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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Jun 19. 2022

'해야 한다'라고 스스로를 다그치기 전에

작년 7월, 상담 자격증 필기시험 발표가 있던 날이었다. 나는 당시 친구들과 스터디를 하고 있었다. 매주 번씩 만나 서로 공부한 분량을 확인하고, 안부를 물으며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자격증 준비만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대학원에서 조교 업무와 논문을 쓰고 있었고, 새로운 출간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상담 수련과 프리랜서로서 몇 가지 일을 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맡아서 하다 보니 자연스레 마감이 다가오는 일부터 급하게 처리했다. 이중 시험 준비는 상대적으로 시급하지 않았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떨어지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만약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분명,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베란다에 앉아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본다든지, 동영상 콘텐츠를 끊임없이 본다든지, 뚜렷한 이유 없이 밖을 걷는다든지, 일어나고 싶지 않다며 침대에 계속 누워있는다든지 하던 시간들은 낭비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들을 면면이 살펴보면 내면에 그득히 쌓인 우울감과 씨름하던 순간들이었다는 것을 이내 깨닫게 된다. 정확하게는 의욕 저하가 찾아왔다. 우울증의 증상이기도 한 의욕 저하는 일상을 서서히 잠식해갔다. 해야 할 일들은 많았고, '해야 한다'는 생각은 컸지만, 몸은 뜻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켜진 노트북을 바라보며 하루를 그냥 보내기도 했고, 스터디 카페 창밖으로 보이는 고깃집 사람들의 환한 웃음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쉬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다그쳐도 소용없었다. 나는 그렇게 의욕 저하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었다. 


한 시간을 집중하기 위해서는 마음에서 끓어오르는 감정과 숱한 싸움을 해야 했고, 스터디 카페에 가기까지는 문턱을 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수십 번 깨야 했다. 시험 전날까지도 공부에 전념하기보다는 울렁거리는 마음을 억누르기에 바빴으니 어쩌면 예견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 단 몇 개 차이로 떨어졌다는 사실이 기적이라고나 할까. 이 당시에 나를 괴롭히던 감정은 역시 외로움이었다. 나는 대체로 베란다에 앉아 대부분의 일을 처리하였는데, 그때의 내가 주로 상상하던 이미지는 밤바다였다. 가 본 적 없는 어느 밤바다를 상상하며 그곳의 파도소리와 바닷바람, 모래사장과 달빛을 마음으로 세세하게 채워보고는 했다. 나는 그곳에 늘 혼자 있었다. 함께 하고 싶은,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를 떠올릴 수 없었다. 누가 나와 이러한 야심한 밤에 바다를 보러 가줄까. 누가 "바다 보러 갈래?"라는 내 말에 흔쾌히 알겠다고 대답할까. 이와 같은 현실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내 마음을 알아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거야' 하는 생각이 일상을 지배하던 시기였으므로 나는 상상에서조차 혼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다시 자격증 시험을 앞두고 있다. 올해의 나는 좀 나아졌을까. 아닌 것 같다. 여전히 해야 할 일은 많고, '해야 한다'는 생각은 크지만, 몸은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어떻게든 시험을 봐야 하기 때문에 나는 나의 문제를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글을 쓰고, 명상을 하며 나의 상태를 보다 객관적으로 판단하고자 했다. 나는 어쩌면 이 시험이 나에게 중요하고, 다른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서는 필요하지만, 그간 해야 할 만큼 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떨어지게 될 거야' 하는 메시지가 마음에 자리 잡아 '공부'를 회피하게 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틀린 생각은 아니다. 특히, 시험 준비로 바빠야 했을 지난 몇 개월을 돌이켜보면 일을 하느라 공부할 틈은 별로 없었다. 주말에 아프고, 평일에 출근하는 일상이 익숙했다. 나는 그만큼 회사의 높은 업무 강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긴장했고, 그 긴장이 풀리는 주말이 되면 신체 어딘가가 꼭 고장 나고는 했다. 이러한 기간이 늘어나고, 시험이 점차 가까워질수록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한 페이지를 보면서도 '지금 이것도 모르는데 남은 기간 동안 나머지 분량을 공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씨름해야 했다. 


그렇게 오늘까지 오고야 말았다. 시험 준비는 하나도 되어있지 않은데, 공부는 해야 한다며 스트레스는 받고, 스터디 카페까지는 기어코 가지만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나가고 싶다'는 생각만 반복하고 있다. '떨어지게 될 거야'는 메시지를 '떨어지게 될 수도 있다'라고 고쳐보아도 마음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원래대로라면 아침 일찍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했지만, 어차피 공부가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오랜만에 등산을 했다. 우울감이 특히 심하게 느껴지던 시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울이던 '의식적인 노력'이 큰 도움이 되었다. 밥을 먹기 싫으나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켜 먹는 한 숟가락,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어 억지로 잠을 청하려 할 때에 억지로라도 걸었던 우리 동네처럼, 의욕이 없더라도 나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끝내 시도하면 이내 상태가 나아지는 걸 체험하고는 했다. 


등산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문득, 2016년 즈음이 떠올랐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부터 내가 경험했던 힘든 일상을 주로 적기 시작했다. 원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글을 쓰게 된 지 불과 1년이 채 안 된 시점부터 억눌렸던 마음을 쓰기에 바빴다. 소망했다. 힘 있는 글을 쓰며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고. 그러나, 부풀대로 부푼 나머지 바늘 끝에 살짝 닿으면 터질 것 같았던 마음은 기대하는 글을 쓸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때부터였다. 2016년, 두 번째 회사에서 퇴사를 번복했던 그날부터 나는 삶의 희망을 잃었고, 더 이상 글이 내 삶을 뒤바꿔줄 거라는 기대를 갖지 않았다. 하지만, 그간 두 권의 책을 냈고, 그때의 글을 읽다 보면 나에게 필요한 게 무엇이었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쳐있었다. 지쳤었고, 지쳤다. 나는 언제나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하며 '부족한 점'을 찾아 고치기 위해 노력했다. 관계에서도, 일에서도 나는 결점 투성이었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러한 수고들이 대학교라는 나름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을 나는 안다. 하지만, 나는 그간 너무 많은 일들을 감내하며 살아왔다. 상사의 호통에도, 밀려드는 업무에도, 어렵고 낯선 과정에도, 도망치고 싶은 순간에도 '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부딪쳤다. 이따금씩 적응을 포기하며 새로운 회사나 관계를 찾기도 하였지만, 그러한 결과가 외부가 아닌 '나'로 인한 것이라며 다시 노력해볼 것을 당부했다. 이제는 그만 '되고 싶은 나'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벗어났다고 생각했던 유능한 모습을 한 그림자에게 여전히 구속되어 있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아프다. 부족하고 싶다. 모자라고 싶다. 서툴고 싶다. 단순하고 싶으며, 지구에 살아가는 하나의 작은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더 이상 잊고 싶지 않다.


내가 경험하는 모든 상황들은 객관적일 수 없기에 나는 지극히 주관적으로 판단해보기로 했다. 나는 지쳐있었고, 회사는 바빴으며, 시험 준비를 하는 것은 나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시험을 포기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르기 위해 애쓰고 있는 과정에 작은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를 단순히 몰아세우기보다는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이면에 깔려있는 마음을 조금 더 알아주고 싶다. 힘들고, 지치고, 외로운 마음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보듬어주고 싶다. 괜찮을 거라고. 나의 목소리로, 누군가의 마음으로, 우리의 시간으로. 


Image by David Kim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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