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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Aug 18. 2022

가볍게 만나 맥주 한잔 할 수 있는,

빌라에 가까운 작은 아파트에 살던 나에게 친구는 해변의 모래알만큼 많고, 가까운 존재였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집 밖을 나서면 이미 모여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새로 이사를 온 친구들이 우리의 무리에 합류하는 건 어느새 손에 들린 여름철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얘들아, 같이 놀자~"


아파트 현관을 갓 빠져나온 나는 대체로 명랑하게 친구들에게 다가갔다. 성별이나 학년에 따른 구분은 없었다. 많을수록 좋았다. 우리는 얼음땡과 같이 비교적 간단한 규칙의 게임에서부터 경찰과 도둑, 피구, 축구, 이어달리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목을 섭렵했다. 누군가의 집에서 큰소리가 들리기까지 우리의 놀이는 계속되었다. 밤이 다가와도 저마다의 의지로는 헤어지는 일은 결코 없었다.


"얘들아... 어디 있니?"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는, 서른다섯의 삶은 사뭇 다르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도 또래는 찾아볼 수 없다. 가끔 마주쳐도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 각자 핸드폰을 보며 걸어가기 바쁘다. 거리로 조금 더 나가보아도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전이었다면 친구들이 반겨줄 거라는 믿음으로 큰소리치며 달려갔을 텐데. 이제는 그럴만한 자신도, 그러한 나를 지켜봐 줄 누군가도 없다. 


20대 후반에 한 번 이사를 오긴 했지만, 사는 동네는 그대로이다. 하지만, 친구들이 대부분 동네를 떠났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동네 친구들이 부르면 썩 내키지 않아도 만나러 나가곤 했다. 나가기가 귀찮아서 그렇지 만나서 어울리면 즐거울 거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과 함께 보냈던 그간의 시간이 앞으로 경험하게 될 즐거움을 증명했다. 또한, 동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걸어서 10분 남짓이면 만날 수 있는, 오가는 시간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은 서로의 거리는 피곤하다거나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동네 친구는 희소해졌다. 대부분은 생활 반경이 바뀌게 되며 멀어졌다. 문득, 그때의 친구들과 여러 놀이를 하며 어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얼마 전까지 사회적인 관계를 주로 맺어왔다. 직장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맺기 어려웠다. 회사라는 경직된 구조속에서 업무라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었으니 회사 사람들과는 대부분 애매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다. 관계가 보다 가까워지며 솔직해질 것 같으면 경계하고, 보다 멀어져서 불편해질 것 같으면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그때의 관계는 마음보다는 머리로 맺었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 듯싶다. 


어릴 적, 동네를 주름잡으며 함께 뛰어놀던 친구들과는 오직 서로의 마음이 중요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생기면 삐치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며 친밀에 한 걸음씩 가까워져 갔다. 영원히 화해하지 못할 것 같았던 관계도 주변 친구들과 함께 만든 우정의 울타리 안에서 풀어지고 이어졌다. 


서로의 콧물쯤은 진득하게 보았던, 현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편안한 관계가 그립다. 지금이라도 집 밖으로 나가 땅따먹기를 하는 친구들 곁으로 다가가 큰소리 치며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다. 이러한 관계를 요즘으로 바꾸어보자면 츄리닝 복장으로 만나 맥주 한잔에 침 튀기는 이야기를 곁들이며 만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그리운 날이다.


Image by amiera06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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