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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Apr 21. 2021

봄이 오면, 가끔씩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창밖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면 날마다 달라지는 채광을 실감한다. 계절이 바뀌었다. 봄이 왔다. 코를 찌르는 내음부터가 여느 계절과 다르다. 거리로 나아가면 포근한 볕을 만난 땅과 흙에서 봄의 향기가 묻어난다. 세상은 여유로 피어난다. 사람들이 0.5배속으로 움직인다는 착각마저 든다. 숨결조차 보드라운, 봄은 나에게 심호흡을 권하는 유일한 계절이다. 하지만 황사나 미세먼지가 심해진 이후로는 흩뿌연 하늘을 자주 만날 수 있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날도 봄이었다. 날씨는 따스했지만, 황사가 서울 전역을 뒤덮은 날이었다. 봄의 기운이 볕을 통해 전해지면서도 답답한 마음이 드는 날이기도 했다. 길을 걸었다. 어딘지 모르게 흐리고, 어두운 하늘은 마음 한 구석을 날카롭게 찔렀다. 목적이 있는 외출은 아니었다. 주말이었지만 누군가를 만난다는,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갖지 못했다. 불안했다. 책에도, 식사에도, 잠에도 집중하지 못했으니까. 쫓기는 듯한 기분이었다. 쫓는 사람은 없었지만 솜을 고를 틈도 없이 나는 계속 도망가야 했다.  


무작정 나선 길이었기에 어디를 갈지 못 정한 것은 당연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오는 버스를 탔다. 적당한 곳에서 내려야겠다는 결심으로 가게 된 곳은 창경궁이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시간이 흐른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월요일이 되면 출근을 해야 하고, 사무실 한편에 위치한 '상사를 위한 자리'에 앉아야 하는 게 두려웠으니까. 금요일 퇴근길의 환희는 절망이 되어 '월요일 아침의 나'를 끊임없이 상상하게 만들었다. 상사의 기분에 맞추는 '나', 죄송하다고 대답하며 고개 숙인 '나', 글썽이는 눈물로 속마음을 참아내는 '나'의 모습은 주말에도 어김없이 재현되고 있었다. 


때로는 상상이 현실 같고, 현실이 상상 같았다. 창경궁을 걷는 '나'가 상상 같고, 월요일 아침의 '나'가 현실처럼 느껴졌다. 화사한 봄꽃과 아름다운 고궁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걸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내일은 다가오고 있지만 회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당시의 나는 이직한 지 4개월 남짓 되었고, 좁은 업계의 특성상 일찍 그만두면 나를 받아줄 회사는 전무하리라 생각했다. 버텨야 한다고 다독였다. 다독였지만, 눈물이 흐르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고민을 말하는 방법을 몰랐다. 털어놓는다고 나아질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이겨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믿었다. 엄마와 아빠는 회사는 다 그런 거라고 얘기했다. 친구들에게는 고민을 얘기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상사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죄송하다고 말했던 모습을 고치고, 상사의 기분에 맞춰 행동하고, 상사가 좋아하는 취미에 관심을 두고, 상사가 싫어하는 사람을 나 또한 싫어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상사는 점점 더 많은 노력을 요구했고, 그가 바라는 부하직원의 모습이 벅차다고 느낄수록 내 자리가 남의 자리처럼 느껴졌다.     


새벽에 잠에서 우연히 깨면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출근까지 시간이 남았다는 사실이 기뻤고, 퇴근할 때면 옥죄어오던 긴장감이 풀어지며 만원 버스조차 평화로웠으며, 침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 안전하다는 생각에 눈물을 머금고, 흐느끼다, 이불 안으로 숨었다. 돌이켜보면, 나를 괴롭힌 건 나 자신이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와는 다르게 제 손에 이끌려 날카로운 칼날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상사는 나에게 자신의 기준에 맞추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평소처럼 행동했고, 대처가 미약한 나를 보며 직장에서의 표현 수위를 점차 높여갔다. 나에게 화를 내고, 욕하고, 짜증 내던 모습은 그의 본성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나의 모습은 그의 행동을 타당하게 만들었다. 속마음을 감출수록, 죄송하다고 말할수록 그는 정당한 사람이 되었다. 잘못한 사람은 나였으니까.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창경궁을 배회하던 나와 만날 수 있다면, 한마디 말을 건넬 수 있다면 "네 마음대로 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싶다. 왜 아무도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았을까. 내게 고민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기에 어떠한 말도 듣지 못한 게 당연했지만, 나에게는 오늘보다 더, 더더욱 간절하게 '괜찮다'는 말이 필요했다. 모래바닥에 닿은 눈을 맞추고, 어깨를 토닥이며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는 말'을 들었다면 당시의 나는 최선을 다해 현실과 마주했을 것 같다. 4개월 만에 이직한 직장에서 그만두었다는 꼬리표보다 중요한 것이 내 마음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누군가 알려주었더라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새어 나온다. 그 시절의 내가 못 다 흘린 눈물인가 보다. 잠시 시간을 내어 창경궁에 다녀와볼까 한다. 황사인지 미세먼지인지 모를 이유로 흩뿌연 하늘의 오늘, 거리를 배회하며 이겨내기 위해 애쓰던 6년 전의 나를 만나 위로해주고 싶다. 황사로 흐리고 어두운 하늘 아래에 시간을 잊고 창경궁을 걷던 나에게 눈을 맞추고, 어깨를 토닥이며 괜찮다고, 네 마음대로 해도 괜찮을 거라는 말을 건네며.          


Image by 용한 배(YHBa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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