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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Aug 04. 2022

우주의 힘이 우리를 도와주고 있으니,

퇴사자라면 으레 거쳐가는 기간이 있다. 특별한 계획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면 이 기간을 거쳐갈 가능성이 더욱 높다. 바로, 무기력감에 빠져드는 시간이다. 회사에 출근하며 받았던 강한 자극들은 사라지고, 집 한편에서 고요히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은 마냥 편하기 어렵다. 분명, 회사를 그만두면 나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겠다고 다짐했지만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수호샘, 오늘은 그만하고 퇴근하죠"


내가 다니던 회사는 정시에 퇴근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던 곳이었다. 퇴근 시간이 되면 상사가 먼저 급한 일이 없다면 퇴근하자고 제안하던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문화를 깨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나는 함께 퇴근하자고 얘기하는 동료들을 제쳐두고 혼자 남아 일을 하고는 했다. 


돌이켜보면 오늘이나 내일까지 마감해야 하는 일은 대부분 없었고, 하던 일을 그날에 마무리해야 마음이 편해서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야근의 첫 시작은 분명 내 마음 편하자는 취지였지만, 한두 번 반복하다 보니 습관이 되었고 나중에는 '더 남아 있지 않으면 불안해서'라는 이유로 퇴근을 미루었다. 


해야 할 일은 늘 있었다. 하지만, 미룰 수 있었다. 물론, 미루게 되면 언젠가의 내가 진땀을 빼며 처리해야 할 거라는 건 분명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나를 위해 지킬 수 있는 밤들이 있었다. 무수히 많은 야근 속에서도 나를 위한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단지, 일찍 퇴근한 이후에 생길 수 있는 어떤 상황이 불안해서, 내일 발생할 수 있는 어떤 상황이 두려워서, 실제적인 이유라기보다는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어서 추가로 근무할 것을 스스로 선택했다. 


퇴사를 하기 몇 달 전부터는 일이 많아 야근을 했다. 그때는 내가 퇴근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그러나 그 이전의 회사생활을 돌아보면 나에게는 숨을 고르며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단지 내가 실수했을지도 모른다거나, 내가 놓치고 있는 어떤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라거나 하는, 끝없는 불안과 두려움에 못 이겨 나 자신을 야근이라는 궁지로 몰아넣으며 소진을 자처했다. 


지난 회사생활에서 배운 교훈을 생각하면 오늘의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발견할 수 있다. 요즘 나의 '해야 한다'는 생각 속에는 '오늘 하루를 허투루 보내면 어떡하지?', '누군가는 이 시간에도 돈을 벌고 있겠지', '오늘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내야 할 것 같은데'와 같은 부유물이 떠다닌다. 이러한 부유물들은 회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실체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만들어낸 찌꺼기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해야 한다'는 생각을 보다 구체적으로, 달리 생각해보자면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오늘 하루에 해야 할 구체적인 계획 없이 그저 잘 해내기만을 바라는 것은 옳지 않아'라고 정리해볼 수 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 새로운 경제생활을 위한 준비와 휴식이고,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결코 과하지 않은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에 따라 취업 준비를 마친다면 남은 하루의 시간은 오롯이 쉼을 위해 전념하려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 '해야 한다'는 생각이 큰 사람이 그 한계를 자신의 하루에 적용해보면 그간 얼마나 많은 날들을 자신이 가진 능력 이상으로 해내기를 기대했는지 알게 된다. 우리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지만, 한계 또한 가지고 있다. 어제보다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것은 분명하겠지만, 우리는 모두 세계 속의 작은 개인으로서 현재 가진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한계 또한 분명히 가지고 있다. 


"우주의 힘이 우리를 도와주고 있으니, 이미 이루어졌다고 믿고 행동해보세요"


막연한 미래에 대해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나에게 누군가 위의 말을 해준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삶에 중요한 과제가 생길 때마다 위와 같은 말을 되뇐다고 했다. 처음에는 '오잉, 우주의 힘?'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점차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나는 언제가 다시 취업하게 될 것이다. 어떤 회사가 될지 지금의 나는 모르지만, 분명 어딘가에 취직해서 근로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언젠가 이루어지게 될 일이다. 


그렇기에 오늘의 내가 해야 할 일은 계획에 따라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일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충분히 쉬고, 잘 먹고, 글을 쓰며 오늘만, 지금 이 순간만 살아가는 일이다. 우주의 힘이 우리를, 나를 도와주고 있으니 결과는 우주에게 맡겨두고, 이루어가는 오늘 하루를 마음껏 살아보아야겠다.  


                

Image by Michelle Raponi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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