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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Feb 24. 2016

나는 재입사하지 않기로 했다

재입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이후의 기록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너는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며 신이 난 듯 설명했다. 내심 좋았지만, 티 내지 않았다. 우린 헤어진 사이니까. 찬란했던 우리의 시절은 이미 지나간 소문이 되어 버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하자면, 이건 사랑이 아닌 전 직장과 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신기하다. 아니, 허탈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을 만큼 재입사 고민으로 치열했던 하루는 마침내 어제가 되었다. 나는 재입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직 확신은 서지 않지만 후회는 없다. 첫 번째 퇴사를 했을 때처럼 혼자 선택하지 않았으니까.      


잠시, 퇴사하던 날로 돌아가 보자. 송별회를 했었다. 가뜩이나 약한 주량에도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에 동료들이 따라주는 술을 거듭 마시다가 끝까지 취해버렸다. 식당에서 마주앉았던 동료들의 촉촉한 눈은 사진처럼 기억나지만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작별인사를 건네고 지하철 역으로 걸어갔다. 2년이 넘는 시간동안 매일같이 걸었던 그 길에선 옛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나는 속으로 크게 외쳤다. '왜 말하지 않았을까. 내가 이렇게 힘들고 외로웠다고.' 라며. 눈물이 두 눈 가득 차오를 때, 후배 한 명이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괜찮으세요?" 라고. 나는 그 말에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처음이었다. 입사한 이후 퇴사할 때까지 남들 앞에서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다. 전 직장은 나에게 첫사랑 같은 존재였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니까.      


퇴사한 이유를 권태기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맞다. 직장과 나는 미지근한 관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이별을 맞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특별하고자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퇴사 이후의 나는 전 직장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했다. 이상했다. 잊으려 하면 할수록 더욱 선명히 떠올랐다. 돌아갈 순 없지만 근무하면서 만들었던 추억들을 되돌아볼 때면 행복했다. 이내 공허함이 찾아와 그만두겠다고 말한 내 결정을 후회하게 만들었지만.      


한 통의 전화는 전 직장을 잊지 못하던 나에게 불쑥 걸려왔고, 다시 입사할 생각이 없냐는 말을 남겼다. 이때부터 재입사 고민이 시작되었다.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난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 되뇌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을 찾는 것에 집중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문제가 대부분 그렇듯, 올바른 결정이란 게 참으로 애매모호했다.     


첫 번째 퇴사를 할 때에 혼자만의 생각에 몰두한 나머지 지인들의 의견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생각이 깊어지면 상상이 되고, 상상은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며 일상을 갉아먹는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내가 처한 상황을 가족, 친구, 과거 동료들에게 설명하고 의견을 구해보았다. 다행히 지인들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나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첫 번째전 직장 후배가 나를 위해 들려준 말     


지금, 바로 이 밤에 결정을 내린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에요. 어렵고, 또 옳지도 바르지도 않은 선택일지 몰라요. 그럼 오늘 밤은 '돌아가지 않는 것'으로 할까요? 그리고 다시 내일 밤 마음을 정해 봐요.      


내일 밤에는 왜 돌아가고 싶은지를 구체적으로 적어 봐요. 끊임없이 끄적끄적 써 내려간다면, 그럼 설레고 있는 거겠죠? 그렇지 않고 머뭇머뭇하게 된다면 다시 다음날 밤에 가지 말아야 할 이유를 적어보세요.  

    

어제보다 술술 써질 수도 있고, 전전 날처럼 마음이 다 잡히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룻밤이 아닌 몇 날 며칠을 생각해봐요. 그래야 좀 더, 선배의 마음속 답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가까이 다가가도 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어요.      


못 찾으면 뭐 어때요~ 못 찾았으니까 반복해서 찾아가는 거죠. 우리는 '과정'에 있는 거지 '끝'에 있는 게 아니니까요.     


두 번째블로그에 남겨주신 이주연 님의 댓글     


어느 직장이나 조직생활을 하는 곳은 다 비슷한 가 봅니다. 저희도 그런 일이 종종 있습니다. 냉정하게 얘기하셨는데, 정말 냉정하게 후자처럼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수단인 경우가 많긴 해요. 그렇지만 어쨌든, 다시 불렀다는 건 당신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같이 일했을 때 수월했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급해도 부딪힐 거 뻔히 아는 사람 뭐 하러 부르겠어요.      


두 번 다시 여기서 일 안 해, 하던 언니가 중간에 우리가 필요할 때 요청했더니 온 적이 있었어요. (상사가 부르라 해서 어쩔 수 없이 연락했지만 좋은 언니여서 다시 일하면 힘들 거 아니까 내심 거절하기를 바랐거든요.) 물론 우리는 그 언니가 일을 잘하고 성격도 좋으니까 다시 와주면 좋지만, 윗분 스트레스를 너무 받았던 기억이 있어서 왜 또 왔을까 궁금했어요.     


언니는 농담처럼 “돈이 필요해서” 라고 하면서 그래도 우리랑 함께 또 만나서 좋다고 하더라고요. 요즘엔 뭐든 선택의 기회가 있을 때 한쪽으로 치우친 게 아니라 51과 49 중에 하나여서 더 어려운 거 같아요. 작가님은 어떤 선택을 하던 잘하실 거 같네요. 후회 없는 삶은 없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단단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헤어진 이후에 다시 만나고자 한다면 이별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대화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단지 그립고 외로워서 재결합한다면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이 반복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대화하고자 했지만, 전 직장은 대화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나는 미래를 계획했지만, 전 직장은 아무런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달라지기 위해 아쉬웠던 모습을 반성하고 있었지만, 전 직장은 예전 그대로였다. 내가 생각한 만큼, 전 직장은 나를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나 혼자만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나에게는 인생이 걸린 문제였지만, 전 직장의 입장에서 나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었다. 받아들이고 싶진 않지만 현실이다. 애초에 내가 상상했던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은 여전히 동료들의 불만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직시해야 한다. 동료들과의 우정으로도, 첫 직장에만 가질 수 있는 애정으로도 다 덮을 수 없을 만큼의 상처를 받았다.      


완전한 이별을 결심했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아야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내가 좋아한다고 해도, 그곳은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미련 없이 포기하기로 했다. 나는 더 좋은 직장을 만날 권리가 있으니까. 놓아주기로 했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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