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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Apr 02. 2022

만약, 직장에서 반복되는 어려움이 있다면

팀 회의를 하는 자리였다. 나의 동료는 우리 부서에 과중된 일로 인한 힘겨움을 토로했다. 비단 그날만 얘기했던 건 아니다. 나의 전임자가 근무할 때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계속된 얘기였다. 하지만 그때보다 일이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날 상황에 처했으므로 나와 동료는 몇 년 전부터 힘들다는 이야기를 직, 간접적으로 해 왔다. 동료의 얘기를 들은 한 관리자는 회사의 어려운 사정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 부서뿐만 아니라 다른 부서들도 열악한 상황이며 더 시급하다고 여겨지는 부서들도 있기에 인력 배치나 업무 조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지난 3년 동안 이곳에서 일을 했다.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 우리 부서에 중대한 일이 생겨 그 일을 처리하는 데 온 직원이 매달렸다. 나는 해야 하는 내 몫의 일을 떠안은 채 소외되었고, 남아 있는 문서 자료와 인수인계서를 오가며 일을 처리하기 위해 애를 썼다. 부서에 생긴 일이 워낙 크고 심각했기에 당시 내가 겪던 고충을 꺼낼 곳은 찾기 어려웠다. 그렇게 입사하고 2주가 지난 어느 날, 퇴근을 하며 핸드폰에 '나의 힘듦을 나눌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라는 메모를 남기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나의 힘듦을 같은 부서 사람들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언젠가는 그들이 알아줄 거라 기대했다. 수습 생활부터 시작하여 언 3년 함께 지내온 사람들이었기에, 중대한 일이 해결되면 뒤돌아서서 나의 힘듦에 관심을 가져주고, 해결까지는 어려울지라도 가능한 수준에서 도움을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비슷한 수준의 일을 수행하고 있었고, 그 일은 전적으로 나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으며, 오히려 가끔은 욕심껏 일을 해야 속이 시원한 직원으로 불리기도 했다. 내가 원하던 직장생활은 이게 아니었다. 퇴근 이후의 삶을 누리는 것이 내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였다. 그러나 매일을 골골대며 생활하는, 퇴근 이후나 주말이 전혀 기대되지 않는 삶에서 나는 무기력했고, 나의 어려움을 나의 몫으로 여기는 것 같은 부서 사람들로 인해 외로웠다. 


나는 무기력감과 외로움을 느끼는 최근의 생활이 내가 자초한 결과임을 깨달았다. 지난 3년을 돌이켜보면 나에게는 업무 조정을 하거나 나의 어려움을 토로할 있는 숱한 기회가 있었다. 어떨 때는 나의 업무 가지를 공론화하여 업무를 분담하기 위해 노력해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일을 누군가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생길 있는 갈등으로 지레 겁을 먹었다. 내가 맡고 있는 일이 누군가에게 넘어간다는 건, 결국 사람에게 그만큼의 부담을 주는 꼴이기 때문이었다. 하고 있는 일이 많고 적음을 떠나 어느 갑자기 새로운 일을 맡아 수행하라는 상사의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좋을 사람은 적을 것이다. 


또한, 일하는 게 어렵지는 않은지 묻는 때도 많았지만, 부서 사람들의 어려움이 보다 시급하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어렵게 느껴지는 일들로 생긴 내적 갈등은 끝내 외로움으로 남아, 부서 사람들과 어울리다가도 그들에게 결코 공감받지 못할 한 구석이 내게 있다는 걸 되새기며 지냈다. 그렇게 나는 주변 상황이나 관계를 이래저래 생각하며 '나'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대상을 객관화하기 위해 씨름할 때, 나에게 지극히 해로운 결말에 도달한다는 것을 체험했다. 돌아보면 부서 사람들 개개인이 겪는 어려움도, 내가 겪는 어려움도 모두 옳았다. 나는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한편으로 나의 어려움을 알아주고, 알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했다.


만약 내가 묵묵하게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면, 일과 관계 모두에서 필사적이었던 나의 노력을 알아줄 거란 기대를 버려야 한다. 나는 말없이 일을 해내며 이룬 성취에 스스로 만족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 때문에 내가 맡고 있는 일의 어려움이나 부당함을 더욱 크게 알렸어야 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은 결국 가만히 앉아 개선되기를 바라는 내가 만들고, 키운 셈이었다. 나는 나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았으면서 부서 사람들이 알아주거나, 도와주기 위해 나설 거라는 기대를 가진 탓에 마음 한편에서 그들을 멀리하려 했던 시간들에 대한 미안함을 이따금 떠올리며 살아가고 있다.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한 전 직장의 이야기지만, 나는 우리 부서의 어려움을 계속해서 알려야 했다고 생각한다. 업무량은 많지만, 사람이 적은 이 상황을 지속해서, 더 높은 직급의 사람들이 충분히 알 때까지 말해야 했다고 또한 생각한다. 그래야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추후 인력 배치나 업무 조정을 할 때 우리 부서의 상황을 고려하지, 지원이나 조정이 필요한 만큼 나서지 않고 이해해 주거나 개선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어려움은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나의 경우처럼 말이다. 물론 회사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해야 하는 것도 필요했겠지만, 그렇다고 나의 건강을 녹여내며까지 무리하게 일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의 힘듦을, 우리 부서의 어려움을 실컷 이야기해 보고, 빠르게 퇴사하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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