선을 돌리거나 말하지 않고 오직 게임만 하는데, 게임과 관련된 대화를 주고받던 도중 어른 할리데이는 파시발에게 말한다.
"그때 깨달았네. 현실은 무섭고 고통스러운 곳인 동시에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걸."
현실을 등진 채, 게임에 열중하던 자신의 어린 모습을 뒤로하며 파시발에게 전한 할리데이의 말은 당시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상상은 나에게 현실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자유로움을 주지만, 따뜻한 밥을 지어주지는 않는다. 삶은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 이루어진다. 아무리 장래가 고민된다고 하여 미래의 내 모습을 이리저리 재어보아도 뚜렷해지는 건 없다. 중요한 것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있다. 걱정과 불안으로 끼니를 거른 채, 잠을 미룬 채, 운동을 외면한 채, 일상에서의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일들을 거부한 채 살아갈수록 미래는 더욱 흐려질 뿐이다.
나에게 지금 필요한 건 상담 분야의 전공을 살릴 수 있을지, 사회복지 분야로 돌아갈 지에 대한 생각, 생각과 생각이 꼬리를 물며 만들어 낸 상상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학원을 무사히 졸업하는 데에 눈을 두고, 오늘 나에게 주어지는 시간들에 감사하며 따뜻한 밥 한 끼, 달콤한 잠, 상쾌한 운동, 그 외에 다가오는 일상의 순간들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흐트러진 진로의 퍼즐 조각을 맞추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좋아한다는 친구 E의 말이 생각난다. 나는 그에게 먹는 걸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뜨끈한 밥 한 숟갈에 갓 튀겨져 바삭하고 육즙으로 촉촉한 돈가스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보다 나를 설레게 하는 일이 있을까. 문득, 배가 고파진다. 오늘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며 괜스레 행복해지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