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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Mar 01. 2016

출근길, 어느 하루의 생각

출근길에 떠올렸던 나의 생각들

AM 06:30

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어둠이 잠식했던 방 안에 햇빛이 찾아왔다. 지난밤 온몸을 짓누르던 피로는 사라지지 않고 더욱 잦아든다. 내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날을 샌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일어날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혹시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진 않았을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이내 따스한 이불의 품을 벗어나 샤워실로 향한다.


온수를 틀어 놓은 채 멍하니 바라보았다. 흐르는 물줄기는 어디에서부터 온 것 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나와 마찬가지 인 것 같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어디로 향하는지 의문을 갖지 않은 채 그냥 살아가고 있다. 뻔하다. 오늘도 그저 그런 하루가 펼쳐질 테다. '아차, 씻어야지' 상념을 털어내며 물에 몸을 맡긴다.


부랴부랴 씻고 나왔는데 벌써 30분이 지났다.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대충 말린 후 널브러져 있는 옷 중 몇 개를 주워 입었다. 열지 않은 가방을 등에 메고 집을 나가기 전, 습관적으로 허기진 배를 쓰다듬었다. 현관문을 앞에 두고 허전한 마음이 들어 뒤를 돌아 빈 식탁을 바라보았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아침이면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었었는데. 왜 맛있는 반찬이 없냐며 투정 부리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식탁 옆엔 바로 부모님의 방이 있다. 아버지께선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 회사에 근무하셨다.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하다. 어떻게 그리 오랫동안 한 곳에서 일하실 수 있었을까? 문득, 회사에서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 궁금했다. 아침 여덟 시까지 출근해서 업무를 보는 불편한 박 과장 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결재서류에 작은 오타도 용납 못하는 꼼꼼한 김 과장 같은 사람일까? 아마 집에서와는 사뭇 다르겠지.


상상에서 빠져나와 다시 부모님의 방을 보았다. 함께 아침을 먹은 후 학교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던 어머니께서는 아직 주무시고 계시다. 서운함 보단 죄송함이 앞선다. 평소에 내가 조금 더 노력했더라면 호강시켜 드릴 수 있었을 텐데. 순간, 눈 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나는 사무실보다 조용해진 집을 등지고 출근길에 올랐다.


AM 07:30

허겁지겁. 눈에 낀 눈곱을 떼며 집 인근에 있는 버스정류장까지 걸어왔다. 버스 중앙차선이 생긴 이후로 진귀한 광경이 펼쳐진다. 여러 대의 버스가 줄지어 서 있고, 그 버스를 타기 위해 상대의 어깨를 밀치는 행위는 아무렇지 않은 듯 아수라장이 되어버리는 정류장. 오늘도 버스를 타기 위해 뛰어가는 사람이 보인다. 아차. 정신을 차리고 숨 가쁘게 그 뒤를 따른다. 다행이다. 이번에 오는 버스를 놓치면 지각이라는 생각에 노파심이 들었는데 뒷문을 통해 간신히 탔다.


출발하는 버스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타고 있다. 외형적인 느낌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직장에서의 역할도 각 자 다를 것이다. 하지만 눈빛을 잃은, 생기 없는 표정은 어째 하나 같다. 서로에게 등 떠밀려 모이게 된 출근길 버스는 늘 무겁다.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는 사이 그들의 대열에 합류한 걸까. 억지로라도 웃음을 지어보려 했는데, 쓴 맛이 난다. 어느새 다음 정류장 도착을 앞두고 있다. 저 멀리 버스를 타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과 내리기 위해 출구로 모여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이에서 몇 번, 갈팡질팡 하다 보니 내려야 할 곳에 도착했다.


AM 08:00

행복한 시간이 찾아왔다. 버스에서 내려 회사 앞까지 걸아가는 약 15분의 거리. 이 곳의 지명은 청파동이라 불린다. 나는 이 길을 좋아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하루 중 나를 생각할 수 있도록 허락된, 유일한 시간이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든 아무도,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나의 자유가 허락되는 청파동 길은 늘 달콤하다. 단골 편의점에 들러 커피 우유를 샀다. 한 모금 넘기며 좋아하는 노래를 틀었다. 두근거린다. 오늘, 나는 무엇을 생각할까? 음- 글쎄, 알록달록해진 마음이 이끄는 대로?


정했다. 오늘의 주제는 미래다. 5년 후, 10년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하고 싶은 게 없는 나에게 구체적인 대답은 사치인 것만 같다. 아! 그래도 확실한 건 있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것. 나의 행복으로 미소 짓는 누군가와 마주하는 것.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아낌없이 표현하는 나.


AM 08:30

회사 앞까지 왔다. 평소보다 걸음이 느려진 탓에 조금 늦었지만. 이제 직장인으로의 나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출근 몇 걸음을 남겨두고 불현듯 나의 일과가 떠오른다. 분명, 나는 몇 번의 실수를 저지를 것이고, 몇 번 혼이 날 것이다. 몇 번의 눈치를 볼 것이고, 몇 번 퇴사를 고민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괜찮다. 걸어오면서 나를 충분히 생각해 본 결과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다. 물론, 나에겐 더 없이 소중한 사람이다.


사무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은 후 깊은숨을 내쉬었다. 다소 두렵지만 출근길의 다짐을 떠올리며 모니터로 비치는 얼굴에 슬며시 미소를 지어본다. 나는 그 미소에 화답한다. 기운 내.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나는 소중한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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