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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Apr 07. 2021

밤바다 보러 갈래요?

  가끔씩 꺼내어보는 풍경이 있다. 실의에 빠질 때면 그 풍경을 떠올린다. 마음에 담긴, 상상으로만 가 본 곳이기에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미지수이다. 밤하늘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그곳으로 향한다. 바다가 보인다. 50인치 남짓한 창문으로 밤바다가 다가온다. 왼쪽, 오른쪽으로 당긴 손잡이 너머로 파도가 들이친다.


 바닷바람이 코끝을 찌른다. 차가운 공기에 하얀 실크 커튼이 나부끼지만 추운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른손에 들린,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머그컵에는 방금 내린 원두커피가 담겨있다. 부암동의 유명한 카페에서 샀다며 생색내던 친구의 선물이다.


  천장으로 오르는 커피 향을 맡으며 고개를 젖히니 은은한 조명이 두 눈을 감싼다. 괴로운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았던 청파맨션의 빛깔을 닮았다. 어두우면서도 밝고, 밝으면서도 어두운 조명은 일희일비하던 오늘의 내 표정을 보는 것만 같다.


  짙은 갈색 선반에는 브리츠 사의 블루투스 스피커가 노래를 부른다. 박효신의 home이다. 속삭이듯 말을 건네지만 이내 꽉 차는 목소리가 이따금씩 주먹을 쥐게 한다. 까닥거리는 발가락이, 들썩이는 어깨가, 벅차오르는 마음이 3분이라는, 한 곡 정도의 시간으로도 영원에 머물게 한다.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바람을, 조명을, 커피 향을, 음악을 사랑하고 있다. 이곳을 상상할 때면 늘 혼자였는데 이제는 소중한 사람들의 웃음을 담고 싶어 진다. 밤바람이 불어오기에 차갑다고 느끼면서도 춥다고 여겨지지 않는, 그대의 부드러운 목소리, 따스한 표정, 어떠한 말에도 두 팔 벌려 환영해줄 것만 같은 미소로 인해.


Image by Bruno /Germany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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