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골목길을 벗어나는 건, 어른이 되어가는 것.
노래를 듣는다. 익숙한 노랫말 따라 자연스레 눈을 감는다. 어둠과 하나가 된 나의 앞에 걸어가는 아이가 보인다. 신발주머니를 이리저리 흔들며 신이 난 듯 찰랑찰랑 떠오르는 머릿 결. 쏟아지는 빛이 아이를 뒤삼킬 것 같지만 꿋꿋이 나아간다.
두 갈래 길이 나왔다. 아이는 고민한다. 익숙한 골목길과 낯설고 경사가 심한 길 중 어디로 갈 것인지. 이내 아이는 익숙한 골목길에 들어선다. 뛰는 듯, 걷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엔 즐거움이 가득해 보인다. 뭐가 그리 좋은 건지 궁금하지만 아직 알 수 없다. 아이는 어떠한 설명도 없이 계속 나아가고, 나는 그 뒤를 따른다.
아이가 지나간 자리엔 많은 점들이 보인다. 그 점들은 꼼꼼히 살피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선들을 따라가 보니 하나의 기억이 되었고, 또 추억이 되었다. 미처 챙기지 못하고 무심결에 흘려보내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이는 멈추지 않는다.
아이쿠. 기어코 넘어지고야 말았다. 양 팔꿈치가 바닥에 닿아 떨어질 기미가 없다. 목 놓아 부르지 못하는 흐느낌이 들린다. 허나 좌절하는 가 싶던 아이는 괜찮다는 듯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일어난다. 부끄러움에 한 번쯤 뒤돌아볼 수도 있는데, 다시 걸음을 옮긴다. 조금 천천히.
풍경이 보인다. 때 이른 봄, 눈으로 뒤덮인 어느 산의 모습. 노을이 지는 바다에서 육지에 다다른 파도가 흙의 품으로 사라지는 모습. 온통 벚꽃으로 가득 찬 남산의 모습. 그리고, 그리고...
골목 끝에 다 달았다. 아이는 멈추었고, 작은 어깨를 연신 들썩였다. 그래도 진정이 되지 않는지, 허리를 숙이고 무릎에 양 손을 갖다 댄 후 가쁜 숨을 가다듬는다. 이내 허리를 피고 먼 곳을 응시한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바라보는 것일까. 뒷모습만 보아도 아이의 복잡한 심경이 느껴진다.
하아- 깊은숨을 내쉰 아이가 뒤돌아 보았다. 멍하니 서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햇살이 강하게 비추며 아이가 점점 흐릿해진다. 옅어지는 아이의 얼굴엔 얼핏 웃음이 보이는 것 같다. 아니, 분명 웃고 있었다. 아이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지만, 나는 그 웃음의 의미를 알 것 같다.
나는 여기까지야
흐릿해지던 아이가 사라졌다. 사라졌지만, 나는 그대로 남아있다. 걸음을 옮겨 아이가 마지막으로 서 있던 자리로 갔다. 알 수 없는 따스한 온기가 온몸에 맴돈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끼며, 아이가 들이마시고 내쉬었던 호흡을 따라 해 보았다. 쉼 없이 걷고, 뛰었던 아이의 체취가 느껴졌다. 비록 아이는 자취를 감추었지만.
눈 앞엔, 곧 끝날 것 같았던 길이 새롭게 이어져있었다. 이제는 나의 차례인 것 같다. 아이가 보여주었던, 모든 것들을 잊지 않고 힘이 들 때마다 한 번씩 꺼내어 보아야지. 아이도 해낸 일이니, 나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겠다.
첫걸음을 뗀다. 이 길의 끝은 어디일지, 끝이 있긴 한 건지 알 수 없어 무척 두렵지만. 아이가 남기고 떠난 해맑은 웃음을 생각하며, 한 걸음씩. 용기 내서 나아갈 테다. 자, 그러면 어른이 된 나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