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나를 생각해주는 누군가를 위해
나에게 있어 글을 쓴다는 건
헉- 믿기지 않는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벌써 5개월이란 시간이 되었다니. 기껏 해봐야 비공개 블로그나 핸드폰 메모장, 노트에 드문드문 쓰는 게 전부였는데 신기하게도 나는 글을 쓰고 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나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옮겨 적고 있다.
처음 브런치를 알게 된 것은 친구의 소개였다. 생각해보면 그 친구에게 보여준 것이라고는 글이 아닌 나의 '드문드문 떠오르는 감정' 정도였는데. 혹시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어떤 가능성을 높게 봐줬던 건 아닐까? 아무튼 친구 덕분에 나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닌, 온전히 나를 위한 글을 써내려 가게 되었다.
여유를 내어 다시 읽어보는 나의 글들은 어설프기도 한데, 무척 부끄럽다. 잠시 추억에 빠져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짓는 한편으론 아쉬운 마음이 든다.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았던 과거와는 달리 어째 겉멋만 들어가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는 거라곤 고작 떠오르는 나의 생각을 브런치에 옮겨 적는 것뿐인데, 그깟 형식이나 틀이 뭐가 중요하다고 작고 세밀한 부분까지 고민했는지 모르겠다.
적었던 모든 글들은 나의 생각이고, 곧 나이기 때문에 그동안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에겐 아직 말하지 못했다. 곰곰이 세어봐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정도뿐인 것 같다. 이 곳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표현하는 곳이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숨김없이 묻어 있는데, 그런 솔직한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무척 두렵다. 또 내 생각을 읽고, 나를 바라 볼 사람들의 시선도 두렵다. 좋아 보이진 않을 것 같다.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심경들을 매일같이 쏟아내고 있으니까.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나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눈에 띄는 단점으로는 어릴 적부터 유독 한 가지를 꾸준히 하지 못하는 안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다. 최근 있었던 일을 예로 들면, 토익공부를 하다가도 토익공부를 해야 되는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하지 않았었다. 근력운동을 하다가도 지금도 꽤 건강하기만 한 것 같은데 나를 괴롭히면서 까지 해야 될 이유를 찾지 못해 그만두기 일쑤였다. 그래서일까? 더 신기하기만 하다. 내가 지금 브런치에서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물론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아무도 몰라주겠지만. 뭐, 괜찮다. 누군가가 나의 감정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적어왔던 건 아니었으니까.
지겹게 나를 쫓아오던, 소속되어 있는 삶에서 벗어났다. 유치원을 시작으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까지. 그 안에서 유치원생,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의 신분으로 살았던 나. 그때 나의 이름 앞엔, 항상 속한 곳의 명칭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그런데 퇴사를 하고 보니 나는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게 되었다. 소속된 삶을 살았을 때는 밤잠을 청하기 위해 침대에 누우면, 다음 날 어떤 일들이 펼쳐지게 될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헌데 당분간은 자고 일어나면 다음 날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전혀 가늠할 수 없다니. 돌이켜보면 소속이 없는 그간의 밤들은 나에게 있어 기대와 불안의 연속이었다. 기대하게 되는 내일을 맞으려면 오늘을 조금의 부끄럼 없이 충실히 살아야 했고, 오늘을 헛되이 보낸 날에는 불안한 내일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려야만 했다. 흔한 달빛조차 없는 캄캄한 천장을 보며 자주 생각했었다.
그렇게 나는 매 시간 힘겹게 나아갔던 것 같다. 때로는 텅 빈 하늘에 줄 하나 걸어놓고, 불어오는 맞바람을 이겨내며 외줄을 타는 듯한 감정도 들었다. 질끈 눈을 감고 싶은 순간도,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나는 얼마나 더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항상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 걸까? 그냥, 그냥 냇가에 흐르는 물처럼 조용히 살고 싶을 뿐인데. 줄곧 포기하고 싶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언제고 다시 떠야만 하고, 주저앉으면 결국 다시 일어나야만 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내가 다시 힘껏 나아가야 할 중요한 이유가 생겼다. 생각에 잠겨 걸어왔던 지난 길을 돌아보니, 나는 항상 혼자가 아니었다.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항상 혼자가 아니었다.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지만, 나를 생각하는 시간들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세상의 모진 풍파를 함께 견뎌내면서도 내가 올바른 길로 잘 나아가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나는 슬며시 그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바라본다. 이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켜볼 차례인 것 같다. 혹시라도 다치진 않을지, 아파하진 않을지. 내가 품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마음을 담아 그들의 삶을 지긋이 바라보고 싶다.
나는 평범하다. 특별한 것 하나 없지만, 오히려 그게 나의 매력인 것 같다. 나는 길을 걷다가 쉽게 지나치는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오늘도 나의 마음속을 다녀간 많은 분들의 곁을 수 없이 지나치진 않았을까? 아마 그럴 수도 있었겠지. 그랬다면 조금은 다행이다. 분명 나는 그 누구보다 행복한 모습이었을 테니까.
'어떤 주제에 대한 글을 쓸까?', '어떤 주제를 다뤄야 있는 그대로의 나를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묻혀 살았던 지난 5개월. 그 시간들은 나에겐 기나긴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느껴진다. 음- 여행을 다녀온 덕분일까? 또다시 내 앞에 힘든 일들이 생겨나도 아무렇지 않게 견뎌낼 수 있는 굳건한 믿음이 생겼다.
풉- 왜 이렇게 나는 한결같을까? 잘 짜인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또 새로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좋지? 당장 나의 생각을 옮겨 적을만한 글의 주제를 정하지 못했다. 어떤 글을 써야 나의 생각을 읽는 사람들이 잠시라도 온전히 쉬어갈 수 있을까? 더 깊이 고민해봐야겠다. 내가 생각하는,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똑똑똑. 여러분. 슬슬 봄을 맞이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추위에 단단해졌던 마음의 틈을 조금씩 열어주세요. 혹시, 아직 한 겨울이라 절대로 틈을 열 수 없다고요? 아니에요. 귀 기울여 보세요. 저에겐 봄이 오는 소리가 들려와요. 또 눈 앞에 보일 듯해요. 어? 혹시, 봄이 저에게만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걸까요? 그렇다면 설명해드릴게요. 저도 처음엔 잘 몰랐는데, 겨우내 우리 마음속 어느 한 곳에선 푸른 새싹이 숨 쉬고 있었나 봐요. 웅크린 채,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지난 세월을 딛고. 자라고 자란 푸른 새싹은 어엿한 꽃이 되어 세상을 봄으로 물들일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잊지 마세요. 알겠죠? 당신은,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 누군가에게 봄 내음을 건네는 따스한 꽃이 될 거란 믿음을요.
앞으로도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