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근거림 Sep 22. 2021

내일의 일은, 내일의 우리에게 맡기기로 해요

  새로운 직장에 취업을 한 지 2달이 되어간다. 그간의 나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물에 빠진 생쥐꼴과 다르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이전에 경험했던 몇 번의 직장생활로 말미암아 워라밸을 해보겠다는 굳은 다짐은 온데간데없이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데에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직원증에 있는 사진 코 옆에 큰 점을 찍고 '민수호'가 될 거라는 외침은 호기로운 혼잣말이 되어버렸다.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미친 사람처럼 일을 해내는 모습은 '나에게도 이렇게나 빠릿빠릿한 면이 있었나?' 하는 놀라움을 갖게 하기도 했지만, 이내 퍼낼 에너지가 없다는 사실을 장염, 빈혈, 두통, 무기력함으로 겪으며 반성하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 논문 작성과 자격증 시험, 원고 작성처럼 내일로 나아가기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도처에 즐비한 과제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과제들을 접하기 전부터 나는 이미 지쳐있었다. 몸도, 마음도 건강했던 시절의 기억을 모두 잃은 듯, 시름시름 앓으며 일을 망치지 않을 정도로만 견디어 갔다. 허리가 굽은 사람들은 올곧게 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내 굽은 자세로 돌아간다. 익숙하고 편안하기 때문이다. '아 맞다 허리 펴야지'하는 생각은 의식하지 않는 순간 우리의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마음이 아프지 않게 쉬어야지' 생각하면서도 긴장을 쉽게 풀지 못한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라도 해야 의미 있게 오늘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내일을 향한 우리의 마음은 느슨해지려는 스스로를 활활 타오르도록 부채질한다. 다가오는 내일이 두렵다. 5일이라는 긴 휴일의 끝, 어지럽히듯 책상 위에 두고 온 여러 일들이 생각난다. 가까스로 느슨해진,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하고, 조카들과 뛰놀기도 하고, 부모님과 산책을 다녀오며 가다듬었던 숨이 거칠어지는 듯하다. 책상을 정리하듯 서두르며 일을 한 가지씩 끝내는 내 모습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말라있던 두 눈에 소나기가 쏟아지듯 차가워진다.


  그래도 그동안의 직장생활이 그저 무의미하지는 않았나 보다. 내일의 삶에 잠식되지 않으려는 마음의 힘이 느껴진다. 나에게는 오늘, 22일 수요일이라는 연휴의 마지막 날이 남아있다. 이 시간은 내일의 내가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오직 오늘의 나에게 주어진 축복 같은 시간이다. 내일이 되기까지 남은 시간이 결코 길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 시간 동안에 나는 그 무엇도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 내일을 걱정하며 초조한 눈으로 살아가기에는 마음의 아픔을 알고 있는 나에게 주어진 오늘이 값지고 소중하다. 더 이상 '해내야 된다'는 주문의 노예로 살고 싶지 않다. 부모님의 의해, 학교에 의해, 직장에 의해, 친구에 의해, 나에 의해 만들어진 조각상과 같은 모습으로 더 이상 살아가기 싫다.    


  나는 나 스스로 친숙하고 편안한 모습을 알고 있다. 어리숙하고, 서툴고, 실수가 잦고, 어려워하나 서서히 다가가며 가까워지는 모습이야말로 조각상 안에 숨겨진, 찬란한 '나'이다. 입이 삐쭉 나온 표정으로 오늘을 살아갈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레어온다. 내일을 위한 '나'로서 오늘을 사는 게 아니라, 삐뚤어진 입모양을 반영하듯 마음대로 살아가려고 하니 온몸이 근질근질하다. 내일로 나아가려는 잘못된 생각을 오늘로 데려오니 여전히 할 수 있는 것들이 여럿 떠오른다. 오늘 나는 밤 산책을 다녀올 거고, 저녁으로는 그 시간에 가장 당기는 음식을, 낮 시간에는 출간 준비를 하려고 한다. 원고를 가다듬는 활동을 일이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막바지에 다다른 일을 끝내지 않는다면 불편하게 오늘을 보낼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하늘을 보고 있다. 푸르게 핀 하늘은 세상 그 무엇보다 평온해 보인다. 흘러가는 구름에 호흡을 맡겨본다. 이내 고요해지는 마음은 시간도, 내일도, 오늘도, 나도 잊은 채 그저 호흡하게 한다. 가만히, 그저, 하염없이 바라본다. 하늘을, 구름을, 나를.    


Image by Somchai Sumnow from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만약, 내 삶이 단 6시간 남았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