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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Mar 11. 2016

만약, 상사가 된다면

상사가 되기 위해 고민했던 흔적들

만약, 내가 상사가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았을 법한 이 물음에 나 또한 진지하게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다. 입사를 하기 전 군대생활을 거친 성인으로서 어떤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 어렴풋이 상상할 수는 있었지만, 눈 앞에 닥친 현실은 나의 상상과 사뭇 달랐다. 상하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회사의 성과주의는 업무에 대한 모든 결과가 수치로써 드러난다. 즉 수치가 높으면면 일을 잘하는 부류, 수치가 낮으면 일을 못하는 부류로 나눠진다고나 할까. 물론 각 회사나 그 내의 팀마다 맡은 업무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수치로만 단순하게 판단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일에 대한 결과물로써 받아낸 수치의 높고 낮음에 따라 일어나는 다양한 변화들은 높은 직급의 사람들조차 혼란스럽게 만들기 일쑤였다.


그 아래에서 나의 2년은 숨 가쁘게 지나갔다. 잊고 있었던 '내가 상사가 된다면?'이라는 물음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도 이때즘이었던 것 같다. 당시의 나는 되고 싶은 상사에 대한 기준을 제법 뚜렷하게 세워놓은 편이었다. 그간 회사생활을 하며 느껴왔던 것들을 정리하고 리더십과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좋은 상사가 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쌓여갔다. 상사가 되기 위한 나만의 준비과정들이 활짝 꽃 피울 날을 기다리며. 다만, 나의 곁에 있는 동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지 몰라 확신까지 들진 않았다. 그래서 더 자주 물었던 것 같다.


나는 어떤 사람 인가요?


다소 추상적인 질문인만큼, 물었던 사람마다 각양각색의 대답을 했다. 돌이켜보면 이때 내 안에는 얄팍한 마음이 가득했던 것 같다. 전부는 아니었지만, 나 스스로 그려왔던 나의 모습과 동료들이 말하는 이질적인 표현들과의 거리 때문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궁금해서 묻고 듣지 않았으니 참 부끄러운 일이다. 그들이 보았고 말했던 모든 표현들은 곧 나의 일부였는데.


평일에는 가족보다 팀 동료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만큼 서로를 오래 들여다보게 되고 자연스레 자잘한 습관들도 하나씩 알아가게 된다. 함께 있던 시간만큼 정 또한 비례하게 쌓이는 것인지, 상처를 받아도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애증의 관계가 되어간다고나 할까. 아무튼 서로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느꼈던 나도 내가 맞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보다도 더한 '나 전문가'가 되어버린 그들이기에. 뚜렷하다고 생각했던 상사에 대한 기준은 나의 단면이었음을 받아들이고, 동료들과의 꾸준한 대화를 통해 수정 및 보완해 나갔다.


한 번은 같은 팀 선임과 외부 출장을 나갔다가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상사가 된다면'에 대한 주제로 의견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그 날, 우리가 사용한 단어는 달랐지만 의미는 같았다. 나는 회사에서 본받고 싶은 사람, 선임은 롤모델이 없다고 입 모아 이야기했다. 선임과의 대화를 통해 이런 생각을 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치열한 전쟁터 같은 이 곳에서 사치일 수 있지만, 믿고 따를 수 있는 상사가 있다면 두려움 속에서도 한 걸음씩 차례차례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한 가지 대안으로 상사들에게 배워서는 안 될 것들에 대해 나열해보았다. 모아지는 의견들로 배우고 싶은 것들을 대신하면 어떨까 했지만 왠지 모르게 비참한 감정이 들었다.


선임과의 대화 이후로 더욱 확고해졌다. 나는 원만한 합의점을 찾아야 했다. 내가 되고 싶은 상사와 후배들이 원하는 나 사이에서. 어느 한 곳으로도 치우침 없는, 조금 기울 순 있지만 원래의 자리를 기억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중간 즈음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오해와 편견 없이 나와 상대방 모두를 이해하는 게, 회사라는 특수한 환경을 고려하면 쉽진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회사에 모인 사람들은 결국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게 되니까. 하지만 어쩌겠는가. 생애 첫 새콤달콤을 먹었을 때의 쾌감처럼, 상사에 대한 가치관을 차근차근 세워나가며 행복해가는 나를.  


얼핏 '중간 즈음'에 대한 감을 잡아가고 있을 때 팀에 두 명의 후배가 생겼다.


아직 회사 내에서 뚜렷한 가치를 세우지 못한 이들은, 과거 신입이었던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을까? 회사는 힘이 들고 어려운 곳이라지만 지금의 상사를 만나 참 다행이라는 마음을 갖고 싶었던 나처럼. 두 손을 불끈 쥐며 다짐했다. 나에게 조금의 부끄럼 없이 떳떳한, 후배들에게 있어 한 줄기 희망 같은 상사가 되어보자고.


팀이 결성되고 난 직후 다양한 시도를 했다. 생각해보자.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 온 후배 2명과 나. 우리 세 사람이 업무적으로 단 번에 시너지를 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모든 과정에는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승당입실이라는, 일에는 그 차례가 있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의 뜻처럼.  


먼저, 나는 팀원 사이의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만약 팀 내에서 회의를 한다면, 개인의 역할은 하나의 사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모두 펼쳐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좋은지, 아닌지 또는 우리의 방향과 맞는지, 다른지는 그 이후의 문제이다. 본질, 즉 회의를 하는 궁극적인 이유 안에서 서로의 방대한 견해 속에서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회의를 할 수 있을까? 나는 서로 간의 '신뢰'가 쌓이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믿고, 상대방을 믿을 수 있을 때 우리는 가장 나 다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비록 그 의견이 나의 관점에 국한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신뢰를 쌓기 위해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선행한 것이 '나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적어서 발표하는 활동이었다. 과거의 나는 어떻게 자라 왔고, 현재 나는 이렇게 지내고 있으며, 앞으로의 나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까지. 한 명의 발표가 끝나면 '존중합니다'라는 말로써 다른 피드백을 대신했다. 세명의 발표가 모두 끝나자 신기하게도 첫 만남 때 가졌던 선입견이 줄어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또, 궁금했다. 나와는 다른, 팀원들의 반짝이는 생각들이. 이후로도 매 주 한 번씩 자신의 강점 및 약점 발표하기, 팀에서 지켜주었으면 하는 약속 정하기 등 이전에 회사에서 하지 않았던 팀 내 활동을 비공식적으로 이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능동적으로 변해가는 팀원들을 바라보며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고, 잊지 못할 즐거운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이야기가 팀 구성원들과의 관계 증진에 쏠린 것만같아 우려가 된다. 맞다. 관계중심적으로 팀을 이끌어가는 건 옳지 않을 수 있다. 누군가 나에게 팀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면, 나 또한 성과나 실적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무리 과정이 좋았다 하더라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비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직접 증명한 셈이다. 생각해보자. 팀 구성원들 간에 신뢰를 바탕으로 모두가 동의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면 과정과 결과 모두 아름답지 않을까.


급하다는 이유로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충분히 고민할 시간을 주는 것. 실수해도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 사적으로 친한 사람들만 편애하지 않고 공정하게 대하는 것.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해서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줄 것 등. 적은 내용 이 외에도 상사인 내가 지켜나가고 싶은 가치들은 많았다. 혹시, 상사이거나 상사를 준비하고 있다면 한 번쯤 생각해보자. 나는 후배들에게 어떤 상사인지, 후배들은 어떤 상사를 원하고 있는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나는 기회주의자가 되어버릴 것 같은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용을 조금만 바꿔보자. 음- 이건 어떨까.


사람이 좋은 자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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