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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Jul 31. 2022

그의 춤에서 나는 해방감을 느꼈다

무기력해가는 나를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렇게 적으면 아주 오래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주말마다 반복하던 행동이 있었다. 등산이었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넘어 목표한 지점에 도착했을 때의 성취감은 회사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근원적인 결실이었다.


숨이 점차 가빠오고, 다리가 후들거려도 정상에 올랐을 때의 마음을 기억하기에 오르고, 또 올랐다.

 

등산은 주말마다 집에서 나오기 어려워하던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산에 오르는 일은 분명 힘이 들었지만, 오르고 난 뒤에 펼쳐질 남은 하루가 흐뭇해질 거라는 걸 알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활동이었다. 하루는 산책로를 따라 등산하는 코스를 걷고 있었다. 어른들도 쉽게 걸을 수 있도록 조성한 길이었기에 평소보다 땀을 적게 흘리고 있었다.


흙길을 지나 나무로 된 산책로에 다시 접어들 때였다. 마주 오던 중년의 여성이 팔과 상체를 자유롭게 움직이며 춤을 추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해 보였는데, 어린아이의 순수한 웃음 같기도 했고 햇살에 반짝이는 싱그러운 사과 같기도 했다. 


나는 그의 춤 동작을 보며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저리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그가 입고 있던 등산복이라든지, 듣고 있던 트로트라는 노래 장르가 하나도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지나치며 보았던 몇 초간의 춤이지만 손동작이나 상체의 움직임, 표정은 자신이 느끼고 있는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했다.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았고, 나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그의 춤을 한참 동안 곱씹어 보았다.    


그의 춤을 되새기던 나는 슬픔이라는 감정이 밀려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하면 춤을 추고 싶다고 생각할 때에 기꺼이 춤을 출 수 있는 것일까. 그는 나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되지는 않았을까. 나는 방 안에서도 그처럼 자연스럽지 못할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그 시기는 회사에서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던 때였다. 억제하고 외면하던 여러 감정이 그의 춤을 보며 꿈틀거렸던 것은 아닐까. 그처럼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느끼며 표현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어렵다고 여겨지는 현실에 눈물이 기어이 흐른 것은 아닐까.        

    

직장을 그만둔 나는 등산까지는 어려워도 산책을 자주 하고 있다. 어제는 비가 오는 동대문 거리를 걸었다. 익숙한 길을 걷는 것도 좋지만, 낯선 길을 걸으며 경험하게 되는 신선한 자극들이 우물에 고여있는 나를 우물 밖으로 잠시 꺼내어준다. 그리고 내가 몸담고 있던 우물을 살펴보게 해 준다. 


나는 낯선 길을 걸으며 사색하는 시간을 '깨어 있는 시간'이라고 부르고는 한다. 한 시간을 넘게 걷고 있던 어제의 나도 '깨어 있는 시간' 한가운데에 있었다. 금방 그칠 것 같던 비는 점차 굵어지고 있었다. 날은 어두웠고, 길가에 가로등이 비로소 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문득, 등산하며 보았던 그의 춤 동작이 떠올랐다. 


오직 그 순간을 살았던 그의 춤과 표정을 떠올리니 습한 날씨에 땀을 쏟아내던 몸과 다르게 마음에는 행복감이 물밀듯 밀려왔다. 들고 있던 우산을 던지고, 옷이 비에 젖는다든지, 젖은 옷으로 집에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와 같은 걱정은 모두 버리고, 그처럼 자연스럽게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춤을 출 자신은 없었으므로 자유로이 팔을 휘저으며 기쁨의 표정을 짓는 나를 가만히, 지긋이 상상해보았다. 벅차오르는 걸 느꼈다. 내가 요즘 얼마나 주변을 의식하며 살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의 춤이 어제 그 시점에 떠오른 것은 어쩌면 보다 자연스럽고, 자유롭고 싶다는 나의 욕구가 만들어낸 이미지는 아니었을까. 앞으로 그의 이미지가 필요할 때면 나는 어제 마음속으로 추었던 춤을 떠올려보려고 한다. 비록 그에 비해 표정은 선명하지 않았지만, 동작만큼은 나의 어느 때보다 선명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해방감을 경험하기 위해 낯선 길을 걸어보고자 한다. 나의 마음은 오늘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힘든 이야기도 좋지만, 즐거운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해방되고 싶은 마음보다는 해방되었던 마음과 그때의 기쁨이 주제가 되면 어떨까. 괜스레 기대하게 된다. 


Image by Anamul Haque Anik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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