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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Apr 03. 2022

주말의 밤, 이 순간을 영원처럼

주말이 끝나갈 때면, 나는 또다시 뛰는 가슴을 체감한다. 월요일 아침의 모습이 침투적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지난주, 지지난주, 그러니까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펼쳐지는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쫓기는 신세였다. 해야 하는 일이 많을 때도, 적을 때도 늘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사람처럼 바삐 움직였다. 동료가 주말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해 물어도 그를 보며 대답할 여유는 없다.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을 하거나, 그러한 일은 없는지 찾거나, 지난 일에서 잘못한 부분은 없는지 확인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에서의 조급함은 주로 어제였던 일요일 밤부터 시작한다. 

특히, 일요일 밤 9시가 넘어가면 나의 마음은 동공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가만히 있질 못한다. 다가오는 월요일을 시계로 계속 확인하며 마음의 불안을 키운다. 이럴 때는 일은커녕 책 속의 한 문단도 제대로 읽지 못한다. 영화를 켜도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여 한번씩 일시정지를 누른다. 가만히 앉아 무언가에 집중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일요일의 내가 내일을 걱정한다고 해서 월요일에 대한 더 나은 대안이 떠오를 가능성은 적다. 내가 하는 걱정의 대부분은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내일 해야 하는 일들을 잘 해낼 수 있을까?', '미처 생각하지 못한, 급히 해야 하는 일들이 있으면 어떡하지?', '하던 일에서 예상치 못한 실수가 발견되는 건 아닐까?'와 같은 생각들은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내일이 되어보거나, 앞으로 일을 계속하면서 겪어나가야 할 과정에 가깝다. 내가 하던 일에서 실수가 발견될 수도 있고, 과거에 했던 일에서 또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며, 나는 내일 해야 하는 일을 잘 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 이처럼 그런지, 아닌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시간을 허투루 보내기에는 남아 있는 이 주말이 언제부턴가 아쉽고, 아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불안의 노예가 되어 아무것도 못할 바에야 이 시간에 차라리 좋아하는 활동을 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억지로라도 해보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으며, 최근 작은 결실을 맺었다. 나는 조금 전 베란다로 나왔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지만 겨울에 비할 바는 아니다. 열린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그 공기를 마스크 없이 쐬고 있으면 바닷가에 놀러 온 것처럼 설레는 마음이 샘솟는다. 답답한 사무실, KF94 마크스를 끼고 있으니 더욱 폐쇄적으로 느껴지는 그곳과는 달리 호흡이 자유롭다.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는 도심에 불과하지만 나는 이따금 눈을 감으며 상상한다. 봄마다 갔던 제주도에서의 온도가 피부로 느껴진다. 그날의 여행을 마치고 산책을 나와 어디에든 털썩 앉으면 명당이 되는, 그곳에서의 마음과 지금 내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귀에서는 나의 인생 곡인 Adam Levine의 "Go Now"가 흘러나온다. 영화 "싱스트리트"의 수록곡인 이 음악은 직장생활로 힘들던 당시 나에게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네 꿈을 좇으라'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은 가사는 비록 당장의 퇴사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퇴사하고 싶은 네 마음을 충분히 알 것 같아'의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영화를 볼 때 이 곡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오열을 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크게 울었던 적은 성인이 된 이후로 처음이었던 것 같다.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며 들썩거렸고, 소리 없는 울음은 영화관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가끔 기운이 없는 나를 위로하고 싶을 때 이 음악을 듣는다. '그때보다 더한 어려움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오히려 지금의 상황이 나의 최악이 아님을 다시금 상기하게 한다. '에이, 아무렴 어때. 이렇게 좋은 음악을 듣고 있는데' 하는 생각에 도달하면 나는 이러쿵저러쿵하는 내일에 대한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흥겨움에 못 이겨 발가락을 심하게 까딱거린다.  


입으로는 매일우유에서 만든 "커피 속에 모카치노"가 연신 들어오고 있다. 이 커피우유를 언제부터 좋아하게 되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직장생활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마시고 있었다는 것은 선명하게 기억한다. 2+1 행사로 동료들과 나눠 마시기 좋아서 시작한 커피우유에 대한 사랑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요즘에는 매일 아침마다 반 개씩 마시고 있다. 나머지 반은 퇴근 이후 고생한 나를 위해 선물한다. 단지 맛이 좋아서도 있지만, 추억을 함께 마시는 기분이 든다.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심지어 끼니를 거르는 때가 있더라도 커피우유는 거르지 않았다. 이러한 시간들이 쌓여 이 커피우유는 나에게 실패할 가능성이 적은 행복의 주문으로 여겨지고 있다. 


좋아하는 음악, 공간, 음료처럼,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나에게 쉼터가 된다. 언제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취약하다고 느끼는 일요일 밤에도 나는 흔쾌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이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다가올 월요일을 걱정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좋아하는 일을 한다.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던 불안감은 사라지고,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즐거움이 내면을 환하게 비춘다.

시간이 흐를수록 즐거움이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나는 이 시간이 즐겁다. 발가락은 여전히 세차게 꿈틀거리고 있다. '일요일 밤이 기다려지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이를 정도로 나는 이 순간이 소중하다. 


만약, 나처럼 다가오는 내일을 걱정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좋아하는 일을 해 보는 건 어떨까. 단 5분이라도 좋다. 그 시간을 영원처럼 느낄 수 있다면 일종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일이 오더라도, 그 내일에 펼쳐질 일들이 내 예상처럼 어려움의 반복일지라도, 지금의 나는 자유롭다. 나는 오직 이 순간의 나를 생각하고 느낀다. 나는 분명 머지않아 커피우유를 다 마시고, 음악을 끈 뒤에 거실로 들어가겠지만, 그렇게 내일은 다가오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즐거웠던 이 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충분히 즐거웠기에, 만족스러운 얼굴로 이제 노트북을 꺼볼까 한다. 


안녕, 이 순간.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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