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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Jan 05. 2016

[19] 슬럼프에 대한 기억

과거의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며.

"한 번만 만나주시면 안돼요?"     


전 직장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당시 나는 3인 팀의 선임이었고, 수습이었던 후배와는 약 3개월 동안 함께 일을 했었다. 퇴사하고도 종종 연락이 오곤 했었는데, '한 번만' 만나 달라는 말은 생전 처음이라 설익은 웃음이 나왔다. 그간 나는 후배와의 만남을 피해왔었다. 사람은 주관적인 존재이다. 그 누구라도 자신의 관점을 완벽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퇴사를 한 내가 말을 할 때마다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전 직장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이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후배 앞에 서는 걸 조심했었다.     


직장에서의 갈등은 직장 내에서 해결하는 게 좋다. 가족이나 지인에게 상사와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고 가정해보자. 그들은 직장의 속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울 뿐더러 초점에 어긋난 조언을 해줄 가능성이 높다. 가까운 사람과의 대화는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는 걸 도왔거나, 미루어 왔던 마음속 결정을 확신하게 되는 계기일 수 있다.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스스로의 힘으로 갈등에 부딪치며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일까. 조심스러웠다. 현재 같은 직장에 소속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특별할 것 없는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을까. 그러고 보니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후배가 나에게 의논하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내가 근무하던 회사에서는 1년마다 퇴사의 위기가 찾아왔다. 업무가 자신과 맞지 않아서,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상사와의 갈등 등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한 순간의 감정적인 이유로 퇴사를 결심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쌓이고 쌓이던 물음들이 해결되지 못하고 머릿속을 뒤흔드는 강한 느낌표로 변할 때, 최후의 수단인 '퇴사'를 결심하게 된다. 


그런 순간이 나에게도 있었다. 결국은 퇴사를 했지만, 처음으로 물음을 갖기 시작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혹시, 곧 1년 차가 되어가는 후배도 해결하지 못한 물음들을 계속 쌓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퇴사라는 느낌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나에게 용기 내어 연락한 것은 아닐까. 그렇게, 나는 치열하고 처절했던 과거의 시간으로 서서히 잠겼다.     


2012년 3월이었다. 나는 팀의 둘째였고, 외부에서 시민들께 홍보하는 활동을 했었다. 입사하고 처음 1년은 아무런 물음도 갖지 않은 채 열심히 일했다. 성취나 인정에 대한 욕심은 적었다. 단지,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기에 급급했다. 업무 이외에도 그만두려는 선임과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막내 직원 사이에서 중심을 잡았어야 했다. 단 하루라도 소홀하면 안 좋은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에 스스로를 바짝 조였던 것 같다.     


거듭되는 시민들의 거절 속에 마음에는 커다란 불안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무표정한 얼굴에 차가운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들. 거리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두려웠다. 선임은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고, 후배는 나에게 기대하는 것 같은데. 정작 나는 고개를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기도 어려운 상태가 되어 있었다.     


두려움을 느낀 첫날,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한 숨 푹 자고 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아니었다. 어제와 같은 두려움이 이튿날 반복되었다. 목소리는 작아지고 말은 점점 빨라졌다. 제 상태가 아니었으면서도 동료들이 눈치챌까봐 애써 담담한 척을 했다. 알고 있었으니까. 흔들리는 직원 한 명이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신경 쓰이고 부담이 가는 일인지. 목표 달성 여부와 관계없이 하루가 그저 끝나기만을 바랐다. 슬퍼보일지도 모르는, 어색한 웃음을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지으며.      


주말이 되었다. 한 주 동안 나는 퇴근 후에도 내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걱정에 휩싸였었다. 뒤척이다 잠에 들었다가도 우연히 깼을 땐, 시계를 찾아보는 게 겁이 났다. 새벽 6시에 가까우면 불안한 하루가 다시 시작될 테니까. 주말에는 두려움을 느껴도 동료들에게 티가 나지 않아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처음 겪는 상황이다 보니 어떻게 해야 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때,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두려워하는 것들을 노트에 직접 적어 보는 일이었다.   

  

언제쯤이었을까. 후배들이 “이 일을 왜 하세요?”라고 물었을 때, 합당한 대답을 찾기 위해 노트에 자주 메모를 할 때가 있었다. 그때는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해 후배들에게 말하지 못한다면 좋은 선배가 될 자격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적기 시작한 노트의 수가 5개였는데, 생각해보니 그 노트에 있는 내용들을 단 한 번도 다시 읽거나 정리한 적이 없었다. 한 장씩, 조심스레 들추어 보니 그곳에는 내가 잊고 있었던 경험들이 빼곡하게 남아 있었다.     


 - 나의 색깔을 중심으로 이타적 성향을 겸비하면 변화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 

  ① 나는 어떠한 성격과 강점을 가지고 있는가?

  ② 상대방은 어떠한 성격과 강점을 가지고 있는가?

     (나의 관점과 상대방의 과거를 이해한 당사자 관점으로 생각해보기) 

  ③ 나와 상대방의 성향을 서로 이해한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서로 오해 없이 조율할 수 있을까? 

       그 안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까?     


새로 산 노트에 필요한 기록들을 옮겨 적고, 지난 한주간의 경험을 추가하며 나는 입사했을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어떠한 생각과 자세로 일을 해 왔으며, 내가 왜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았다.      


 - 눈앞에 보이는 것에 쫓기지 말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자 모든 것을 이겨내고 현재에 충     실할 때 후회 없이 즐거울 것이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상대방과 마주하며 나의 ‘명분’을 잊지 말자. 그 어떤 상     황에서도 나는 최선을 다했고, 오늘도 그럴 것이다.     


2주 정도가 지나고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다. 먼지 쌓인 노트가 두려움에 휩싸인 나에게 조언을 해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꾹꾹 눌러 쓴 지난 나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결심했다. 내가 기록했던 노트들을 후배에게 전해주기로. 어쩌면 노트속의 나는, 후배에게 더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지 않을까. 그 기록들을 통해 후배가 현재 걷고 있는, 또 앞으로 걸어갈 길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 훗날 후배가 길 끝에 다 달았을 때, 보게 될 결말이 나와는 달랐으면 하는 바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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