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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Mar 13. 2022

꿈은 나에게 그렇다면 자유롭게 살아보라고 말해주었다

  인생은 켜켜이 쌓인 계단을 하나씩 오르는 일이다. 계단의 끝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디디고 있는 계단과 바로 위, 아래의 계단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해야 한다. 한 걸음 내딛으며 올라설 것인지, 아니면 뒷걸음치며 내려설 것인지. 돌이켜보면, 가만히 서서 삶의 과제를 해결했던 적은 없다. 움직였다. 멈추어 있었는데 해결되었다고 믿었던 과제는 그저 선택을 잠시 미루며 외면했을 뿐, 기어코 한 계단을 오르거나 내려가는 때에 미루었던 만큼의 더 큰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우리는 '올라설까?' 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내딛으려던 걸음을 다시 되돌리는 까닭은 올라선 곳에서 마주할 낯선 풍경이 두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생각해 보고는 한다. 낯선 경험에 거부감이 적고 도전적인 사람이라면 흔쾌히 시도할지 모르겠으나, 예상되는 어려움을 끊임없이 생각하며 일을 계획하는 회피적인 나에게 새로운 일은 큰 결심을 필요로 한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첫 직장에 입사하던 때를 생각하면 무모하기 그지없었다. 회사가 어떤 곳인지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지원했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친구처럼 이 직장에 지원해보는 건 어떨지 물어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도 묻지 않았다. 콤플렉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은 내가 스스로 고민하고 시도해보기 전에 나의 일을 해결해주었다. 내가 해야 할 대부분의 선택은 부모님의 몫이었다. 나는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는 꼭두각시에 가까웠다. 스무 살이 되고 대학에 들어가며 내가 경험하는 일들은 부모님의 예측을 줄곧 벗어났다. 대학 생활은 부모님의 경험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의 장래를 두고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이 두려웠고, 실패할까 겁을 내던 사이에 그 무엇도 원하는 만큼 경험하지 못한 채 사회에 내던져졌다. 


  대학 생활을 지나며 '스스로 콤플렉스'에 대해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 내 선택에 대해 의견을 주거나 조언을 하면 그것이 마치 나 자신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내 삶의 중요한 과제를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고, 해결하는 것만이 나로서 인정받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선택한 일을 부모님께 들려드리면 두 분의 입장에서 말씀하실 게 분명했고, 주변 친구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였으니, 고집대로 선택하고 해결해보려 하는 게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디서든 '부모님의 그늘'을 들키고 싶지 않아 했다. 어떤 일에서든 서투른 모습으로 보이기 싫어했다. 그 일이 처음일지라도 능숙한 사람처럼 보이길 원했다. 이러한 나에게 가까운 사이를 만드는 건 고사하고, 사람들에게 어렵고 힘들다고 털어놓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9년이라는 시간 동안 네 번의 직장을 경험하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최악이라고 여겨지는 순간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왔다. 대학원 졸업을 앞둔 날이었다. 당시의 나는 상담 수련을 하고, 논문을 쓰고, 조교를 하던 시기였다. 나의 내면에는 조명되지 못한 경험과 그로 인한 감정의 덩어리가 만든 어둑한 동굴이 있었다. 스스로 해내기에도 바쁘고 부족한 나에게 나를 돌보는 일은 언제나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동굴을 발견하고, 눈길을 주며, 돌보고 있다고 생각하던 때에도 짓눌린 상처를 외면했다. '스스로'에 열중한 나머지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대학원 사람들과 만났던 날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2년 만에 약속을 잡았는데, 모처럼 '사람들'을 만나는 날이라 기대를 했다. 치킨집에서 만나 식사를 하고, 카페에 둘러앉아 얘기를 그득히 나누었다. 그들은 북악 스카이웨이에 들렀다 집에 갈 거라고 했다. 밤 드라이브를 하고 싶다는 의견이 모아진 듯했다. 나는 집으로 가서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있다고 했다. 여러 차례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찍 집으로 향했다.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던 길이었다. 우울이 다가왔다.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며 제대로 어울리지 못한 그들과의 시간과 다녀와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았던 드라이브를 거절하고 돌아가는 길은 외롭고 쓸쓸했다. 


