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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Sep 06. 2021

만약, 내 삶이 단 6시간 남았다면

  만약, 내일 죽음을 맞이한다면 나는 어떠한 오늘을 보내고 싶을까. 나에게 주어진 삶이 단 6시간이라면 나는 그 시간들을 어떻게 보낼까. 자고 일어나니 오후 6시가 되어있고, 생이 오전 12시에 끝난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저녁 식사를 하고 싶다. 엄마, 누나, 아빠와 함께 동그랗게 모여 앉아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 소풍을 갈 때면 엄마가 싸 주시던, 들어있는 재료는 여느 김밥과 다르지 않지만 꽉꽉 눌러 만 덕에 식감이 좋은 김밥으로 차려진 식탁에서. 한 끼 식사도 손수 만들어드린 적 없는 탓에 마음 한편이 찔리기는 하지만, 삶의 마지막 식사이기에 찌개가 되지 못한 된장국과 김밥이 되지 못한 주먹밥으로 끼니를 채우고 싶진 않다. 


  그 식탁에서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며 말하지 못했던 나의 마음을 여과 없이 들려주고 싶다. 아빠에게는 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온 시간을 더 알아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엄마에게는 내 삶을 지배하는 핵심적인 감정은 불안인데 그 불안은 엄마의 것과 많이 닮았고 외로웠고 답답하고 두려웠을 엄마의 시간들을 알 것만 같다고 알려주고 싶다. 누나에게는 일찍이 철이 들어 일을 시작하고 가정을 꾸리느라 빛을 보지 못한 삶이 있다면 미안하고, 나에게는 현실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등대와 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다.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한 사람씩 안아주며 "고마워"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꺼내고 싶다. 


  2시간을 가족들과 보냈다면 남은 시간 중에 또한 2시간을 편지를 쓰는 데 보내고 싶다. 내가 만나고, 눈빛을 나누고, 대화를 하고, 시간을 보낸 사람들 중에 마음으로 간직하고 있는 이들에게 인사하고 싶다. 누구에게 먼저 인사를 할까 왼손을 펴고 고민하다가 접히는 엄지손가락의 주인공은 역시 여자친구이다. 무려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곁을 내어준 그는 인생곡선이 바닥으로 치닿던 순간들을 함께 살아준 존재이기도 하다. 그에게 느끼는 서운함도 분명 있지만, 그가 있기에 오늘의 내가 살아있다는 믿음은 결코 흔들린 적이 없다. 삶이 어렵고 치열할수록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은 일상을 견디는 힘이 된다. 그와 나란히 걷던 길이, 이어폰을 나눠 끼고 듣던 음악이, 야채곱창 2인분에 곱창 사리를 넣어 배부르게 먹던 그 시간들이 나에게는 일터에서의 괴로움을 덜어주던 돌아갈 곳이었다. 


  서툴고 부족한 탓에 미안했고 나는 그저 네가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노력하고 싶었지만, 그 노력이 너에게 묻지 않은 나의 일방적인 방식은 아니었는지 후회가 된다고. 나에게 시간이 조금 더 주어진다면 우리가 지금보다 다툴지라도 나의 속마음을 편히 드러내고 싶다고. 그러기로 약속해놓고 두려운 마음에 침묵했던 시간들이 여전히 미안하며 너와의 순간들을 가슴 깊이 간직하겠다고. 또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별처럼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언제든 이어질 것 같았던 이야기들을 마무리하며 그들의 삶을 온전히 응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남은 2시간은 나를 위해 보내고 싶다. 바다에 가고 싶지만, 파도소리를 듣기 전에 숨이 멎을 예정이므로 베란다로 가고 싶다. 우리 집에서 바깥과 가장 가까운, 세상과 맞닿아 있는 그곳에 앉아 나를 생각하고 싶다. 후회되는 일이나 좋았던 일을 억지로 떠올리기보다는 TV를 보듯 하늘에 그려지는 나의 시간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싶다. 노래를 듣는다면 삶을 회고하는 마음으로 이나우의 "Bloom Again"을 듣고 싶다. 흘러나오는 피아노 반주에 구름이 된 것처럼 하늘을 자유롭게 유영하고 싶다. 


  그래도 시간이 남는다면 고해성사를 하고 싶다. 유서를 쓰고 싶진 않다. 독백하고 싶다. 누가 들어도 좋고 아니어도 상관없다. 나의 마지막 표현을 말로, 귀로, 피부로 느끼고 싶다. 나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의 첫 문장을 본떠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싶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다. 다가오는 빛이 두려워 도망치기 바빴으니까. 그림자 뒤로 숨기 위해 뒷걸음질 치다 보니 후회로 가득한 삶을 살았다. 스스로에게 솔직했다면 어땠을까. 느껴지는 감정을, 떠오르는 생각을, 온몸으로 전해지는 감각을 외면하거나 부인하지 않고 받아들였다면 삶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죽음을 목전에 두어서야 나는 목놓아 말한다. 그림자가 지는 이유는 빛이 비치기 때문이었다고. 빛이 나를 감싸고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그림자가 세상에 생겨난 거라고. 그림자를 향해 다가가는 길이 잠들어있던 열정을 깨우며 두근거리는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이었다고. 


  다만, 실제 내가 살아갈 시간은 3시간보다 길다. 오전 12시가 넘으며 내일이었던 날은 오늘이 되었다. 출근을 앞둔 월요일이지만 마음이 새롭게 피어난다. 위에 적은 많은 이야기들은 당장에 마음을 먹는다면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어느 하나 크게 공을 들여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단지, 부족한 게 있다면 내 삶을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에 있다. 나는 언제든 꿈을 꿀 수 있다. 그 꿈을 내가 가진 상상력으로 마음껏 꾸미고 채울 수 있다. 상상의 끝에는 하고 싶은 말, 살고 싶은 삶처럼 기대와 바람이 기다리고 있다. 그 기대와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룰 수 있다는 믿음과 이루기 위해 나아가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어쩐지 오늘 밤 꿈에는 세계를 자유로이 여행하는 나와 마주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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