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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Aug 19. 2022

혼자 떠났던 첫 여행에서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는데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면 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곤 해요. 혼자서 떠나는 첫 여행이었어요. 누나가 제주 올레길 여행이 유행한다고 하길래 냉큼 알아보고 예약했지요. 숙소부터 비행기표에 이르기까지 지금 돌이켜보면 여행을 준비하는 데에 부족한 점이 많았어요. 시간을 두고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마음만 앞서 모든 일정을 계획했으니까요. 


첫날이었어요. 제주에 막 도착했을 때였지요. 무섭더라고요. 제주 공항을 빠져나온 저를 먼저 반긴 건 돌하르방이나 야자나무가 아니라 '숙소에 잘 찾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숙소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설명이나 블로그를 여럿 찾아보며 준비했지만 불안감을 쉽게 떨쳐낼 수는 없었어요. '처음'은 늘 그런 것 같아요. 아무리 준비하고 노력해도 처음은 결코 익숙해질 수 없으니까요. 


버스 정류장을 찾아 헤매고, 긴장한 탓에 배낭을 감싸 안고 안내 방송을 들으며 잠자코 앉아 있은 지 1시간 남짓. 숙소 근처 정류장에 도착했어요. 그때는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어요. 제가 예약했던 곳은 게스트하우스였는데 정류장에서부터 숙소까지 걸어가는 길에 사람을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어요. 큰 키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심장이 콩닥거리며 세차게 뛰었지요. 


국내 성인 미아가 될 뻔한 위기를 무사히 넘기며 숙소에 도착했어요. 사장님은 저에게 원래 4인실이지만 같은 성별의 사람이 저를 포함하여 2명뿐이라 2인실로 옮겨주셨다고 했어요. 감사했지요. 낯을 많이 가리기도 하고, 가뜩이나 긴장한 상태였기 때문에 낯선 사람 여럿과 어울려야 했다면 끔찍했을 거예요. 방을 안내받은 시간이 대략 오후 4시 정도였어요. 저녁까지는 시간이 있었지요. 


창밖에는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저는 구입한 우비를 입고 '어딘가'로 걸어 나갔어요. 그 길 끝에 바다를 발견한 것은 상당한 우연이었지만, 굵어진 빗방울에 미역이 되어버린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실소하는 상황은 필연 같았어요. '내가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을 하며 숙소로 후다닥 돌아왔지요.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어요. 저는 '2인실에 함께 묵는 사람이 오면 같이 먹을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게스트하우스가 처음이었어서 그랬는지 친해져야 한다는 생각 같은 게 있었거든요. '그는 언제 올까, 그는 누구일까, 또래일까, 대화가 잘 통했으면 좋겠다'와 같은 생각을 하며 기다렸어요. 꼬르륵 하는 소리를 들으며 기다리던 제 방의 문을 연 것은 의외로 중년의 남성이었어요.


사장님이었어요. 함께 묵기로 되어있던 사람이 못 오게 되었다고 알려주셨지요. 그리고 제가 사용하는 방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른 성별의 사람이 쓰게 되었으니 참고하라고 했어요. 이때부터 길었던 밤이 시작되었어요. 숙소 주변에는 마땅한 식당이 보이지 않았고, 게스트하우스에 있는 간단한 음식을 먹으려고 하니 다른 성별이라는 저의 존재로 인해 불편감을 겪을 수 있는 사람들이 떠올랐어요. 결국 저의 생각은 '1층으로 내려가서 뭐라도 간단히 먹을까, 말까'로 좁혀졌어요. 이 좁혀진 생각을 밤새 한 것이 흠이지만요. 


그렇게 저는 점심도, 저녁도 굶은 채 여행 첫날을 보냈지요. 다음 날 아침에 올레길을 걷기 위해 떠나는 유일한 성별이었던 저를 보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방이 잘 구분되어 있어 그렇게까지 의식할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조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여전히 크게 들어요. 혼자 떠나는 첫 여행에서의 첫날에 누군가는 맛있는 음식을, 새로운 만남을, 아름다운 풍경을 경험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다만 눈치도 없이 울려대는 배를 위로하며 비가 그치기를, 밤이 어서 끝나기를 가만히 바랐지요.


Image by Pexel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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