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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Jun 13. 2022

마음을 내어 보일 수 있는 시간이 가끔 찾아온다면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는 도서관이 있다. 어느 대학이든 도서관이 있는 게 당연하겠지만, 이곳은 조금 특별하다. 나무가 우거진 야외 계단을 한 칸씩 오르다 5층 높이에 다다르면 도서관 옥상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에는 목재로 만든 일체형 탁자가 있다. 한눈에 보아도 세월을 오래 머금은 듯 부식된 곳이 흔하지만, 그마저도 운치 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경치 때문이다. 도서관 아래로 보이는 학교 정문과 내부, 학교를 둘러싼 북한산 절경이 자연 그 어딘가에 나를 데려다 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는 한다.


나는 그곳에서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했다. 우리는 '언제' 혹은 '무엇을'에 대해 나누기 전에 '도서관 옥상'을 먼저 꺼냈다. 친구는 그곳을 '뷰 맛집'이라고 표현했다. 나 또한 그곳에 앉아 시간을 보냈던 기억을 떠올려보니 상상만으로도 포만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날의 오후였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던 내가 앞서 마주하게 된 것은 비였다. 탁자에 설치된 파라솔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며 '투둑투둑'하는 소리를 냈다. 그에게 우산이 있는지 물어보니 가져오지 않았다고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도서관까지는 걸음을 꽤나 옮겨야 했으므로 비를 맞게 될 그가 걱정되면서도, 버스정류장 앞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리고 있자니 부담스러워 할 수 있는 그의 마음을 생각했다.


'만약 나였다면?' 하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누군가 나를 위해, 그 누군가가 아무리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우산을 들고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불편감을 느낄 것 같았다. 상황이 어떠하든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조바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우산'이라는 신세를 졌으니 그에게 더욱 맞추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될 듯싶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가 비를 조금 맞고 오더라도, 비에 젖은 그의 모습을 보는 일로 당장은 괴로울지라도, 탁자에 앉아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서로의 마음을 이내 편하게 할 거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가 도착했다. 예상대로 비를 맞은 모습이었으나 그날의 관계를 공정하게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나는 탁자에 앉는 그를 보며 "파라솔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처럼 내 마음은 소란스러운데, 저기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 북한산은 그저 평화로워 보이네" 라며 인사말을 건넸다. 그는 "무엇 때문에 마음이 소란스러워?"라고 되물었고,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날 외로움이라는 주제에 대해 나누었다. 저마다 이야기한 외로움은 달랐지만, 순수한 관심을 기울이는 한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같았다.


나는 최근에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다'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외로움에 대해 메모한 적이 있다. 물론, 이러한 메모를 한 이유도 당시의 내가 외로움을 크게 느꼈기 때문이다. 주말 동안 집에 있다 보면 스무 마디 말도 채 안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한다. 회사에서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이나 전공 공부를 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들어 '친구에게 온 연락은 없을까?' 하며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게 되는 까닭은 분명 외로움 때문이다. 특히, 여유로운 시간이 찾아오는 주말이 되면 나의 외로움은 차다 못해 넘쳐흐르기 시작한다. 일상이 다소 마비가 될 정도로 주말의 나는 외로움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지인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는 데에는 '경계'에 대한 두려움 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 사람과 가까워지기 위해, 나에게는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사람이 보이는 말과 행동은 그의 일부이지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은 되지 못한다. 또한, 말과 행동은 그의 생각이나 느낌, 가치관을 전달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기에 한 사람의 의도를 온전하게 전달하지 못할 때가 많다. 친밀한 관계에서 생기는 오해가 서로를 더욱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데, 지금 나에게 보이는 '말' 혹은 '행동'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전체에 초점을 두고 상황을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사람을 알아가는 데에 신중한 관점을 유지하는 나에게 사람을 사귄다는 건 늘 어렵게 느껴진다.


그중에서도 특히 어려운 점을 꼽자면 경계를 설정하는 일이다. 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마음을 쉽게 열 수 있도록 옅은 선을 그어두지만, 내가 정작 사람들을 향할 때에는 굵은 선을 그으며 마음을 잘 내어주지 않는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관계의 주도권을 상대방에게 내어주고, 그의 힘에 눌려 나의 소리를 내지 못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러한 내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그간 선택했던 쉽고 좋은 방법은 그에게 최대한 맞추는 것이었다. 친밀하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관계에서 나는 나만의 목소리를 잃었다. 그래서 나는 친한 사람들을 떠올리다가도, 연락할까 싶다가도 이내 포기하고는 한다. 그들과 연락하는 일이 나를 더욱 외롭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느끼는 외로움은 비단 오늘의 외로움이 아니라 어제도, 그제도, 누군가에, 어딘가에 진실로 속하지 못했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다. 이 외로움은 단순히 오늘 시작된 바람이 아니라 어제도, 그제도 꾸준히 불어왔던 '나'가 아닌 시간의 흔적이다. 당장에라도 거리로 나가 소리라고 지르고 싶은 이 마음은 '나'가 나로서 관계 맺지 못했고,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소란이다.  


나조차 마음 열기는 이렇게 어려워하는데, 나에게 마음을 여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 나조차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데, 나에게 순수한 관심을 기울이는, 조건 없는 사랑을 주고자 하는 누군가는 만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하지만,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한 시간 남짓의 대화였지만, 나는 나의 마음과 만날 수 있었다. 나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어떠한 경계도 세우지 않았고, 그에게 사랑받고 싶다거나, 급하게 해야 하는 일 따위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와의 대화에 몰입했으며, 오히려 혼자 있을 때보다 자유롭다고 느꼈다.


외롭지 않았다. '순수한 관심을 기울이는 한 사람'을 찾는 일은 어렵겠지만, '마음을 순수하게 내어 보일 수 있는 누군가'와의 시간이 복잡한 내 삶에 한 번씩 찾아온다면 그래도 살아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되자 약속이라도 한 듯 날은 화창하게 개었다. 나는 그에게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파라솔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처럼 마음이 소란스러웠는데, 지금 내 마음처럼 세상이 고요해졌어"라고 말했다. 그는 "비 온 뒤에 하늘이 더욱 맑게 개는 것처럼..."이라고 대답했고, 나는 "더 단단하게 굳는 땅처럼..."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친구를 배웅하고 나는 자리에 다시 앉아 세상을 바라보았다. 평화로웠다. 하늘도, 구름도, 북한산도, 학교도,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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