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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Jan 01. 2021

새해 목표를 1년 유예하는 것으로 해요, 우리

새해가 되었어요. 진짜, 올해에는 이룬 게 정말 단 한 가지도 없는 것 같은데. 서른네 살이 무턱대고 되어버리면, 어쩌하잔 말인지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네요.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에요. 평소에는 점잖은 척, 혼자 세상 무게 다 짊어진 척 지내왔지만 오늘은 투정 좀 보려 볼까 봐요. 


꿈이 하나 있어요. 근사하게 들리지 않을 거예요. '뭐 저런 게 꿈 이래?' 하며 웃을지도 모르겠어요. 여행이에요.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제가 여행에 목매는 이유는 '자유로움' 때문이에요. 혹시, 기억하실까요? 어느 글에선가 여행지에서의 둘째 날 아침처럼 살고 싶다고 쓴 적이 있어요. 다시 적으면서도 무척 설레네요.    


첫째 날은 일상의 때가 덜 벗겨졌고, 셋째 날은 돌아갈 걱정에 한숨이 세어 나오니, 역시 둘째 날이지 싶어요. 잠시, 잠시만 머물러보세요. 눈을 감고, 차분히 여느 여행지에서의 둘째 날 아침을 떠올려보세요. 어디든 갈 수 있고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자유로움이, 조여 오는 거라곤 벨트와 운동화 끈밖에 없는 시간이 느껴지나요? 


더 오래, 더 자주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여행지에서의 시간들을 나이 들기 전에, 그러니까 더 많은 책임을 가지기 전에요. 올해부터는 달라져야 할 거예요. 대학원에 온 다고, 상담을 배운다고 일도 오래 쉬었으니 취업을 해야겠지요. 또다시 구직 사이트를 찾아 저를 뽑아줄 것 같은 기업들을 추려서 그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으로 포장하여 들이밀어야 하는, 이력서를 다시 쓸 생각을 하니 마음이 먹먹해지네요.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 해외는 아니더라도 국내 곳곳을 다녔을 거예요. 낯선 지역을 걸으며 사람들과 풍경을 만나고, 어제의 나를 잊은 채 오늘의 나와 꾸밈없이 만날 수 있는 그 시간이 저는 참 좋더라고요. 일상에서는 변화한 나를 만나기 어려워요. 유지되고 있으니까요. 사람도, 환경도. 여행을 떠나는 순간, 여행지를 걷는 순간 어제의 나는 바래져요. 시큰거리는 다리와 가빠오는 호흡이 말해주거든요. 


"너는 지금 여기에 살아 숨 쉬고 있어"


이 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살다 보면 가끔 살아있다는 걸 잊어버릴 때가 있어요. 해야 되니까 하고, 자야 되니까 자고, 먹어야 되니까 먹는데. 살기 위한 당연한 과정인데 저는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더라고요. 특히 외출을 하지 못하는 요즘 들어 더 그런 것 같아요. 


저에게 "감기 걸렸어요?"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오늘 처음 말하는 거예요."라고 설명한 날들이 많았어요. 친구들을 못 만난 지도 오래되었어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씩 시켜놓고 나누던 그 대화들이 무척 그리워요. 사람들과 부대끼는 시간들이 얼마나 그립냐면, 절 괴롭게 했던 상사와 함께 갔던 워크숍에 다시 참석하고 싶은 정도라고나 할까요. 조금 우습기도 하지만, 진심이에요.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드는,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건 쉬운 게 아니에요. 저만의 고통은 아닐 거예요. 저보다 더한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이 많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제가 경험하고 기억하는 해 중에 유지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1년이지 않을까 싶어요. 잃는 게 너무 많아서 이루거나 얻기는커녕 더 나빠지지 않은 게 크나큰 행운이었던,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작년에 세운 새해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룰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으니까요. 저 또한 아쉽지만, 여행을 떠나지 못한 건 제 의지가 아니기 때문에 받아들이려고요. 이제는 취업 때문에  떠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요. 그래도 역시 새해 목표는 '다이어트', '금주', '금연'같이 달성 안 할 것처럼 추상적으로 세우는 것이 제 맛이니 저는 다시 '여행 가기'로 할까 봐요. 


새해 목표를 1년 유예하는 것으로 해요, 우리. 희망은 현실에 치이는 달콤한 환상 같지만, 희망 없이는 이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기 어려울 것 같아요. 희망 하나만 품어볼까 봐요. 여행을 떠날 거예요. 뉴스속보에서 더 이상 확진자 소식이 나오지 않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고, 잃어버린 일상이 되돌아오는 날에요. 


그때까지 우리 안전하게, 건강하게, 기운 내서 지내요. 앞으로도 글을 쓰며 여러분 곁에서, 여러분의 삶을 응원할게요. 그리고 한 번씩 여러분의 삶에 평안과 축복이 깃들기를 진심 어린 마음으로 기도할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만약 여행지였다면, 그곳에서의 둘째 날 아침이었다면 해야 되니까 하고, 자야 되니까 자고, 먹어야 되니까 먹는 저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을 거예요. 저는 이 말을 기억하고, 품고, 되새기며 주어진 시간들을 잘 버텨볼게요.  


"하고 싶을 때 하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으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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