  터질 것처럼 끓어오르던 우울은 온몸을 두드렸다. 눈물이 흘렀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도 일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익숙한 길이었지만, 이상하리만치 낯설게 느껴졌다. 곁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딴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나에게 남겨진 선택은 죽음밖에 없을 거란 생각마저 들었다. 만약, 단숨에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았더라면 그러한 방법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당시 나에게는 새로 가까워진 친구가 있었고, 그에게 꾸준히 연락이 오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가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는 아주 오랜 시간, 새벽을 넘어 다시 아침에 가까워지는 시간까지 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었다. 그가 되묻는, 나를 위한 질문과 반응들에 기울어가던 삶의 의지를 다시 붙잡을 수 있었다.


  나도 잘 모르는, 나조차 외면했던 나의 마음을 알아주기 위해 노력하던 한 사람의 마음이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쌓인 숫눈처럼 맑은 한 사람의 목소리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늘진 마음에 볕이 되어 내렸다. 나는 그 볕을 쬐며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고 받아들이긴 어려웠으나, 나도 어쩌면 소중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기엔 충분했다.



  얼마 전, 꿈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꿈은 사람의 무의식을 반영하며, 깨어난 즉시 꿈을 기록하여 그 의미를 해석해보는 것이 잠재된 욕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였다. 하루는 쓸 만한 글감이 있는지 메모장을 찾아보다 기억에 없는 꿈의 기록을 발견했다. 자살에 대한 내용이었다. 


  자살하는 꿈을 꿨다. 전 직장에서의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다. 단 한 번에, 큰 고통 없이 죽기를 바라며 고층에서 바닥으로 몸을 투신했다. 나는 내가 죽은 뒤에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볼 수 있었다. 충격 그 자체였다. 특히, 소중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보니 자살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내가 죽은 이후 남아있는 사람들의 시간은 멈춘 듯했다. 나의 흔적은 삶 곳곳에 남아있었고, 특히 집안에 모여 실의에 빠진 가족들의 모습을 보니 죄책감이 들었다. 
희한하게도 투신하기 전 장면이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앞 상황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든 나는 뛰어내렸다. 하지만, 죽은 나를 추모하며 괴로워하던 사람들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한 번의 경험은 다시 되돌아온 투신의 기회에서 나를 뛰어내리지 않게 했다.


  이 꿈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반복되는 현실과 그로 인한 괴로움이 크다는 것에 집중하였는데 친구는 다른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자유로움을 원하는 나의 욕구가 꿈에서 다른 식으로 표현된 건 아닐까 하고 얘기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자유롭고 싶었다. 그러나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그만두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업무나 관계는 개선될 여지가 없었으니,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자유롭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나는 자율성을 되찾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나의 견해는 주로 묵살되곤 했다. 피라미드 같은 회사의 구조에서 보았을 때, 나의 존재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하나의 기계처럼 움직이는 조직에서 작은 톱니조차 되지 못하는 나는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마음에 없는 일을 위해 애쓰는 나 자신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나에게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는 활동이 있다면 그건 내 의지대로 선택하고 기꺼이 책임질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지난주에 혼자 다녀왔던 등산, 은은한 스탠드 불에 의지한 채 눌러 담는 글이 지금 나에게 떠오르는 자율적인 일이다. 가빠오는 숨과 후들거리는 다리가 나에게 살아있음을, 마음으로 풀어내는 진실한 글이 살아갈 수 있음을 나에게 알려준다.  

  

  꿈을 되돌아보며 또한 깨달은 게 있다면 그건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이었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내어 보이지 못했지만, 나에게 꾸준하고도 순수한 관심을 기울이는 몇몇에게 내면의 동굴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조심스러웠던 만큼 그들은 나의 말을 정성스럽게 들어주었고, 나는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몇 명의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그들의 존재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 중에 가장 단단한 부분을 차지한다. 진정한 삶이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물론 맞겠지만, 함께 할 누군가가 없다면 그 삶은 축복받았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그 정도가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우리를 알아봐 주는 '한 사람' 없이는 삶을 기꺼이 살아가기 어렵다. 


  죽음에 대한 꿈이 나에게 자유로움과 관계의 소중함에 대해 들려주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꿈이 들려준 메시지를 잘 가꾸고 돌보는 일일 것이다. '스스로 콤플렉스'에 갇혀 나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진실한 관심을 기울이기 어려워하던 나는 서서히 희미해지고 있다. 스스로에 집착하며 의견이나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더 이상 외면하지 않는다. 선택하는 순간은, 그 순간이 가볍고 무겁고를 떠나 여전히 어렵지만, 이제는 즐길 줄 아는 여유가 조금 생긴 듯하다. 새롭게 시도하는 일이, 어렵사리 마친 오늘의 글이 그 증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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