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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Jul 28. 2022

가만히, 들끓는 마음에 몸서리치기보다는

동네 한 바퀴를 걸었다. 퇴사를 하면 아침마다 산책을 하기로 다짐했었으니, 회사에 가까워질수록 샘솟던 글감을 아쉬워하던 출근길의 내 모습이 선명해서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들고 어김없이 지나는 우리 동네는 아침이라 해도 새로울 것 없이 여전했다. 


문득, 안경을 벗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낀 안경이 콧대를 누르는 것도 불편했고, 카페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이 못나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안경을 벗으면 나아질까?' 싶었지만 효과는 분명했다. 세상이 흐려지자 끔찍이 주변을 의식하던 내가 오로지 마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안경을 벗자, 나의 눈을 더 이상 주변과 세상을 쫓지 않고 마음을 지긋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자극에 대해 생각했다. 반복되거나, 경험한 적이 있거나, 간단히 해결할 수 있거나 그렇다고 판단되는 문제는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비교적 큰 자극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회사는 불쾌한 자극을 생성하는 공장에 가깝다. 아무리 업무 환경이 좋고, 일이 적성에 잘 맞아도, 회사에 고용되어 상하 관계 속에서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구조 자체가 불쾌한 자극에 끊임없이 노출되도록 한다. 아닌 사람도 어쩌면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좋은 사람들과 어느새 익숙해진 일을 하면서도 줄곧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는 아무리 소화하려고 해도 해소된다는 느낌보다는 계속 쌓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업무를 하거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점심 메뉴를 고르거나, 표정을 관리하기 위해 애쓰는 모든 과정이 나에게는 일이었고 스트레스였다.  


이러한 환경에 일 년간 노출되다 보니 머리는 강한 자극에 익숙해졌다. 휴식을 취하려고 할 때면 머릿속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떠오른다.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자극이 줄었으니, 회사에 있을 때와 비슷한 수준의 자극을 받아야 한다고. 지난주에 다녀온 템플스테이에서도 그랬다. 창밖을 가만히 보고 있으려고 하면 '너 지금 이래도 괜찮은 거야?' 하는 생각 때문에 진땀을 여러 번 흘렸다.


하지만, 흐려진 시야 속에서 또렷하게 빛나는 마음은 대꾸한다. 필요하지 않은 자극을 받기 위해 억지로 노력하기보다, 일상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을 받고 유지하며 지내야 한다고. 휴식이 필요했다며 극단적으로 방에 머물며 쉬기보다는, 그렇다고 지금 당장 어찌할 수 없는 작은 일에 집착하며 괴로워하기보다는, 회사에 다닐 때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사고, 보다 긴 시간을 산책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일상과 휴식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어가는 그런 시간이 나에게는 필요하다고. 


다시,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작한다. 소음으로 여기던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반갑다. 어제는 말끔히 물러나고, 오늘이 시작되었다. 어떤 하루가 펼쳐지게 될까. 벌어지는 일들을 끊임없이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억지로 끌어안기보다는, 그때그때 일어나는 마음을 충분히 알아가고 느끼며 기꺼이 오늘 이 시간을 살아보고 싶다. 


산책하는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들려줄 수 있을 만큼.


Image by Free Photo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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