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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Jan 29. 2022

사람의 인품은 정수리에서 나온다

  서른다섯의 날이 하루씩 늘어가고 있다. 달력을 보니 2월도 곧 다가올 참이다. 나이가 삼십대로 접어들며 신체에 여러 변화가 찾아왔다. 적게 먹어도 살이 찐다거나, 조금만 움직여도 금세 피로해진다거나 하는 일들은 이제 익숙해져 타협점을 어느 정도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겪을수록 충격적인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머리카락이 빠지는 일이다. 분명 세월 때문일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다가도, 유독 비어 가는 정수리를 매만질 때면 한숨이 터져 나오곤 한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는 아침마다 청소를 한다. 주로 인턴 근무를 하는 선생님들이 청소를 도맡아 해 주시고,  나는 방역용 물티슈로 테이블이나 손잡이를 닦는 정도로 청소에 참여한다. 인턴 선생님들의 움직임을 보면 매사가 '열심히'다. 일을 할 때에도 그렇지만 특히 청소할 때면 그들의 마음가짐이 쉬이 드러난다. 한 톨의 먼지라도 기생하는 걸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쓸고, 닦고, 비운다. 


  나도 지금의 직장에서 인턴 근무를 했었다. 그때의 나는 대부분의 아침에 혼자 청소했다. 넓은 사무실 곳곳을 쓸고, 닦고, 비우다 보면 30분이 훌쩍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청소를 끝마치고 허리를 펴면,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 것만큼 시원했다. 나는 당시 청소를 도와주지 않는 직원 선생님들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자리 정도를 청소하고는 있었지만, 그보다 사무실은 넓고, 신경 써야 할 구석은 많았다. 매일 아침이면 겉으로는 '혼자서도 괜찮아요'로 보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속으로는 '조금만 도와주어도 훨씬 수월할 텐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직원이 된 나는 과거 직원 선생님들이 소화했을 업무량을 체감하고 있다. 나는 요즘 주어진 일을 해내기 위해 손바닥과 발바닥에서 땀을 쏟아낸다. 업무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시작이지만, 이러한 구분을 상기할 겨를조차 없다. 사무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생각해 두었던 일들을 하나둘씩 처리한다. '청소를 해야지' 하는, 그러니까 '방역용 물티슈로 사무실을 닦아야 한다'는 생각은 미뤄두고 코앞에 닥친 일에 매진한다. 자연스레 이따금씩 내 앞을 오가며 분주하게 청소하는 인턴 선생님들을 향한 죄송스러운 감정이 마음을 누른다.


  며칠 전이었던가. 나는 그날 오랜만에 빗자루를 들었다. 인턴 선생님들이 평소보다 늦게 출근하기도 했고, 직원 선생님들은 코로나 백신 접종 등으로 출근하지 않는 날이기도 했다. 직장 구석구석을 쓸고, 닦으며 혼자 청소한다고 불만을 가졌던 인턴 시절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쩌면 지금의 인턴 선생님들도 나와 같은 불만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더 적극적으로 청소하지 않는 나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오전 9시가 되기 전까지 청소를 끝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보채던 나는, 촌각을 다투는 업무가 아니고서는 함께 땀 흘리며 청소해야겠다는, 하고 싶다는 마음을, 굽은 허리를 곱게 펴며 확인했다. 

  

  문득, 사람의 인품은 정수리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는 자리에서, 반가운 마음으로 건네는 인사에서, 함께 일하며 숙이는 자세에서 정수리는 빛이 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아는 것이 많고 속이 찬 사람일수록 겸손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내가 아직 가을을 맞기에는 부족한 성품이지만, 흔쾌히 정수리를 내보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경력이 쌓여갈수록 고개가 뻣뻣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부드럽게 굽을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어제도 분주했다. 갖가지 일을 처리하느라 창밖에서 다가오는, 윤슬처럼 찰랑이는 햇빛을 마주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파지를 비우거나, 빈 박스를 치우거나, 방역용 물티슈로 곳곳을 닦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러한 일들을 몰라서 안 하는 사람은 분명 없을 것이다. 다만 나처럼 시간에 쫓기며 자신의 일을 처리하느라 여유가 없기 때문일 테다. 나는 기꺼이 익어가는 벼가 되기로 했다. 스스로 의식하지 않으면 여전히 굽히기를 어려워하지만, 비어 가는 정수리를 자랑스럽게 보이는 그런 사람이 되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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