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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Aug 19. 2022

아이고, 어떻게 해요. 그동안 많이 힘드셨나 봐요.

회사를 그만둔, 백수가 겪는 여러 어려움 중에는 고립감이 있다. 사회적인 신분이 사라진다는 것은 마치 존재의 이유가 사라진 듯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회사에 소속되어 매일 출근하다가 별도의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 상황은 몸도 마음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주기적으로 하는 활동이 없거나 가족이나 친구와의 소통이 원활치 않다면 고립감은 더욱 크게 일상을 장악한다. 회사생활을 성실하게 해왔을수록 그와 대비되는 집안에서의 모습은 스스로를 초라하게 인식하도록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쉬면서 앞으로의 삶을 생각해보겠다는 계획은 대체로 실패하게 된다. 퇴사를 하는 순간 조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직장인으로서의 쉼은 회사라는 돌아갈 곳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이 크게 불편하지 않다. 그러나, 백수로서의 쉼은 대체로 들어갈 곳이 확실치 않기 때문에 불안하다. 어느 회사에 언제 들어갈 수 있다는 보장이 있다면, 적응하는 과정이나 회사생활에 대한 막연한 걱정이 물론 들겠지만, 그나마 쉬어갈 수 있다. 하지만, 집에서의 느슨한 시간이 답답하고 어떤 일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커질수록 마음의 병은 깊어간다. 


지금의 내 모습은 첫 번째 직장을 퇴사하고 난 이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며, 가족들과 나누는 인사를 제외하고는 몇 마디 말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의 상태를 빠르게 알아차리는 데에 있다. 과거에도 지금도 나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 안전하다거나 편안하다고 느끼는 사람과의 시간이 필요했고, 필요하다. 


미아역에서 대학원 동기들과 만났다. 퇴사를 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되었으니, 지난 한 달을 돌이켜보면 가족을 제외하고 가진 두 번째 만남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지만 동기들과의 눈 맞춤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앉은 자세도 꽈배기가 된 것처럼 꼬여있었고, 목소리의 크기는 어떠한지, 말의 속도는 적절한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어색한 자세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동기들의 말을 이해하기에 바빴다고 적으면 나를 아는 사람들은 금세 익숙한 나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샐러드를 먹고 커피를 마신 뒤에 우리는 걸었다. 고려대 역까지는 함께 걸었고, 안암 오거리까지는 혼자 걸었다. 안암은 첫 번째 직장이 위치한 곳이었다. 회사를 다닐 때에 그곳에서의 마지막 기억은 술에 취해 눈물을 쏟아내며 퇴근을 하던 모습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보란 듯이 안암을 걸었다면 좋았겠지만, 또다시 백수가 되어 안암길 위에 오르니 스스로가 보잘것없게 느껴졌다. 


안암은 변해있었다. 추억이 있는 식당을 발견하면 즐거웠고, 흔적 없이 사라진 가게를 회상할 때는 슬픔이 밀려들었다. 대학교 졸업 후에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잘 모르는 채 입사한 첫 번째 직장. 그곳에서 경험했던 업무로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동료들과의 관계는 내일을 다시 기대하게 했다. 일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2년 동안 다닐 수 있었던 데에는 스스로 가진 자부심이 컸다. 같은 전공을 졸업한 친구들에 비해 높은 급여도 한몫했지만, 좋은 사람으로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기쁘게 만들었다. 


당시의 나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이었다. 동료들에게 좋아 보일 수 있다면 그렇게 행동하는 걸 주지하지 않았다.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은 경력이 쌓일수록 더해갔다. 입사 초기부터 동료들에게 따뜻하고 세심하다는 인정을 맛보다 보니 끊어내기 어려웠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모습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키워간 회사에서의 존재감은 나를 더욱 거짓된 사람이 되도록 강요했다. 때로는 상사 때문에 화가 났었고, 후배가 불편했고, 동기들로 속상했지만 이러한 감정을 모두 끌어안고 아닌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했다. 


"아이고, 어떻게 해요. 그동안 많이 힘드셨나 봐요."


퇴사하던 날,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에 후배 직원은 말했다. 팔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쏟아내며 안암 오거리 언덕을 내려가던 나에게 마음을 진정시키고 가라고 했다. 내가 그를 줄곧 챙겨주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나를 걱정하고 있으니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곧바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좌석에서도 여전히 굵은 눈물을 흘리던 당시의 마음은 오늘과 닮았다. 최근에 그만둔 직장에서도 나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돌이켜보니,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했던 과정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틀 안에서 만들어 낸 합의점에 불과했다. 동료에게 일을 부탁하기 전에 그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지나치게 고민하고, 거친 소리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에게 나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나는 인내하고 삭히며 좋은 사람으로 불릴 수 있게 되었지만, 마음을 적절히 드러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오늘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하고 편안한 관계에서 기어코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용기이다. 좋은 사람으로서 기억되며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을 알아주면서도, 이 순간 느껴지는 진실한 마음을 공감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절실하다. 내가 눈물을 흘렸을 때에 후배가 함께 눈물을 흘리며 나를 위로해주었던 것처럼 마음을 기꺼이 꺼내 보이며 온전한 사람으로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는 필요했고, 필요하다.


첫 직장에서의 나와 오늘의 나 사이에는 7년이라는 시간이 떨어져 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꽤 먼 시간이 떨어져 있지만, 느끼는 아픔은 비슷하다.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다시 백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달라진 점을 생각해보자면, 그때보다 내 마음을 자세히 느낄 수 있다. 알아차릴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람, 마음, 눈물, 온기, 웃음, 사랑이다.  


Image by pinkolet from Pixabay


나의 상태를 알아차렸다면 그에 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이 마음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틀 안에서 외면하고 억압했던 진실한 내 모습과 만나는 시간이 필요했다. 혼자서도 고독히 그늘진 마음을 발견할 수 있지만, 혼자서는 결코 그 마음을 온전히 위로할 수 없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어울리는 시간이 기나긴 밤 끝에 이윽고 쏟아지는 햇살 같은 순간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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